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힐’ 무서운 여자들의 ‘단두대 매치’ 스타트..기모란의 과거는 ?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2.04.08 18: 03

[OSEN=김재동 객원기자]  tvN 수목드라마 '킬힐'의 단두대 매치가 막을 올렸다. 칼을 뽑아든 것은 배옥선(김성령 분)이고 카운터파트는 기모란(이혜영 분)이다.
배옥선은 선전포고를 앞두고 치밀하게 준비해왔다. 우현(김하늘 분)을 ‘반 기모란 연대’에 끌어들이고 유니 홈쇼핑 사장인 이현욱(김재철 분)과 안주인 신애(한수연)에게도 반 기모란 정서를 심어주었다.
기모란의 운전수는 진작에 매수해 기모란의 일거수 일투족을 들여다보고 있었고 기모란이 유전자 감식을 통해 아들로 믿고있는 제임스(김현욱)와도 진작부터 공모관계에 있었다.

선전포고 타이밍도 숙고 끝에 결정했다. 복수의 대상인 남편 최인국(전노민 분)에겐 국회의원 재선이 결정되기 직전에, 기모란에겐 제임스를 보내, 낳자마자 버려버린 아들과의 재회로 처음 느껴보는 모정과 가족애에 흠뻑 젖어있는 시점을 택했다.
효과는 만점이었다. 최인국은 금배지를 지켜낸 순간마저 기뻐할 수 조차 없었다. 그로선 “날 사랑 안해도 상관없어. 우린 늘 함께할 거니까. 이 완벽한 지옥에서 오래오래”라고 선언한 배옥선에게 두려움에 질린 시선을 던지는 게 고작이었다.
기모란 역시 밤늦은 시간 꽃다발을 들고 찾아온 배옥선이 제임스의 신발을 보고 “언니 남자 있어?”라고 물어올 때 눈을 찡긋거리며 당장이라도 자랑하고 싶은 듯한 뿌듯함을 드러냈다.
그런 기분으로 음료를 준비하던 모란에게 옥선은 모란이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붙여놓은 하와이 사진을 발기발기 찢어 내던진다. “언니가 원하는 거라길래 찢어버리고 싶어서”라고 심상히 말하면서. “이제부터 내가 살았던 지옥에서 나랑 똑같이 공평하게 살게 될거야”란 선전포고다.
배옥선이 기모란에게 느끼는 적의의 실체는 자기혐오에 가깝다. 상상 속에서 기모란의 목을 명패로 누르며 내뱉었던 “나는 반평생을 당신이 먹인 모욕으로 살아 왔어. 그걸 이제 토해내려고”라는 대사가 그 심리를 설명한다.
옥선은 최인국을 향해 “나 만나기 전에 일이니까 그럴 수도 있어. 근데 현재진행형이더라”라고 말했었다. 과거의 일로 그쳤으면 그까짓 것 용서못할 것도 없었는데 현재진행형이므로 용서할 수 없다는 의미다.
반면에 기모란은 녹취록에서 “제발 지난 얘기 들춰내지 말아. 너한테 옥선이가 전부고 옥선이한테 네가 전부야”라 말했는데도, 그렇게 기모란으로선 최인국을 과거에 정리했음이 분명한데도 옥선은 기모란을 용서하지 않았다. 이처럼 최인국과는 다른 대응방식에는 모란이 가지고 놀던 최인국을 소개해줬을 때 좋다고 달려들었던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심리가 투영돼 있다.
눈 뜨면 시작되는 지옥을 올곧이 견뎌내 온 배옥선의 집념만큼 신애의 독선도 무섭다. 재벌가 딸로 평생을 갑으로 살아온 신애는 기모란의 음모를 눈치채고도 깜냥껏 해보라는 여유를 과시한다.
신애가 이현욱에게 던진 대사 “남한테 뺏기는 거 내가 못참는 거 알잖아요. 내가 당신을 어떻게 만났는데.. 당신이 그 증거잖아”하며 미소짓는 신애의 얼굴에선 포식자의 살기까지 느껴진다.
기모란에게 이용만 당해온 우현의 독기도 만만치는 않다. 소시민의 자존심이지만 무수히 짓밟혔다. 짓밟힐수록 노회해지고 영악해지는 성장형 캐릭터다. 어쩌면 기모란을 가장 닮은 캐릭터일 수 있고 그 학습능력에 위기의식을 느낀 기모란이 서둘러 우현의 싹을 밟아버리려고 안달인 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이들이 연합전선을 꾸려 맞상대하려는 기모란은 여전히 최종보스급이다. 옥선은 모란에 대해 “모란언니는 설마를 진짜로 만드는 능력이 있어. 그래서 무서운 거야.”라고 평했다.
진짜 무서운 이유는 그녀의 과거가 베일에 가려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10화까지 진행되도록 드러난 기모란의 과거는 능력있는 대학생 족집게 과외선생 정도다. 유니홈쇼핑을 먹어치울 음모에 뒷돈을 대준 마마(이용녀 분)도 당시의 인연이다. 이 마마의 “왜 이가 놈들 밑에 들어가서 그놈들 배만 불려줘”란 대사가 의미심장하다.
사회생활을 마마 표현 ‘이가네 수발’로 시작한 기모란은 이현욱의 첫사랑 혜수의 죽음에까지 관여한 정황이 드러났다. 실신한듯한 혜수를 옥상까지 끌고 올라가는 회상씬과 배옥선의 집을 찾아 “혜수가 죽었어.. 내가..내가.. 혜수를..”이라는 대사. 혜수가 갖고있던 '현욱'이라 새겨진 반지까지 기모란이 혜수 추락사에 어떤 역할을 했으리라는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기모란에게 혜수는 현욱과의 관계와는 상관없이 미국에서부터 친동생처럼 아꼈던 존재였다. 만약 그런 기모란이 추락사의 가해자라면 그 자체만으로도 섬뜩하다. 게다가 기모란은 무릎 꿇은 우현을 향해 “너나 혜수나 이렇게 비참하고 깨질 것 같은 순간 빛이 나”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으니..
만약 그렇다면 스스로의 능력이 발군이었던 기모란이 손에 피를 묻혀가면서까지 ‘이가네 수발’을 들은 이유는 뭘까? 우현이 제시한 “기모란은 왜 그렇게 회사에 연연하는걸까?”란 궁금증에 답이 있지 않을까? 배옥선은 자식 때문일 거라 추측하지만 기모란의 숨겨진 과거에 비밀이 있는 듯 보인다.
어쨌거나 “누군가를 지옥에 살게 하려면 내가 먼저 지옥에 살아야겠더라구요”라는 현욱의 말처럼 서로에 대한 적의를 품고 지옥을 헤매는 무서운 여자들의 데스매치가 ‘킬힐’을 흥미진진하게 만든다.
/zaitung@osen.co.kr
[사진] '킬힐' 방송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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