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힐’ 이혜영, ‘악마는..’ 메릴 스트립 연상시키는 카리스마 일품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2.03.10 12: 57

[OSEN=김재동 객원기자]  “넘어선 안되는 선? 그걸 왜 지들이 정해. 건방진 것들.”
국내 여배우중 카리스마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이혜영이 9일 첫 방영된 tvN 수목드라마 ‘킬힐’(극본 신광호·이춘우, 연출 노도철)의 ‘기모란’ 역으로 돌아왔다.
기모란은 UNI 홈쇼핑의 평사원으로 입사해 유리천장을 깨고 전무까지 오른 입지전적 신화의 주인공이다. 홈쇼핑의 핵심 파트인 패션과 뷰티를 업계 1위로 만들었다. 큰 이변이 없는 한 UNI그룹의 후계자가 될 UNI 홈쇼핑 사장 현욱(김재철 분)마저 깊은 신뢰를 보내고 있다.

제목 킬힐(kill heel)은 굽 높이가 10cm 이상인 굽 높은 구두를 의미한다. 그 구두를 신으면 주변이 내려다 보이고 다리가 길어 보이는 탓에 몸매가 날씬하게 위장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형적 외관을 감당해야 하는 발의 수고는 이루 말할 수가 없고 건막류(무지와반증)와 같은 질병을 초래, 신체 변형까지 감수해야 할 수도 있다. 또 발목이나 종아리가 가늘어 보일 수 있지만 정작 아킬레스 건의 긴장을 유도해 발목을 두껍게 만들 수 있다고도 한다. 말하자면 ‘빛 좋은 개살구’다.
드라마는 홈쇼핑 회사를 배경으로 그 빛좋은 개살구에 천착하고 매몰되어가는 기모란과 우현(김하늘 분), 옥선(김성령 분)의 부나비 몸짓을 그려갈 모양이다.
이혜영이 맡은 기모란은 첫 화부터 드라마의 얼개를 설계하는 기획자로 나선다. 비록 이야기의 시작은 패션 & 뷰티 쪽 퇴락한 쇼호스트 우현의 서사로 시작되지만 드라마는 스토리 진전의 구동축이 기모란임을 첫 화부터 명시한다.
그 기모란은 사장 현욱의 내연녀로 주제넘게 구는 장수미 상무의 비리를 까발리며 면전에 돈봉투를 던져주고 “꺼져!”라 일갈해 내쫓는다. 이어 현욱의 아내 신애(한수연 분)에겐 짐짓 고분고분 따라주는 모양새를 취하지만 '장수미가 선을 넘어 고까웠다'는 신애의 말을 곱씹으며 “넘어선 안되는 선? 그걸 왜 지들이 정해. 건방진 것들”이라며 혐오감을 드러낸다.
기모란이 보기에 장수미나 신애나 제 능력 하나 없이 남자 하나만 바라보고 호가호위하는 쓰레기들임엔 다름이 없다. 적어도 기모란은 자기 꿈을 위해 굴종할지언정 스스로의 미래는 스스로의 능력으로 개척해온 여장부인 것이다.
그 기모란의 눈에 잘나가는 MD 안안나(김효선 분)의 면전 모욕을 따귀 한방으로 응징하고 그 모멸감에 로비에서 쓰러지고만 우현이 들어온다. 이채를 띠며 반짝이는 기모란의 눈. 닮았다.
UNI 홈쇼핑에서만 22년을 바친 기모란만이 아는 한 여자. 무슨 사연인지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UNI 홈쇼핑 사장 현욱의 젊은 시절, 그를 절규케 만들었던 구급차에 실려간 여인과 우현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무언가 쓸만한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한 기모란은 바닥에 널부러진 우현을 향해 손을 내민다. ‘사장 부인입네’ 자신에게 수모를 안겨줬던 신애를 물먹이고 당당히 UNI 홈쇼핑의 실세로 자리매김할 그림이 눈에 보이는 듯. 아마도 첫 장면에 보여진 로맨틱한 호텔방의 주인공은 현욱과 우현이 될 모양이다.
한편 우현의 상황은 바닥에 널부러진 현재의 처지와 매일반이다. 시아주버니의 꾀임에 직장조차 그만두고 일용직으로 전락한 평범한 남편과 딸 아이까지를 건사해야 되는 가장역의 우현이다.
사내 입지는 패션 쪽은 언감생신, 자투리 시간 휴지나 팔아야 되는 처지로 급전직하 하고 있고 효율도 없이 몸값만 높아 이직도 무산된 처지다. 그런 우현이고 보면 기모란이 설사 악마라 해도 그 내민 손을 잡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몰리고 만 것이다.
그리하여 기모란은 우현을 본격적으로 성장시킬 태세다. 그러다보면 톱 쇼핑호스트로 활약중인 배옥선과의 마찰을 피해갈 순 없어 보인다. 시놉시스상 기모란과 배옥선은 절친한 선후배 사이인 것으로 설정돼 있고 결국 기모란의 노정되지 않은 사생활의 키 역시 배옥선이 쥐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렇게 이들 세 여인간 갈등의 고리는 더욱 두꺼워져갈 모양이다.
‘킬힐’의 이혜영을 보면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메릴 스트립이 연상된다. 태풍을 앞에 두고도 “무슨 소리야. 그냥 보슬비 좀 오는 것 가지고..‘라 일축했던 철혈의 커리어우먼 미란다가.
잘 잡힌 무게중심 이혜영의 ‘기모란’이 어떻게 드라마 '킬힐'을 꾸려갈 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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