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통산 600승에도 덤덤했던 ‘곰탈여우’ 두산 김태형 감독이 1121일만에 홈런포를 터트린 ‘아픈 손가락’ 신성현을 맞이하기 위해 더그아웃 문 앞으로 나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두산 김태형 감독이 개인 통산 600승 금자탑을 쌓은 지난 4일 LG와의 경기. 김태형 감독은 신성현을 330일 만에 9번타자 1루수로 선발 라인업에 올렸다.
하지만 오랜만의 선발 출장이라 몸이 굳은 탓이었을까. 1루수 신성현은 치명적인 실책을 연거푸 2번이나 저질렀다. 김태형 감독은 그를 3이닝도 채우지 않고 과감하게 교체했다.

결과론적이지만 이 판단은 맞아 떨어졌다. 팀은 5-2로 승리했고 김태형 감독은 두산에서만 600승, KBO리그 역대 11번째 대기록을 세웠다. 600승 대기록 축하 속에서 신성현의 이른 교체는 김태형 감독의 ‘아픈 손가락’으로 남았을 법 했다.


김 감독은 경기 후 신성현의 실책과 교체를 묻는 질문에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김 감독은 "신성현을 기회를 줬다. 마지막으로... 2군에서는 잘하는데, 1군에 못 쓰는 이유가 1군에서 쉽지 않은 선수다"라며 "(이전에) 불러올렸다가 1타석도 못 치고 내려간 적도 많았다. 오늘도 강진성을 먼저 1루수로 쓸까 하다가 신성현에게 기회를 줬다. 본이은 잘 하려다가 몸이 굳어서 그런 것 같은데... 그럴 때는 빨리 빼줘야 한다"고 설명했다.
11일 고척 방문 경기에서 7번 좌익수로 신성현을 내세운 김태형 감독. 6회 2사 후 박세혁의 2루타에 이어 타석에 들어선 신성현은 1B-1S에서 장재영의 3구째 몸쪽 높은 직구(150km)를 받아쳐 2019년 4월 16일 잠실 SK전 이후 무려 1121일 만에 홈런포를 신고했다.



2-0 스코어에서 격차를 벌리는 비거리 125m 투런포에 더그아웃에서 표정을 숨기며 경기를 지휘하던 김태형 감독도 버선발로 더그아웃 문 앞까지 달려나왔다. 앞선 안권수의 선취 득점과 추가점에도 묵묵히 박수만 보내던 ‘곰탈여우’ 김태형 감독도 신성현의 투런포에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김태형 감독은 경기 후 “6회초 신성현의 홈런이 결정적이었다. 그 한방으로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라며 활약을 칭찬했다.
신성현은 한국에서 중학교를 마치고 고교는 일본 교토국제고로 유학을 갔다. 입단 테스트를 통해 2009년 일본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 히로시마에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1군 데뷔 꿈은 이루지 못했고 2군에서 뛰다 2013시즌을 마치고 방출됐다. 한국으로 돌아와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에서 뛰다가 무릎 십자인대 파열 부상의 아픔도 겪었다.
포기하지 않은 야구의 길은 2015년 한화에 육성 선수로 입단했고, 2017년 한화에서 두산으로 트레이드됐다. 이적 후 신성현은 좀처럼 자리를 잡지 못하고 주로 2군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2019년 35경기 출장이 한 시즌 최다 출장이었다. 지난해는 11경기 타율 1할8푼2리(11타수 2안타)에 그쳤다.



올 시즌 두산 중심 타자들의 연이은 부상으로 기회를 잡은 신성현. 그의 우여곡절 가득한 야구 인생처럼 감독의 600승 경기날 교체되는 아픔도 겪고, 다시 툭툭 털고 일어나 승리를 가져오는 투런포 아치를 그렸다.
화수분 야구의 대명사 두산에서 신성현까지 ’만년 유망주’ 꼬리표를 떼고 날아 오를 수 있을까.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신성현을 맞이한 김태형 감독과 코칭스태프, 그리고 자신이 친 홈런보다 더 짜릿한 표정으로 그를 맞이한 두산 더그아웃의 표정을 보면 답이 나올 것 같다. / dream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