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봐. 난 13번이나 잘렸어.”
한화의 2021년 리빌딩 시즌을 생생하게 담은 다큐멘터리 ‘클럽하우스’는 카를로스 수베로(50) 감독의 감춰진 리더십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었다. 낯선 나라에서 만년 꼴찌팀을 맡은 외국인 감독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 선수들을 휘어잡는 강력한 카리스마부터 야구에 대한 열정과 신념까지 1년간 희로애락을 가감없이 보여줬다.
무엇보다 수베로 감독의 인간적인 면모가 돋보였다. 실패를 거듭하는 젊은 선수들의 이야기를 듣고 동기 부여하며 인내하는 리더의 모습이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줬다. 시즌을 준비하고 개막에 들어가면서 에피소드 6편 중 2편만 봤다는 수베로 감독은 “있는 그대로 진실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옆에 카메라가 있다고 해서 다를 건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마지막 화에선 방출 선수를 꼭 껴안으며 위로해주는 장면이 있었다. 지난해 10월14일 방출된 포수 박준범(26)이었다. 매년 시즌 막바지에는 선수단 정리 칼바람이 분다. 당시 한화는 12명의 선수들을 방출했는데 박준범이 그 중 한 명이었다.
방출 통보를 받은 뒤 감독실을 찾은 박준범을 향해 수베로 감독은 “내가 야구하면서 몇 번이나 잘렸을 것 같아? 나를 봐. 나 13번이나 잘렸어”라며 “네 마음 속에 목표가 있다면 끝까지 가봐. 야구를 사랑한다면 분명 길은 있을 거야. 아프더라도 힘내”라고 위로하며 안아줬다. 박준범이 눈물을 흘리자 수베로 감독은 “운다는 것은 그만큼 애정이 있다는 거니까, 너의 그 애정이 마음에 든다”며 “이제 눈물을 그치면 다 털고 일어나야 해. 앞으로 계속 싸워나가야 해. 포기하지 마. 알았지?”라며 끊임없이 용기를 북돋아줬다.
그때 당시에 대해 수베로 감독은 “박준범과 같이 할 기회가 없어 개인적으로는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때 그의 표정을 보니 무척 슬퍼 보였다. 갈 길을 잃은 사람의 표정이었다. 같이 공감해주고 위로하며 안아주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나도 방출된 경험이 많아 그 느낌이 어떤지 잘 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수베로 감독은 “지금 박준범은 우리 전력분석원이다. 그와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웃었다. 방출 후 선수 생활을 접은 박준범은 올해부터 한화 퓨처스 파격 파트 전력분석원으로 제2의 야구 인생을 시작했다.
경북고를 졸업하고 지난 2015년 2차 5라운드 44순위로 한화에 입단한 그는 1군에서 한 경기도 뛰지 못했다. 입단 후 7년간 대부분 시간을 2군에서 보냈지만 오랜 기간 성실함을 인정받아 전력분석원으로 발탁됐다.
박준범 분석원은 “수베로 감독님은 자체 청백전 외에 뵐 기회가 많지 않았다. 방출 통보를 받은 날, 7년간 (1군에) 데뷔하는 모습만 그리며 달려왔던 노력들이 무의미해졌다는 상실감에 많이 힘들었는데 감독님 이야기가 큰 위로가 됐다”고 떠올렸다. 전력분석원으로 다시 대전을 방문했을 때 수베로 감독이 먼저 알아보고 반갑게 맞이했다고.

이어 그는 “구단 제의로 2월부터 퓨처스 타격 파트 전력분석원으로 다시 함께하고 있다. 묵묵히 해온 그 시간을 인정받았다는 생각과 새로운 기회에 감사함을 느낀다”며 “이제는 전력분석원으로 선수 경험을 살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영상, 데이터 자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