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니 질문 더 없어?” 패전투수 칭찬하는 적장 [야구는 구라다]
OSEN 백종인 기자
발행 2022.04.11 05: 32

[OSEN=백종인 객원기자] 어랏? 이건 뭐지? 낯선 광경이다. 그러니까 1회 첫 타자 때다. 타석에 들어서며, 돌연 뒤를 돌아본다. 그리고 헬멧 고리에 손가락을 건다. 살짝 드는 동작이다. 어렴풋이 고개도 숙인다. 분명 인사하는 모습이다. 상대편 벤치를 향해서 말이다.
경의의 대상은 노감독이다. 올해 72세. 더스티 베이커가 웃는다. 자신도 모자 챙에 손을 올린다. 답례다.
하긴 뭐. 시도 때도 없다. 이 타자의 ‘목례’ 말이다. 거의 습관이다. 도처에서, 아무에게나(?) 그런다. 같은 선수끼리, 심판에게, 코치나, 스태프까지…. 오죽하면 한동안 퍼포먼스도 있었다. 홈런 치고 들어올 때, 동료들이 90도로 허리를 꺾었다.

[사진] 오타니 쇼헤이.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그런데 이날은 좀 다르다. 상대가 적장이다. 그것도 경기 중에 말이다. 살벌한 승부의 세계 아닌가. 차려도 너무 차린다. 지난 9일(한국시간) 애너하임에서다. 에인절스와 애스트로스의 개막 시리즈 중에 생긴 일이다.
오타니 쇼헤이. /OSEN DB
개막을 앞두고다. 잠시 시끄러웠다. 개정된 규칙 때문이다. 이런 조항이 추가됐다. ‘선발 투수가 강판 뒤에도 지명타자로 계속 뛸 수 있다.’ 이른바 ‘오타니룰’이다.
비판은 나름 이유가 있다. 해당 케이스는 딱 한 명이다. 그걸 위해서 법을 바꾸다니. 형평성에 어긋난다. 특정 선수, 특정 팀(에인절스)에만 이익이라는 주장이다.
사실, 틀린 얘기는 아니다. 아마도 마음에 걸렸을 것이다. 당사자는 모범생이다. 별로 욕 먹을 일 없었다. 늘 바르고, 선한 이미지만 쌓았다. 그러니 편치 않았으리라.
당장 견제구가 날아온다. 우주인들의 지역 매체다. 지구 라이벌이라 민감하다. 댈러스 모닝뉴스가 문제를 지적했다. ‘에인절스에게 유리하다. 투수 엔트리에 1명 더 여유가 생긴다.’ (에반 그랜트 기자)
그런데 웬걸. 맞장구 쳐줄 연고팀 감독은 딴소리다. “아냐. 그게 아냐. 오타니를 데려갔으니까, 에인절스가 유리한 거지. 다른 팀도 그렇게 키우면 되잖아.” 더스티 베이거가 점잖게 타이른다. 심지어 대의명분으로 못을 박는다. “유/불리를 따질 일이 아니다. 팬들을 위한 규칙이라는 게 중요한 거다.”
[사진] 더스티 베이커 감독.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그리고 개막전 날이다. 경기 전에도, 그리고 끝난 뒤에도. 감독이 기자들에게 서비스하는 시간이다. 질문이 이어진다. 늘 그렇듯 승부와는 관계없다. 질문 상대도 안 따진다. 온통 이도류 얘기 뿐이다. 이날 노감독이 대답해야 할 것들이다.
‘초구를 던진 선발 투수가, 돌아서서 1번 타자로 초구를 쳤다. 느낌이 어땠냐.’
‘99마일 히터(패스트볼)에 슬라이더도 엄청나더라. 어떻게 공략했냐.’
‘타격은 좀 덜 올라온 것 같더라.’ 기타등등.
웬만한 사람이면 짜증이 날 법하다. ‘왜 자꾸 남의 선수만 묻냐.’ ‘우리 팀 얘기 좀 하자.’ 그런데 이쑤시개 감독은 다르다. 일일이, 친절하게 대답한다. “50년 야구판에 있으면서 저런 선수는 본 적이 없다. 남들 존경을 받으면서, 자기 자신도 남들을 존중해주는 저런 모습은 정말 보기 좋다.”
그러면서 한 술 더 뜬다. 기자들이 멈칫하던 때다. “오타니 질문 더 없어?” 하면서 에피소드 하나를 들려준다.
“작년 시즌 우리 홈 게임 때다. 상대가 에인절스였다. (관중석 한 쪽을 가리키며) 구경 온 아내가 바로 저기 쯤 앉았다. 뭐하나 봤더니, 연신 핸드폰으로 오타니 사진만 찍고 있더라. 내가 뻔히 보고 있는데 말이다. 껄껄껄.”
▶ 역대 9번째로 양쪽 리그에서 우승한 감독 ▶ 최초로 5개 팀을 가을 야구로 인도한 사령탑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시카고 컵스, 신시내티 레즈, 워싱턴 내셔널스, 휴스턴 애스트로스) ▶ 아직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가 없는 빅 보스
역대 AL & NL 우승 감독. /MLB stats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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