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수염을 기른다고 강인한 이미지를 풍기는 건 아니다. 수염이 없어도 전 경기 퀄리티스타트를 해내면 그걸로 충분히 상대에게 위압감을 줄 수 있다.
KT 토종 에이스 고영표(31)는 지난 3월 초 기장 스프링캠프에서 구위 연마와 함께 외모에 파격적인 변화를 줬다. 2014년 KT 2차 1라운드 10순위로 프로에 입단한 이후 처음으로 수염을 기른 것이다.
당시 고영표는 “그 동안 내가 하는 거에 비해 조용하고 캐릭터가 없다는 느낌을 받아 변화를 주고 싶었다. 너무 선한 이미지가 강해 강인함을 뽐내고 싶었다”며 “물론 선한 게 안 좋은 건 아니지만 운동선수로서 강인함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라고 이미지 변신을 결심한 배경을 밝혔다.

그러나 고영표의 수염은 오래가지 않았다. 스프링캠프를 마치고 3월 중순 시범경기 돌입과 함께 다시 면도를 멀끔히 한 상태서 마운드에 올랐다. 지난해와 같은 외모였다.
지난 6일 잠실에서 8이닝 무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된 고영표는 “수염을 기른 뒤 주변에서 안 어울린다는 말이 많아 스트레스를 받았다. 야구에 집중이 안 됐고, 자꾸 신경이 쓰여 그냥 면도를 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플레이스타일 상 강인함보다는 부드러운 이미지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마운드에서 점수를 안 주고 잘 던지면 강인하게 봐주시지 않을까 싶다”라는 새로운 깨달음을 덧붙였다.

실제로 고영표는 수염이 없어도 타자들에게 강인한 이미지를 풍기고 있다. 6경기를 치른 가운데 2승 3패 평균자책점 1.71을 기록하며 평균자책점 6위(토종 3위), 이닝 8위(토종 3위), WHIP(0.81) 2위, 퀄리티스타트 공동 2위(6회) 등 각종 지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려놓은 상태다. 아울러 6경기 중 4경기를 퀄리티스타트 플러스로 장식했다.
고영표는 “공격적인 성향이라 스트라이크를 많이 던지며 투구수를 아끼려 한다. 가운데로 공을 던진다고 꼭 안타가 되라는 법은 없다”며 “위기 상황에서는 생각하는 투구를 하면서 최소 실점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많은 이닝을 소화할 수 있게 된다”고 전 경기 퀄리티스타트의 비결을 밝혔다.
다만 6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에도 승수는 2승에 불과하다. 공교롭게도 고영표 등판 때 타선이 침묵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는 “야수들도 항상 잘 치고 싶을 것이다. 각자 최대한 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팀워크라고 생각한다”며 “난 투수라서 매 이닝 점수를 덜 주는 역할을 해야한다. 야수들이 미안하게 생각하는데 난 고맙다”고 성숙한 답변을 했다.
그래도 5월 첫 등판에서 화끈한 득점 지원과 함께 승리를 챙겼다. 고영표는 “이제 승운이 많이 따를 때가 됐다. 계속 잘하다보면 흐름이 올 것 같다. 최대한 내 투구에 집중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새로운 마음가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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