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정지연 감독 "장르로 풀어낸 여성의 이야기, 더 많이 들려주고파"[인터뷰 종합]
OSEN 김나연 기자
발행 2022.04.14 18: 27

 ‘봄에 피어나다’, ‘소년병’, ‘감기’ 등의 단편으로 각종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던 정지연 감독이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영화 ‘앵커’를 통해 데뷔 첫 장편이자 상업영화에 도전하게 된 정지연 감독은 “요즘 잠을 잘 못 잘 정도다. 관객과 만나는 걸 그렇게 바라왔는데 너무 도망치고 싶고 떨린다. 행복하고 긴장되는 마음”이라고 개봉을 앞둔 소감을 전했다.
‘앵커’는 방송국 간판 앵커 세라(천우희 분)에게 누군가 자신을 죽일 것이라며 직접 취재해 달라는 제보 전화가 걸려온 후, 그녀에게 벌어지는 기묘한 일을 그린 미스터리 스릴러.

정지연 감독은 첫 장편 데뷔작의 장르를 ‘스릴러’로 택한 이유를 묻자 “원래 꼭 이런 장르로 데뷔를 하고 싶다는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다. 인물을 구상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스터리 심리스릴러가 제일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 했다”고 설명했다. 또 완성된 영화를 보고 느꼈던 아쉬운 부분으로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고 싶은 부분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도 “자아도취는 아니고, 스스로 ‘수고했다’고 얘기해주고 싶다”고 털어놨다.
또 주인공으로 9년 차 앵커를 설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여성 앵커가 주인공이 되어 직업적인 부분에 대해 다뤄진 적은 없었던 것 같아서 새로운 면이 있을 것 같았다. 대외적으로 성공한 여성의 이면을 보여주기에 있어서 신선한 면이 있었다. 외적으로도 지적으로도 누구나 동경할만한, 흠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위치가 주는 이성적인 이미지가 있지 않나. 그런 부분이 개인적인 영역과 상반되는 결과를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서 앵커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첫 장편 연출인 만큼 정지연 감독에게는 여러가지 고민과 노력이 뒤따랐다. 정지연 감독은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 안 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힘들긴 했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그는 “함께 개발한 제작사 대표님이 대표이자 동료로서 많이 격려해줬다. 제 이야기를 제일 처음 들어주신 분이었고 ‘그게 무슨 얘긴지 모르겠는데 재밌다’고 말해줬다. 무슨 얘기인지 알게 해주려고 노력했다. 긴장감 있는 개발과정 거쳤다. 울고, 웃고, 위로받고, 포기하려 할 때는 함께 졸업한 영상원 동기들이나 영화를 포기하지 않고 달리고 있는 동료들이 서로 시나리오 봐주면서 싸우면서 격려하고 다독여 줬다. 영화가 완성되고 축하문자가 오는데 눈물이 나더라”라고 울컥했던 심경을 전했다.
‘앵커’는 세라에게 죽음을 예고하는 제보 전화가 걸려오고, 제보자의 집으로 향한 세라가 제보자 미소(박세현)와 그의 딸의 시체를 목격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연출뿐 아니라 각본까지 모두 직접 작업한 정지연 감독은 “거의 6년간 개발했으니 몇몇 장면 빼고는 정말 많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그대로 남아있는 건 마지막 엔딩이다. 엔딩을 설득하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고 밝혔다.
특히 시나리오를 연출하는 데 있어서 가장 힘들었던 장면이 바로 미소와 아이의 죽음이었다고. 정지연 감독은 “아이의 죽음 연출하는 게 스스로 불편했다. ‘이 컷을 만들기 위해 이런걸 시켜야 하는구나’ 싶었다. 물론 그 아이는 쿨하게 했는데도 ‘내가 잘못하는 것 같다’, ‘힘들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윤미소 역을 연기한 박세현 배우도 힘들었을 거다. 목을 매는 연기도 그렇고, 힘들어하는데 계속 (촬영을) 해야하는 게 저 스스로 괴로웠다. 그래도 그걸 한마음으로 구현하기 위해 다들 노력하는 게 감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는 소재를 사용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전했다. 정지연 감독은 “저 역시 동반 자살이라는 개념을 공부하면서 충격받았다. 저 역시 너무 이걸 대중적인 연민의 시선으로 봤던 것 같다. 특별히 그것에 대해 시사하고 싶은 게 아니라, 세라가 현장을 봤을 때 객관적으로 뉴스를 전달한다. 하지만 결국 이게 자신의 문제와 결합 돼 있다는걸 알고 있기 때문에 아이러니함을 표현하기 좋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인 만큼 ‘앵커’에서는 배우들의 강렬한 연기 열전이 돋보였다. 정지연 감독은 배우들의 캐스팅 계기를 묻자 “천우희 배우님은 이미지가 너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새로우면서도 세라의 일에 대한 집요함이 우희 배우님의 연기에 대한 열정, 집요한 부분과 잘 어울리겠다고 생각했다. 세라를 준비하면서 걱정됐던 게 감정의 스펙트럼과 광기까지 끌어내는 연기를 보여줬을 때 과장되거나 튀어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이입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천우희 배우님은 워낙 섬세한 연기를 해서 좀 더 자연스럽게 광기를 표출할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래서 더 함께하고 싶었다”고 답했다.
이어 “이혜영 선생님은 제가 소정이란 역할을 구상하면서 욕망이 꺾인 얼굴 갖고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고. 욕망이 커보이는 얼굴을 원했고, 이혜영 선생님의 독보적 아우라와 카리스마가 그런 욕망으로 잘 표출 될 거라 생각했다. 화려한 요소들, 선생님이 가진 특별한 개성들을 걷어내면서 얼굴에 집중하도록 하는 게 목표였다. 아주 작고 섬세한 천우희의 폭발적 연기, 폭발적 얼굴을 가진 이혜영의 섬세한 연기가 긴장감을 유발하면 재밌을 것 같았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또 이혜영이 맡은 엄마 ‘소정’이라는 캐릭터에 대해서는 “대중영화나 드라마에서 엄마라는 인물을 다룰 때 희생적인 엄마로 다루거나 나쁜 엄마로 다루는 시선이 즐겁지는 않았다. 물론 그렇게 다룰 순 있지만 그게 너무 스테레오 타입화 되는 것에 불만이 있었다”며 “엄격한 잣대를 주지 않으면서 엄마라는 역할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런가 하면 정지연 감독은 미소의 주치의였던 정신과 의사 인호 역에 대해 “숙제같은 캐릭터”라고 표현했다. 그는 “인호라는 인물이 세라가 자신의 부정적인 것들을 투사하는 인물이라 세라의 주관적 시점으로 그려져서 기능적으로 보여질 수 있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기능에 충실해서 연기를 하면 인물도 설득력을 잃고 극이 풍성해지지 않을 것 같았다”고 고민을 전했다.
하지만 인호 역을 맡은 신하균의 노력으로 함께 역할에 대한 고민을 해소해 갔다고. 정지연 감독은 “‘연기의 신’ 님이 오셔서 제 얘길 들어주시고 여러 가지 같이 고민해주는 것 자체가 감사하고 행복했다”고 고마움을 드러냈다.
‘앵커’에서는 ‘물’이라는 매개체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실제 세라의 트라우마 처음과 끝에는 ‘물’이 존재했다. 정지연 감독은 극중 등장하는 반지하 집에서도 “물이 많이 흘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는 “오프닝도 물에서 시작한다. 침수되고 있는 느낌을 연출하고 싶었다. 불행한 모녀가 침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려고 했다”고 밝혔다.
이어 “물이 저한테는 중요하다. 물이 주는 무서운 분위기가 있다. 빠져 죽을 것 같고 끝이 보이지 않으면서도 물이 주는 해방감도 있다. 물의 흐름만 타면 유연하게 잘 살아갈 수 있지 않나. 세라의 병적 증상이 물이라는 느낌으로, 마지막에 해방되는 것까지 조금씩 깔아서 표현하고 싶었다. 처음엔 어둡고 축축함을 보여주고 싶었고, 점점 세라의 심리변화와 함께 수면에 가까워지는 느낌으로 표현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지연 감독은 ‘앵커’의 반전 요소가 부각되는 것에 대한 우려를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반전 얘기를 많이 하는데, 반전을 유추하고 보면 더 잘 보이는 것 같다. 반전이 있다고 하면 찾아서 인지하면서 보다 보니 재미가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된다”며 “그냥 무슨 얘긴지 한번 보자는 마음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다”고 관전 포인트를 꼽았다.
‘앵커’를 통해 첫 장편 연출을 무사히 끝마친 정지연 감독. 그는 “앞으로 보여주고 싶은 이야깃거리들이 있냐”고 묻자 “너무 오랫동안 쓰고 만들어온 ‘앵커’를 떠나보내는데 집중하는 중이다. 많이 털어내면 보일 것 같다”면서도 “‘앵커’에서 딸의 이야기를 풀어갔는데, 다시 이런 이야기를 푼다면 온전히 엄마의 입장을 장르로서 만들어보고 싶다”고 털어놨다.
“여성의 이야기를 장르로 표현하고 싶다는 욕망이 있다”고 밝힌 그는 “더 많은 사람들한테 들려주고 싶고, 관심받고 싶다. 이런 이야기도 있고 이런 사람도 있다는 걸 소통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재밌게 만들어야 다는 책임감과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또 ‘앵커’를 본 관객들로부터 듣고 싶은 평에 대해서는 “‘재미있다’는 것과 함께 ‘엄마와 딸이라는 관계를 새롭게 조망하게 됐다’는 관객들의 반응이 제일 기쁘더라. 계속 듣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정지연 감독은 “영화는 어떤 의미냐”고 묻자 “안 할 수 있다면 안 하고 싶은, 안 만날 수 있다면 안 만나고 싶은 친구나 가족 같은 느낌”이라고 답했다. 그는 “요즘 ‘내가 왜 이렇게 감독까지 왔을까’하는 생각을 한다. 저처럼 소심하고 부족한 사람이 많은 사람들과 이걸 하겠다고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스스로 신기하다”면서도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다. 그걸 많이 하지 못하고 살았고, 더 크게 외치고 싶어서 영화를 선택했다. 계속 할 수 있으면 기쁠 것 같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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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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