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거포 박병호(36)는 야구계에서 인성 좋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운 선수다. 같은 선수뿐만 아니라 구단, 팬을 포함해 주변 사람들에게도 매너가 좋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지난 5일 수원 홈경기를 앞두고 선수단, 구단은 물론 경호, 응원, 미화, 경비 등 음지에서 묵묵히 지원하는 스태프들에게도 감사의 의미로 피자 80판을 돌리기도 했다.
그런 박병호가 주말 대전 한화전에서 고초를 겪었다. 지난 8일 경기에서 한화 투수 김민우의 공에 헤드샷을 당했다. 초구 직구에 피할 틈도 없이 헬멧을 맞은 것이다. 병원 검진 결과 큰 이상은 없었지만 어지럼증으로 이튿날 경기를 쉬었다. 10일 경기도 선발에서 제외된 뒤 대타를 준비했다.
3-4로 뒤진 8회 2사 1,2루 찬스에 등장한 박병호. 그러나 볼카운트 2B-2S에서 한화 투수 장시환의 5구째 직구가 또 그를 맞혔다. 이번에는 옆구리로 공이 날아들었다. 헤드샷 이후 첫 타석에서 또 사구. 공에 맞는 순간 왼손을 허리에 얹은 박병호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화를 꾹꾹 누르는 모습이었다.


1점차 승부처였고, 고의가 아니라는 건 박병호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인 이상 화가 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보호대를 푼 박병호가 1루에 걸어나갔다. 장시환은 박병호를 바라보며 모자를 벗고 고개 숙여 미안함을 표시했다.
박병호의 사구로 이어진 2사 만루. 장시환은 신본기를 3루 땅볼 처리하며 실점 없이 위기를 넘겼다. 팀의 1점차 리드를 지키며 이닝이 종료됐지만 장시환은 기쁨이나 안도감보다 미안함과 불편함이 앞섰던 것 같다.
곧바로 1루 덕아웃으로 내려가지 않고 2루 쪽에 있던 박병호를 봤다. 그리곤 다시 한 번 모자를 벗어 사과의 뜻을 재차 전했다. 이에 박병호도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선후배 관계로 얽혀있는 KBO리그에선 투수가 타자를 맞히면 모자를 벗어 사과하는 게 문화로 자리잡았다. 과거에는 ‘승부의 세계에 웬 사과냐?’라는 식으로 부정적인 시각도 있었지만 이제는 서로 불필요한 오해를 없애는 동업자 정신의 기본으로 여겨진다. 이런 모습을 보고 배운 외국인 투수들이 사구 후 ‘폴더 인사’를 할 정도.

하지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사과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만큼 장시환은 박병호에게 미안했던 모양. 두 선수는 지난 2011~2014년 넥센(현 키움)에서 동료로 함께 뛴 인연이 있다. 박병호가 1년 선배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