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LA, 이사부 통신원]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지만 포수는 투수에게 아무런 사인을 보내지 않은 채 가만히 있는다. 투수는 포수의 가랑이 사이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글러브를 착용한 쪽의 손목 안쪽을 유심히 보더니 공을 던진다. 같은 순간 나머지 야수들도 글러브 쪽을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인 뒤 수비 위치를 확인한다.
지난 20일(이하 한국시간) 열린 미국 대학 야구 명문 밴더빌트의 NCAA(전미대학체육협회) 디비전 1 경기 장면이다. 기존 야구 경기에서 빠지지 않던 포수와 투수의 사인을 주고받는 모습이 사라졌다고 21일(한국시간) 미국의 CBS 스포츠가 전했다. 수비에 나서는 다른 선수들도 손목에 시계와 비슷한 이 장비를 차고 있었다.
이것은 덕아웃에서 코치가 투수에게 어떤 공을 던지라고 지시하는 장비로 NCAA에서는 이 장비를 '전자 디스플레이 보드'라고 부른다. 코치가 덕아웃에서 컨트롤러에 숫자를 입력하면 그 숫자가 투수에게 장비에 전달되고 투수는 미리 약속한 대로 코치가 지시한 구질의 볼을 정해진 방향으로 던진다. 나머지 선수들도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 것을 알고 거기에 맞게 움직인다.
![[사진] 투구에 앞서 손목에 찬 장비를 확인하고 있는 밴더빌트 투수. <SEC 중계 화면/맥스 허츠 트위터 캡처>](https://file.osen.co.kr/article/2022/02/22/202202220115772516_6213ca3b484d8.jpg)
NCAA는 지난 시즌 이 장비의 도입을 결정하고 이번 시즌 처음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아직은 밴더필트 등 몇몇 팀만 도입한 상태다. 이 장비를 도입한 것은 투수와 포수가 사인을 주고받는 시간을 줄여 경기 시간을 단축시키고, 또 항상 문제가 되는 사인 훔치기 논란을 없애기 위해서다. 아직 이 장비를 도입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 효과가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한다.
메이저리그에서도 이 장비를 관심있게 봐야 할 것이라고 이 매체는 덧붙였다. 사인 훔치기 논란으로 매 시즌 시끄러운 데다 경기 시간의 단축은 메이저리그에서도 매우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이 같은 장비를 도입하려면 아직은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대학 야구의 경우 투수가 어떤 공을 던질지를 주로 코치가 결정하는 반면, 메이저리그에서는 포수와 투수가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현재 대학야구에서 사용되고 있는 이 장비는 코치만 입력을 할 수 있고, 선수들은 입력을 할 수가 없다. 때문에 장비를 메이저리그가 도입하려면 좀 더 개발이 필요하다. 또 포수가 투수에게 전달할 사인을 입력할 수 있게 장비를 개발해도 포수가 사인을 입력하는데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기 때문에 도입 여부는 성급하게 판단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지금도 새 노사단체협약을 위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선수 노조와의 합의도 필요하고, 마이너리그에서의 테스트 기간도 거쳐야 한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메이저리그가 사인 훔치기 논란을 지울 수 있는 이 같은 장비를 도입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미 NCAA도 메이저리그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테스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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