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5회 초. 스코어 3-6이다. 천사들이 끌려간다. 1사 1루에서 타석은 오타이 쇼헤이 차례다. 카운트 0-1에 2구째. 좌완 콜비 앨러드의 커터(85.7마일)가 어정쩡하다. 약간 몸쪽 높은 코스로 몰린다.
그러자 용서가 없다. 강력한 스윙이 폭발한다. 타이밍도 제대로 맞았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결과다. 108.1마일(174.0㎞)짜리 타구가 415피트(126.5m)를 비행한다. 그리고 알링턴 글로브라이프필드의 우측 스탠드 중간에 꽂혔다. 스코어가 5-6이 된다. 숨가쁜 1점 차다. 홈 관중들이 싸늘해진다. 16일(한국시간) 열린 텍사스-LAA전 때 모습이다.
중계팀은 리플레이로 극적인 순간을 재생시킨다. 그러던 중이다. 미처 몰랐던 장면이 화면에 잡힌다. 홈런 직후 타자의 반응이다. 잔잔하던 캐스터의 설명 위에, 화들짝 놀란 해설자의 폭포가 쏟아진다. 마크 구비차의 반응이다.
“이런 세상에, 저 친구 배트를 던졌군요. ㅎㅎㅎㅎ. 네, 좋아요(I love it). 잘했어요(Nice.) ㅋㅋㅋㅋㅋ.” 훈민정음으로는 표현이 어려운 여러 종류의 웃음 소리가 멘트 중간중간을 가득 채운다.

뜻밖이다. 모범생으로 소문난 타자다. 매사에 사려 깊고, 매너 좋기로 유명하다. 극적인 퍼포먼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이날은 달랐다.
아시다시피 우리가 흔히 ‘빠던’이라고 부르는 ‘배트 플립(bat flip)’은 조심스러운 동작이다. 자칫 상대에 대한 자극으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물론 처음은 아니다. 그동안도 간간이 비슷한 동작이 있었다. 하지만 약식이다. (홈런 친 뒤) 한 손으로 배트를 살짝 던지는 정도였다.

하지만 이날은 아니다. 완전한 투척이 이뤄졌다. 배트가 공중에서 2회전 반을 돌았다. 내던지는 오른손 동작은 상대 덕아웃을 향하고 있었다. 그것 만이 아니다. 또 한 가지가 아슬아슬했다. 홈런 구경이다. 타구를 응시하며, 출발을 늦추는 동작이다. 역시 금기(禁忌) 사항 중 하나다.
물론 이해는 간다. 개막 이후 신통치 않았다. 심적인 압박이 심했을 터다. 7경기, 30타석 가까이 막혀 있었다. “(어제까지) 타이밍이 계속 늦어서, 빨리 나간다는 마음으로 타석을 준비했다. 덕분에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다. (두번째 홈런은) 뒤지고 있는 게임의 흐름이 바뀐 것 같아 괜찮았다.” (오타니 쇼헤이 경기 후 인터뷰 중에서)
하지만 일련의 상황을 대입해 보자. 이후 게임은 역전됐다. 6-2로 앞서던 홈 팀이 6-9로 뒤집힌 것이다. 게다가 원정 경기였다. 결코 간단치 않은 분위기다.
물론 당사자가 거물급이다. 전년도 MVP에, 리그 최고의 스타다. 쉽사리 어쩔 상대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그동안 좋은 이미지도 많이 쌓았다. 그래서 그런지 모른다. 즉각적인 대응은 없었다. 이후 두 타석은 특이사항 없이 지나갔다. (1루 땅볼-삼진)

그러나 아직 모른다. 다른 각도에서 잡힌 화면을 보시라. 관중과 선수. 모두의 시선이 홈런 타구를 좇던 시점이다. 레인저스 덕아웃의 몇몇은 다르다. 타자를 응시한다. 마치 그런 표정이다. “우린 네가 한 일을 모두 보고 있어.”
잊지 마시라. 텍사스는 전기톱과 건맨의 고장이다. 특별히 ‘배트 플립’에 민감하다. 21세기 최고의 라이트 스트레이트가 작렬한 곳이기도 하다. 비록 주인공(루그네드 오더어)은 팀을 떠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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