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진 먹어도 좋으니 풀스윙해라.”
박병호(36·KT)는 LG 시절 실패한 유망주였다. 고교 시절 4연타석 홈런을 터뜨린 거포 유망주로 2005년 LG에 1차 지명으로 입단했지만 2011년까지 잠재력을 꽃피우지 못했다. LG 시절 5시즌 통산 성적은 288경기 타율 1할9푼 25홈런. 안타(125개)보다 삼진(224개)이 두 배 가까이 많았다. 주전이 보장되지 않았던 그 시절 박병호는 늘 타석에서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하지만 2011년 7월 마지막 날 트레이드를 통해 넥센(현 키움)으로 옮긴 뒤 박병호의 야구 인생이 바뀌었다. 박병호를 4번으로 고정시킨 김시진 당시 넥센 감독은 “삼진을 먹어도 좋으니 풀스윙해라”고 주문했다. “박병호는 엉덩이 빼고 안타 칠 필요없다. 삼진을 먹더라도 크게 스윙해서 투수들을 항상 긴장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삼진에 대한 두려움 없이 풀스윙을 돌리기 시작한 박병호는 KBO리그 대표 홈런왕으로 성장했다. 2012~2015년 리그 최초 4년 연속 홈런왕에 올랐다. 이 기간 삼진도 많이 당했다. 2014~2015년에는 각각 142개, 161개로 리그 최다 삼진을 당했지만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누가 뭐래도 이 시기 박병호는 투수들이 가장 상대하기 싫은 타자였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박병호는 다시 삼진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외부에선 에이징 커브라고 했지만 신체적으로 크게 저하된 징후는 없었다. 스스로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국 멘탈이었다. LG 유망주 시절처럼 타석에서 움츠러든 자신을 발견했다.
새 시즌 KT로 이적해 부활을 노리는 박병호는 “지난해 시즌 끝나고 한 번 생각을 해봤다. 원래 저는 삼진 당하면서 장타를 치고, 볼넷 나가면서 타율 관리가 됐던 선수인데 어느 순간 삼진이 다시 두려워졌다”고 고백했다.
이어 그는 “전 타율 3할4푼을 치는 타자가 아니다. 제 장점을 살리려면 당연히 삼진을 많이 먹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삼진을 당하지 않으려고 타석에서 소극적이었다. 그런 생각에 잠겨있지 않았나 싶다”고 되돌아봤다.

넥센 시절 수석코치로 박병호와 함께한 이강철 KT 감독도 그의 부활을 위해 마음부터 편하게 해주려 한다. 박병호에게 “지난해 성적 그대로 내도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박병호의 성적은 118경기 타율 2할2푼7리 20홈런 76타점 OPS .753. 타율이 낮고, 박병호 이름값에 못 미치지만 그래도 20홈런을 채웠다. 거포가 많지 않은 리그에서 충분히 가치가 있는 성적이다.

박병호는 “감독님께 잘하겠다고 말했다. KT는 제게 에이징 커브라 아니라고 말해준 팀이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 것뿐만 아니라 잘해서 보답해야 한다”며 “누가 봐도 야구 선수답게 쳐야 한다. 수치로 정하기 어렵지만 홈런 20개 이상은 쳐야 한다. 볼넷 많이 걸어나가고, 삼진도 더 당하면서 자신 있게 할 것이다. 삼진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11년 전 김시진 감독 말을 되새기며 다시 한 번 부활을 꿈꾼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