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살 홈런타자도 도루한다…차포 없는 디펜딩챔피언의 생존 방식
OSEN 이후광 기자
발행 2022.05.05 06: 27

36살 베테랑 4번타자의 시즌 도루가 벌써 3개가 된 팀이 있다. 물론 그에게 의도적으로 도루를 시키는 건 아니다. 중심타자가 2명이나 부상 이탈하면서 어쩔 수 없이 한 베이스 더 가는 야구를 하다 보니 4번타자가 덩달아 뛰게 됐다.
3년 총액 30억원에 KT로 FA 이적한 박병호(36)는 홈런과 함께 당초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발로도 팀 승리에 공헌하고 있다. KBO리그 복귀 첫해인 2018년부터 작년까지 4년 동안 단 한 개의 도루도 없었던 그가 올 시즌 26경기를 치른 가운데 벌써 3개의 도루를 성공시킨 것이다.
박병호는 지난달 22일 잠실 LG전에서 2루 도루에 성공하며 넥센 시절이었던 2015년 9월 13일 목동 삼성전 이후 무려 2412일 만에 통산 60번째 도루를 기록했다. 이후 4월 26일 수원 KIA전과 5월 3일 수원 롯데전에서 각각 도루를 추가, 올 시즌 이 부문 공동 16위까지 올라섰다. 함께 16위를 기록 중인 타자 중에서 30대 중반을 넘긴 거포는 박병호가 유일하다.

KT 위즈는 3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롯데 자이언츠와의 시즌 4차전에서 10-5로 승리했다.KT는 3연전 기선제압과 함께 2연패에서 탈출하며 시즌 12승 14패를 기록했다. 반면 최근 5연승, 원정 8연승이 좌절된 롯데는 15승 1무 10패가 됐다.7회말 1사 1,3루에서 KT 박병호가 도루에 성공하고 있다. 2022.05.03 /sunday@osen.co.kr

그렇다면 박병호를 왜 이렇게 뛰게 하는 것일까. 이는 강백호, 헨리 라모스의 부상 이탈을 메우려는 일종의 고육지책이다. 4일 수원에서 만난 이강철 감독은 “한 베이스를 자꾸 더 보내려고 하다 보니 그런 경우가 생긴다”라며 “원래는 새 클린업트리오를 앞세워 치는 야구를 하려고 했는데 강백호, 라모스가 모두 빠지면서 다시 움직이는 작전을 쓰게 됐다. 이기기 위해 그러는 것”이라고 고충을 털어놨다.
KT는 시즌에 앞서 강백호-박병호-라모스로 이어지는 막강 중심타선을 구축했지만 개막 직전 강백호, 그리고 4월 말 라모스가 나란히 부상 이탈하며 공격력이 급격히 약화됐다. 팀 타율은 4위(2할4푼7리)로 준수한 편이지만 득점권타율이 리그 꼴찌(2할3리)에 머물러 있다. 이에 벤치가 득점권 상황에 적극 개입하며 이른바 점수를 짜내는 야구를 자주 하고 있다.
3일 오후 수원 KT 위즈파크에서 2022 신한은행 SOL KBO리그 KT 위즈와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가 열렸다.3회말 1사 1루에서 KT 1루주자 심우준이 도루에 성공하고 있다. 2022.05.03 /sunday@osen.co.kr
지금까지 박병호에게 도루 사인이 난 적은 없다. 대부분이 치고 달리기에 의한 도루였다. 그리고 다행히 박병호의 주루 센스가 예상보다 뛰어나다. 이 감독은 “원래 넥센 시절부터 박병호가 어느 정도 뛸 줄 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치고달리기 작전이 걸렸을 때 타자가 공을 못 맞히고 바운드가 되면 충분히 2루에서 살 수 있을 정도다. 물론 타자까지 안타를 쳐주면 좋겠지만 일단 우리의 목표는 한 베이스를 더 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포 없는 KT의 뛰는 야구는 제법 효과를 보고 있다. 팀 내 도루왕 출신 심우준을 비롯해 황재균, 조용호, 김민혁, 홍현빈 등 발 빠른 선수들이 즐비하고, 이들의 기동력을 앞세워 잘 나가던 투수의 흐름을 종종 끊어냈다. 지난 3일 경기에서도 심우준이 2루와 3루 도루를 연달아 시도하며 롯데 에이스 찰리 반즈의 심리를 흔드는 데 성공했다. KT의 올 시즌 팀 도루는 전체 3위(26개)로 상위권에 속한다.
이 감독은 “외국인투수의 경우 주자가 움직이면서 조금 흔들릴 수 있다. 물론 출루를 해야 도루를 하는 것이지만 3일 경기에서는 (심)우준이가 출루하면서 바로 작전을 걸었다. 그 부분이 점수로 연결됐다”고 흡족해했다.
한편 박병호는 벌써 3개가 된 도루와 관련해 “나는 정말 뛰기 싫은데 사인이 나기 때문에 열심히 뛰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도루도 없었고, 주자 출루 시 작전도 없었는데 이강철 감독님은 그런 걸 많이 하시는 것 같다”며 “도루에 대한 욕심은 없다. 다만 시키시면 열심히 뛰겠다”는 속내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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