“나 같은 레벨의 선수들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으면 한다.”
인생의 첫 번째 챕터는 순탄하지 않았다. 가장 자신 있었고 평생을 해왔던 야구를 그만둬야 할 위기가 숱하게 있었다. 하지만 모든 위기를 이겨내고 야구 선수들의 목표 중 하나인 FA 계약까지 체결했다. 롯데 자이언츠 정훈(35)은 ’버티는 자가 강하다’라는 진리를 다시 한 번 일깨워주며 메시지를 던졌다.
정훈은 지난 5일 롯데와 3년 총액 18억 원에 FA 계약을 체결했다. 올 겨울 마지막 FA 선수였던 정훈까지 계약을 맺으면서 올해 FA 시장은 막을 내렸다.

박건우(6년 100억 원), 나성범(6년 150억 원) 김현수(4+2년 115억 원), 김재환(4년 115억 원) 등 100억대 계약이 쏟아져 나왔고 총 989억 원이 오가는 역대급 FA 시장이었다. 과열된 시장 속에서 정훈이 맺은 계약 규모는 초라하고 작을 수 있다.
하지만 정훈이 걸어온 야구 인생을 곱씹어보면 3년 총액 18억 원이라는 금액 자체보다는 FA 계약을 체결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 있을 수 있다. 프로 입단 이후 그동안 야구를 더 이상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압박감을 극복했다. 잡초처럼 끈질기게 버티며 현재의 위치까지 왔다. 화려하지 않았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는 못했지만 끝까지 버티면서 FA 계약까지 마쳤다. “그동안 잘 버틴 나 자신이 대견하고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조심스럽지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다.

마산 용마고를 졸업한 정훈은 200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다. 현대 유니콘스에 육성선수로 입단했다. 그러나 1군 무대를 밟지 못한 채 방출 통보를 받았다. 방출 통보를 받고는 현역으로 군 입대했다. 당시에는 이례적이었다.
제대 이후에도 마땅한 소속팀을 찾지 못했다. 모교인 마산 양덕초등학교에서 코치가 됐다. 이대로 정훈의 현역 선수 커리어가 소리소문 없이 끝나는 듯 했다. 하지만 마지막 기회가 기적적으로 찾아왔고 2009년 말 다시 육성선수로 롯데 유니폼을 입었다.
결국 악바리 같은 모습이 당시 제리 로이스터 감독의 모습의 눈에 띄었고 1군 무대에서 자리를 잡았다. 은퇴를 앞둔 조성환의 2루 후계자로 주목 받았고 타석에서의 끈질긴 자세로 2014~2016년, 풀타임 2루수와 리드오프로 활약하며 어엿한 주전이 됐다.
그러나 수비 불안이 정훈의 발목을 잡았다. 주전 자리를 내주며 2루수 자리에서 밀려났다. 외야와 1루 등을 전전하다가 점점 입지가 줄어들었고 2019시즌이 끝나고는 다시 한 번 방출의 위기를 겪었다.
숱한 위기의 순간들을 이겨낸 정훈은 다시 한 번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2020시즌 허문회 전 감독 체제 하에서 캠프 MVP가 됐고 신뢰를 얻으며 주전 1루수로 도약했다. 결국 FA를 앞두고 2시즌에서 커리어 최상의 결과를 내며 FA 신청까지 할 수 있었다. 타구단의 제의도 없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훈은 일편단심 롯데만을 생각하며 잔류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으면서 프로에 입단하고 흘러간 16년의 시간들, 그 속에서 역경의 순간들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나는 스타가 아니다. 굳이 따지면 프랜차이즈 선수"라며 자신을 낮춘 정훈이다.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위치에 있던 선수들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그는 “어려운 시기를 버티고 FA 계약까지 맺은 좋은 예가 된 것 같다. 다른 FA 선수들처럼 대박 계약을 맺은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계약을 맺는 사례가 몇프로나 되겠나”라면서 “그동안 숱한 위기가 있었지만 버텨냈다. 금액을 떠나서 FA 계약까지 했다. 나 같이 위기를 맞이했거나 힘든 시기를 버티는 선수들이 ‘우리 같은 레벨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가졌으면 좋겠다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자신처럼 아직은 빛을 보지 못한 채 미래의 스타를 준비하는 선수들을 향한 응원의 메시지를 던졌다.
숱한 역경을 극복한 인간승리의 드라마의 첫 번째 챕터가 마무리 됐다. 그리고 이제 다시 한 번 야구인생의 클라이막스를 향해 달려간다. 그는 다시 한 번 롯데 팬들을 향해 감사 인사를 전하면서 "남은 야구 인생에서 '롯데 자이언츠 정훈입니다'라고 소개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쁘고 롯데 유니폼을 입고 남은 야구 인생 동안 결과로만 보답하고픈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jhrae@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