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종식을 알리는 3년만의 이벤트
[OSEN=백종인 객원기자] 스코어 2-2로 팽팽하다. 5회 말. 홈 팀의 공격이다. 선두 김지찬은 일찌감치 K를 먹었다. 그리고 다음 타석. 초구가 강렬하다. 150㎞짜리가 깊은 곳을 찔렀다. 화들짝. 타자가 피해보지만 불가항력이다. 다리에 맞았다. 피해자는 순간 감정이 폭발한다. 배트를 던질 듯, 헬멧도 팽개칠 듯. 아슬아슬한 동작이 이어진다.
그리고는 가해자를 향해 성큼성큼 돌진한다. 한바탕 할 기세다. 불꽃맨도 마다하지 않는다. 뚜벅뚜벅. 마운드에서 내려온다. 글러브 벗고 전투 모드다. 뜻밖인 것은 포수(지시완)다. 타자를 붙잡거나, 말리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우두커니 관중 모드다.
다행이다. 구심(김성철)의 동작이 빠르다. 달려나와 타자의 앞길을 막는다. 1차 진압은 성공이다. 이어 양팀 덕아웃이 비워진다. 불펜도 모두 출동한다. 청소 시간이다. 그라운드에서 잠시 단합을 확인한다. 큰 불상사 없이 워크샵은 마무리됐다.

사건은 MBC 뉴스데스크에도 보도됐다. 그러고 보니 3년 만의 벤치 클리어링이다. 팬데믹 기간에는 없었던 일이다.
그건 그렇고. 궁금한 게 하나 둘이 아니다. ‘손에서 빠진 거다.’ ‘아니다. 고의성이 다분하다.’ ‘그런데 도대체 이유가 뭐냐.’ ‘둘이 초면인데 왜 저러냐.’ 기타 등등. 지금부터 그 얘기를 하려한다. 늘 전제하지만 짐작이고, 구라다. 판단은 각자의 몫으로 남긴다.
벤클 1시간 22분전 (1회 첫 타석)
1회 첫 타석부터 조짐이 있었다. 역시 주자 없는 1사 후다. 영락없는 초구다. 149㎞가 안쪽으로 날아왔다. 식겁한 타자가 간신히 피했다. 맞지는 않았지만, 기분은 영 나쁘다. 한동안 레이저를 쏜다. ‘뭐야? 왜 그래?’ 하는 표정이다.
포수 지시완이 만류한다. ‘일부러 그런 거 아닌데.’ 하는 모습이다. 투수는 무표정이다. 딱히 어떤 반응도 없다. “구자욱 선수 표정이 일그러졌습니다. 몸쪽에 던지기는 했는데, 지금처럼 아예 옆으로 가면, 타자에게 오해의 소지가 있죠.” (SBS Sports 윤성호 캐스터, 이종열 해설위원)
만약 의도가 들어있다고 치자. 그럼 의문이 남는다. 도대체 왜? 첫 만남, 초구부터? 그것도 1회 첫 타석인데? 한가지 의심되는 부분이 있다. 그 앞 타석이다. 그러니까 1번 김지찬 때다.
카운트 2-2였다. 5구째 투구 직전이다. 갑자기 타자가 타임을 건다. 동시에 타석도 빠져나간다. 구심이 그걸 받아줘 경기가 중단된다. 이 때 글렌 스파크맨은 이미 투구 동작에 들어간 상태다. 팔과 스텝이 나오려다 갑자기 멈춰야 했다.

이럴 때 투수들은 (대부분) 기분 나쁘다. 잔뜩 집중하던 찰나에 김이 빠지기 때문이다. 물론 납득되는 상황은 있다. (투포수) 사인 교환이 길어질 때다. 그래서 타자가 호흡 정리가 안되면 타임을 걸고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당시는 그게 아니다. 5구째 준비는 길지 않았다. 오히려 속전속결 느낌이다. 사인 나오자마자 투구 모션이 시작됐다. 오히려 타자가 쫓기는 분위기다. 투수 입장에서는 그걸 늦추려 타자가 타임을 걸었다고 생각할 만한 순간이다. 이럴 경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는 경우도 많다. 간혹 빈볼의 원인이 된다.
그럼 목표가 당사자 아닌, 그 다음타자가 된 이유? 아마도 1회 첫 타자였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그러기는 싫었으리라. 대신 다음 타자 초구에 그런 선택을 했으리라는 가설이다. 만약 구자욱이 명백한 고의를 느꼈고, 그의 발끈함이 그것 때문이라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벤클 42분전 (3회 두번째 타석)
두번째 만남은 3회 말이다. 이 때는 별 일이 없었다. 풀카운트 끝에 좌익선상 2루타로 진루했다. 혹시 주자로 나가서 문제가 있었나? 간혹 (포수) 사인을 가르쳐준다는 오해가 생기는 곳이다. 하지만 아니다. 실전을 관찰하면 의심할 만한 일은 없었다. (오재일의 적시타로 구자욱 득점. 삼성 2-1 리드)
벤클 1분전 (5회 투포수 사인교환)
5회 문제의 타석 초구다. 사인 교환 내역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시완의 첫번째 픽은 바깥쪽 직구였다. 투수가 반응이 없다. 이번엔 슬라이더 사인을 내 본다. 이것도 오케이 받지 못했다. 세번째 사인이 몸쪽 빠른 볼이다. 그러자 투수가 곧바로 투구 동작에 들어갔다. 포수 미트는 몸쪽 높은 곳으로 위치한다.
이 사실은 즉, (벤치로부터) 기획된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만약 의도가 포함됐다고 하더라도 투수 자신의 뜻이라는 점이다. 이는 사태에 대한 스파크맨의 반응에서도 짐작되는 부분이다.

벤클 3년전 (KC 로열스 시절)
3년 전이다. 2019년 5월 29일의 일이다. 화이트삭스가 로열스를 홈으로 불렀다. 2회 말. 2-1로 앞서던 홈 팀이 무사 1루의 기회를 잡았다. 타석에는 팀 앤더슨이다. 카운트 1-0에서 두번째 투구가 헬멧으로 날아왔다. 구심은 헤드샷에 대해 퇴장 명령을 내렸다. 쫓겨난 투수가 바로 캔자스시티의 선발 글렌 스파크맨이다.
로열스 측은 강하게 반발했다. “86마일 체인지업으로 맞추는 사람이 어디 있냐”며 고의성을 부인했다. 그러나 상대는 보복구라며 비난했다. 한 달 전 앤더슨의 (홈런 후) 배트 플립에 대한 응징이라는 얘기였다.
예전 일을 들추는 이유가 있다. 상습성을 부각시키려는 게 아니다. 당사자의 반응을 살펴보자는 뜻이다. 2019년 시카고 때는 달랐다. 공을 던진 직후 자신의 손을 보며 ‘뭔가 잘못됐다’며 자책하는 모습이 뒤따랐다. 즉, 의도가 아닌 ‘사고’였다는 점이 표정에 역력히 드러난다.

올해의 불자대상
대한불교 조계종은 이날(22일) ‘올해의 불자대상’을 선정해 발표했다. 헌정 정각 동우회 함종한 회장, 박대섭 국군 예비역불자연합회 회장 등과 함께 유명 스포츠 선수들이 몇 명 포함됐다. 쇼트트랙 국가대표 최민정과 프로 당구선수 스롱 피아비가 그들이다.
그리고 이날 ‘뉴스데스크’에 진출(?)한 구자욱도 수상자 중 한 명이다. 불심(佛心)이 깊은 그는 잠시 평정을 잃고 108번뇌 중 성냄의 얽매임(瞋纏)에 빠졌다. 하지만 해탈의 경지를 되찾았다. 경기 후 전준우와 손잡고, 원정 팀을 찾아 협량(狹量)을 속죄하며 자비를 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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