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패싱은 KBO가 맛집이지…소박한 MLB <야구는 구라다>
OSEN 백종인 기자
발행 2022.05.10 11: 16

[OSEN=백종인 객원기자] 하성 킴이 핑크 신발을 신었다. 어머니 날(Mother’s Day) 게임, 현지 시간 8일이다. 청새치(말린스)가 샌디에이고 앞 바다에 머물던 날이다.
원정 팀이 2-0으로 앞섰다. 6회 말 수비 때다. 두번째 투수 앤서니 벤더가 등장했다. 선두타자는 5번 오스틴 놀라다. 2구째. 안쪽을 파고 든다. 97.5마일(약 157㎞)짜리다. 포수(페이튼 헨리)가 ‘아차’한다. 채 미트에 담지 못했다.
불 같은 히터(heater·속구)가 그대로 통과했다. 구심은 무방비 상태다. ‘쾅’. 안면 마스크에 강렬한 충격을 남겼다. 3년차 심판 말라치 무어(32)가 잠깐 휘청거린다. 관계자들이 화들짝 놀란다. 홈 팀 벤치에서 달려나온다. 1루심이던 앙헬 에르난데스 팀장도 쏜살같다.
현지 중계팀이 부산스럽다. 캐스터(돈 오르시요)는 상황 전달을 멈춘다. 연신 감탄사 뿐이다. “오우, 오우, 오우.” 곁에 있던 해설자도 비슷하다. 9년간 빅리그에서 투수로 뛴 마크 그랜트다. “세상에나.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기죠? 분명히 패스트볼인데 말이예요. 이런 건 본 적이 없어요. 정말로요.” 본 적이 없다는 말은 두어 차례 반복된다.
혹시 변화구라면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직구다. 게다가 직전 공도 같은 구질이다. 똑같은 패스트볼이었다. 그리고 주자도 없다. 그러니까 사인이 헷갈릴 이유도 없다. 그런데 포수가 건드리지도 못했다. 무척 이상한 일이다.
한국식 전문용어 볼패싱
이럴 때 쓰는 단어가 있다. 볼패싱(ball-passing)이다. 포수가 공을 잡지 않고(?) 그대로 통과시킨다는 뜻이다. 다분히 의도가 포함된 행동이다. 사실 한국에 국한된 전문 용어다. 왜? 유명한 사례 때문이다.
2018년 4월의 일이다. 대구 두산전 때다. 7회 말을 준비하는 연습 투구가 시작됐다. 그런데 곽빈이 던진 공을 포수(양의지)가 슬쩍 흘린다. 뒤에 있던 구심(정종수)에 맞을 뻔했다. 깜짝 놀라는 표정이다.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원정 팀 벤치다. 김태형 감독은 즉각 포수를 소환한다. 그리고 짧고 강렬한 훈육의 시간이다. 무슨 말이 오갔는 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음소거 상태에서도 뻔하다. 교사는 점퍼 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었다. 반면 피교육자는 완벽한 열중쉬어 자세다. 단단히 혼나는 장면이다. 직전 공격 때 타석에서 스트라이크 판정에 불만스러웠던 표정과 오버랩 된다.
이후 구단을 통해 당사자의 코멘트가 나왔다. “순간 공이 보이지 않아 놓쳤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런 상황이 일어난 것에 대해 프로야구 선수로서 책임감을 느낀다. 야구장 안팎에서 더 주의하겠다.”
그러나 여론은 만만치 않았다. 며칠 뒤 도곡동 야구회관서 상벌위원회가 열렸다. KBO 벌규내칙 7항에 따라 징계가 내려졌다. 벌금 300만원, 유소년야구 봉사활동 80시간을 수행하라는 내용이다.
야사에 남은 이만수 사건
역사는 간단치 않다. 그런 일이 한 번은 아니라는 말이다. 1990년 8월에도 있었다. 역시 베어스 포수였다. 정재호가 경기 중 벌인 사건이다. 8회말 김진규의 공을 잡지 않고 피해버렸다. 구심 박찬황 씨의 마스크를 정통으로 때렸다. 곧바로 (포수) 퇴장이 선언됐다. 타석에서의 불만이 원인이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KBO는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10게임 출장정지가 떨어졌다. 구단은 더 강력한 자체 징계를 내렸다. 무기한 출장 정지, 연봉 지급 정지였다. 결국 정재호는 시즌 뒤 베어스 유니폼을 벗어야 했다.
프로 초창기에도 야사가 전해진다. ‘1984년(?) 어느 날, 대구구장이다. 투수는 김시진이었고, 포수는 이만수였다. 8회 초 김시진이 던진 빠른 공이 홈 플레이트를 향해 쐐액 소리를 내며 날아왔다. 이만수가 “나이스 볼”을 외치며 잡는 척하다가 미트를 슬쩍 내렸다. 공은 그대로 최화용 구심의 가슴께에 꽂혔다. 비록 보호대를 차고 있었지만 워낙 정통으로 얻어맞은 심판이 “아이쿠” 하며 주저앉았다. 결국 통증 탓에 경기를 마무리하지 못하고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다.’ (OSEN 홍윤표 선임기자 ‘한국프로야구 난투사’ 중에서)
기사에 따르면 심판진은 이후 삼성을 공적으로 삼고 보복 판정에 나섰다. 정동진 (당시) 수석코치의 개입이 있었다는 판단 탓이다. 그러자 구단이 사과하고, 이만수가 심판진 숙소를 찾아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고 전했다.
한일 레전드매치 이만수-선동열 2012.07.20 /soul1014@osen.co.kr
마스크 보호대 파손시킨 ML의 파워 
다만 어제(한국시간 9일) 일은 우발적 사고에 가깝다. 볼판정에 불만스러운 정황도 없었다. 문제의 포수 페이튼 헨리는 앞선 두 타석에 공 3개가 전부였다. 첫 타석은 초구 몸에 맞는 볼, 다음 타석은 2구째 타격(유격수 김하성 앞 땅볼)이었다. 그렇다고 자기 팀 투수의 스트라이크 콜이 인색한 것도 아니다. 그 때까지 무실점으로 잘 던졌기 때문이다.
와중에 MLB의 레벨을 실감케 하는 장면이 있다. 마스크의 상태다. 97.5마일과의 정면 충돌로 철제(혹은 강화 플라스틱 재질) 보호대가 파손되고 말았다. 때문에 장비 교체로 중단 시간이 길어졌다. 이어 가해자(포수)의 가벼운 사과, 피해자의 소박한 미소로 해프닝은 끝났다.
그러고 보면 역시 KBO리그다. 독특함과 창의성은 세상 어느 곳 못지않다. 빠던, 페이크 홈런, 눕기태, 뇌주루, 창조 병살…. 그리고 볼패싱까지. 컨텐츠의 기발함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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