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세 늦깎이 좌완투수 윤정현(키움 히어로즈)이 마침내 프로 첫 승리를 맛봤다. 키움 유니폼을 입고 승리 인터뷰를 하기까지 그 누구보다 우여곡절이 많았기에 이날의 승리가 더욱 감격스러웠다.
윤정현은 지난 17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두산 베어스와의 시즌 3차전에 구원 등판해 1⅓이닝 1피안타 1볼넷 3탈삼진 무실점으로 데뷔 첫 승을 신고했다.
윤정현은 1-2로 뒤진 4회 2사 1, 2루 위기서 선발 최원태에 이어 등판했다. 투수교체는 성공이었다. 첫 타자 김인태를 유격수 땅볼 처리하며 실점 없이 이닝을 끝냈고, 6-2로 역전한 5회 김재환의 2루타와 포일, 강진성의 볼넷으로 1사 1, 3루에 처했지만 대타 김재호와 대타 박계범을 연속 삼진으로 잡고 다시 위기를 수습했다. 신무기인 투심을 비롯해 직구, 슬라이더를 적절히 섞어 효율적인 승부를 가져갔다.

윤정현은 여전히 6-2로 리드한 7회 김준형에게 마운드를 넘기고 경기를 마쳤다. 경기가 키움의 6-2 승리로 마무리되면서 윤정현이 구원승으로 데뷔 첫 승을 장식하게 됐다.
경기 후 만난 윤정현은 “인터뷰를 처음 들어와 봤다. 긴장이 많이 된다”고 웃으며 “등판했을 때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는데 1승이라는 좋은 결과로 이어져서 너무 기쁘다. 승리 후 항상 응원해주시는 부모님이 생각났다”고 감격의 첫 승 소감을 전했다.

윤정현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세광고 시절 좌완 유망주로 이름을 날리며 2012 신인드래프트에서 롯데 자이언츠 지명을 받았지만 프로 대신 동국대학교 진학을 택했다. 이후 개인 사정으로 대학을 중퇴한 뒤 2013년 7월 미국 볼티모어 오리올스에 입단해 메이저리그에 도전했다.
그러나 마이너리그의 벽은 높았다. 3시즌 동안 20경기 2승 4패 평균자책점 3.55에 그치며 빅리거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2016년 11월 방출 통보를 받았다. 이후 한국으로 들어와 현역병으로 병역 의무를 이행했고, 2019년 신인드래프트에 다시 참가해 넥센 2차 1라운드 4순위로 마침내 KBO리그에 입성했다.
사실 키움에 입단해서도 큰 주목을 받진 못했다. 윤정현은 첫해 3경기 평균자책점 9.00을 비롯해 작년까지 3시즌 통산 28경기 승리 없이 1패 1홀드 평균자책점 6.70을 남긴 그저 그런 좌완투수였다.
윤정현은 “올해가 키움에서 4년차인데 그 동안 보여드린 게 없었다. 그래서 이번 스프링캠프에서는 1군에서 오래 던지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운동을 열심히 했다. 늦게 왔기 때문에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다”라고 전했다.
윤정현은 구체적으로 “일단 다치지 않아야 야구를 오래할 수 있다”며 “그리고 과거 손혁 감독님이 투심을 알려주셨는데 구종을 완전히 익히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지금은 다 익혔기 때문에 자신 있게 던질 수 있다”고 그 동안의 노력을 설명했다.

2019년 함께 입단한 이대은(은퇴), 이학주(롯데), 하재훈(SSG) 등 유턴파 형들의 활약도 자극이 됐다. 윤정현은 “형들은 유명했고, 난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더 살아남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형들보다 운동을 더 오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토록 바랐던 첫 승을 거뒀기에 과거 힘들었던 타지 생활도 이제는 웃으면서 말할 수 있다. 윤정현은 “미국에 있을 때는 내 선택을 후회했는데 지금은 다 좋은 것 같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것도 많다. 좋은 경험이었다”며 “키움에 와서도 1, 2년차 때 승리가 나오지 않아 1승이 진짜 어렵다는 걸 다시 느끼게 됐다”고 되돌아봤다.
윤정현은 롤모델 류현진(토론토 불루제이스)을 본받고자 그와 같은 등번호 99번을 달고 뛰고 있다. 마침내 첫 승에 골인한 그는 “99번이라는 숫자가 많이 무겁지만 그래도 조금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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