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만’ 있으면 살아갈 이유는 충분하다..휴머니즘 뭉클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2.02.09 11: 43

[OSEN=김재동 객원기자]  JTBC 월화드라마 ‘한 사람만’이 종영됐다. 드라마는 마지막으로 ‘인간은 누구나 죽어요...그때까지 잘 살아보기로 해요’란 엔딩자막을 남겼다.
서럽고도 따뜻한 주제다. 극중 우천(김경남 분)이 인숙(안은진 분)을 꽃집에 데려갔을 때 인숙은 말했다. “나 꽃 안좋아해. 시들잖아.” 우천이 답했다. “시들지않는 게 어딨어? 살아있는 건 다 시들어. 지금은 피어있잖아.”
어차피 지는 꽃이라도 피어있을 땐 이쁘다. 어차피 스러질 인생이라도 삶은 아름다울 권리가 있다.

드라마는 죽음을 앞둔 세 여자와 살인청부업자가 끌어간다. 조합만 보면 우울하고 칙칙할 듯하다. 하지만 코믹·발랄코드가 적절히 믹스되면서 따뜻한 휴머니즘의 색채가 강조된다.
할머니 육성자(고두심 분) 손에서 자란 표인숙은 길고양이처럼 세상과 유리된 채 살아오다 뇌종양 말기 판정을 받는다. 주변을 정리한 후 해외여행 핑계대고 호스피스병원 ‘아침의 빛’에 들어간다. 거기서 만난 룸메이트가 혈액암 말기 강세연(강예원 분)과 폐암 말기 성미도(박수영 분)다.
인숙이 남겨두고 온 것은 할머니뿐이 아니다. 엄마가 집을 나간 채 아버지에게 학대받는 동네 꼬마 하산아(서연우 분)도 있다.
할머니의 전화를 받고 산아의 위기를 알게 된 인숙은 룸메이트들과 상의하고 강세연은 “어차피 우린 죽는데 ‘한 사람만’ 데려가자”며 골프채를 들고 나선다. 제목 ‘한 사람만’은 드라마 초반 그런 의미로 출발한다.
하지만 드라마가 진행되며 제목의 의미는 시나브로 ‘구원’의 의미로 바뀌어 간다. 우천은 말한다.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우연이 반복될까. 무수한 확률을 뚫고 만나는 것 아닐까? 그렇게 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닐까? 어쩌면 인생이란 것에서 한사람만이 구원일지 몰라.”
인숙에게 삶이란 그저 살아내는 것일 뿐이었다. 그래서 곧 죽는다는 데도 그 의미가 크게 와 닿지 않았었다. 하지만 우천을 만났고 사는 것이 아름다워지기 시작했다.
우천 역시 마찬가지다. 첫 가족 외식날 동반자살을 시도한 아버지 탓에 혼자 살아남았다. 어린 인숙이 구해줬었다. 이후 의미없는 삶을 살인청부업자로 살았다. 혼자인 게 너무 당연해서 외롭지 않은 줄 알았는데 누구에게나 있는 한 사람, 인숙이 제 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두 사람에겐 시간이 별로 남지 않았다.
“벌 받는건 가봐. 하필 지금. 가장 살고 싶을 때 가장 세게 벌을 받는가 봐”라는 우천의 회한은 가슴을 울린다.
그런가하면 육성자(고두심 분)가 우경미(차희 분)를 향해 외친 “어차피 죽는다고.. 그렇게 붙어있는 것은 목숨이 아닌 거여?”라는 일갈은 생명의 경중은 따질 수 없다는 통렬함을 담고 있다.
삶이 팍팍해 한때 죽으려고도 했던 육성자다. “근데 문득 강선이(장현성 분) 얼굴이 툭 튀어나오더라고 그래서 살았어. 사는게 그런 거여. 넘 때문에 살어.”란 회고는 내 삶이 단지 나만의 삶은 아니라는 자각을 일깨운다.
“뭔가 무겁다고 생각되면 그냥 놔버려”란 세연의 조언을 들은 성미도는 호스피스를 찾아 돈 얘기부터 꺼내는 엄마를 놓아버린다. 평생 그 사랑을 갈구해온 엄마지만 놓아버리니 별 것 아님을 알게 된다. 비록 여전히 평생 제일 좋았던 때로 그 엄마가 자신을 보고 한번 웃은 적을 꼽지만 놓아버리니 그저 가벼웠던 짐이었다.
또한 거짓 구애를 늘어놓는 구지표(한규원 분)를 놓아버리니 그조차 가벼웠다. 마지막 사랑까지 너무 초라할까 싶어 붙들고 있었지만 뜻밖에 너무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평생 누군가에게 잊혀지는 게 두려웠던 성미도는 마지막에서야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알았다.
그리고 “영화 같은 거 다 뻥이야. 파노라마 같은 거 없어... 뭔가 대단한 말을 하고 싶은데 욕밖에 생각이 안나”라면서 원장(이수미 분)을 향해 “그렇게 웃지만 말고 기도라도 해봐요”라고 채근하고 원장은 “좋은 아침이예요”란 인사로 그녀를 떠나보낸다.
드라마 최종 악역 구지표의 말로를 지켜보며 차여울(주인영 분)은 말한다. “참 이상한 세상야. 뭐 저렇게 난리를 피우고 살까? 곧 죽을 입장에선 이해가 안되네.” 확실히 내일 죽는다면 오늘 아등바등 난리치며 살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거운 주제지만 곳곳엔 캐릭터가 만들어내는 유머코드가 장치돼있다.
경찰서에서 풀려난 날 우천은 느릿느릿 걷는다. 그리고는 인숙에게 “시간을 늘이는 중” 이라고 말한다. 인숙이 묻는다. “너 바보지?”
인숙내 가족과의 삼겹살 외식땐 첫 눈에 반한 감정을 얘기하며 “첫눈에 봤는데 뭔가 쎄한..” (아닌가?) “뭔가 쌔끈한...”이라며 어휘 부족에 곤혹스러워 하기도 한다. 그렇게 사회와 접점이 없던 우천의 캐릭터는 ‘정색한 덜떨어짐’으로 웃음을 준다.
“너 없이 살기 싫어. 그러기가 싫어졌어. 기다려주면 안될까? 니가 날 기다려주면 안될까? 버티고 살아주면 안돼? 뭐든 해서 1년, 한 달, 아니 하루만 더 살 수 있다면 수술하자. 뭐든지 다 해보자. 마지막까지 내가 니 옆에 있을 수 있게 그렇게 해주면 안될까?”는 우천의 애끓는 호소에 인숙은 수술을 받는다.
결국 수술 성공으로 인숙은 살아나지만 대신 기억을 잃어간다. 그리고 ‘기억을 잃으면 뭐가 남을까?’란 회의에 “그 기억을 잃게 된다면 다시 만들겠다. 너와의 새로운 기억을”이라고 다짐한다.
그리고 죗값을 치르고 나온 우천과 마주쳤을 때 두 사람은 ‘안녕!’이란 인사를 주고받는다. 한 사람만 있으면 살아갈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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