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죠" PBA 1부 포기한 당구 선수의 결단[오!쎈 인터뷰]
OSEN 강필주 기자
발행 2022.05.14 06: 07

프로 1부 투어를 보장 받았는 데 다시 아마추어 신분으로 유턴한 3쿠션 당구 선수가 있다. 
지난 1월 대한당구연맹은 2019년 출범한 프로당구협회 PBA로 떠난 선수들이 복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 그 결과 PBA에서 뛰던 48명이 다시 연맹으로 돌아갔다. 
그 중 정역근(50)에게는 당구인들의 큰 관심이 더욱 쏠렸다. 정역근은 지난 4월 열린 2021-22시즌 PBA 드림투어 6차전 우승자다. 다음 2022-23시즌부터 1부 투어 승격을 확정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정역근 인터뷰

하지만 정역근은 1부 투어를 확정짓고도 과감하게 프로 타이틀을 떼냈다. 그리고 광명시당구연맹 선수로 등록을 마쳤다. PBA 출범 전이던 2017년 춘천 전국대회서 8강에 올랐던 정역근이다. 지난 13일 광명시 J(제이) 빌리어드클럽에서 직접 만나 정역근의 생각을 들어봤다. 
- PBA 1부 투어 생활을 포기하고 다시 대한당구연맹 소속이 됐다. 이유가 무엇인가
▲ 정말 이곳저곳에서 전화를 많이 받았다. 내가 복귀한 것에 대해 많이들 궁금해 하는 것 같다. 조심스럽긴 하지만 속된 말로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 한다'는 말에 충실했다. 간단히 말하면 그렇다. 
- 그게 무슨 말인가
▲ 2019년 트라이아웃을 거쳐 PBA로 갔다. 당구가 염원하던 프로가 된다고 하니 꿈을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프로도 되고 좋아하는 당구를 칠 수 있어 행복하겠다 생각했다. 그런데 3년을 보내면서 처음과 많이 달라져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보니 의욕이 떨어졌고 지난 2019-20시즌이 끝났을 때 PBA 선수생활에 재미가 없어졌다.
- 어떤 점이 달라졌나
▲ 일단 규정에 일관성이 없고 형평성이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동호인 선수 '해커'가 PBA 대회에 출전하는 문제를 들 수 있다. 해커는 개인적으로 동생으로 삼을 정도로 친한 사이다. 그리고 스폰서가 지정한 와일드카드라는 점에서 출전해도 그리 문제 삼을 이유가 없다. 하지만 대회 홍보를 위해 1~2번 가능할지 모르지만 시즌 내내 출전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봤다. 게다가 혼자 예외적으로 가면을 쓰고 출전할 수 있다는 건 납득이 가지 않더라. 나머지 선수는 들러리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 '해커' 문제가 결정적이었나
▲ 여자 대회인 LPBA의 경우는 중간에 '시드'가 생겼다. 원래는 시드가 없다고 했는 데 말을 바꿨다. 여자 대회의 경우 2부 리그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맨 아래 있는 선수는 입상이 어려울 수 있다. 또 복장 규정도 문제다. 처음에는 골프 의류를 입으라 했다가 스폰서가 생기면서 해당 브랜드 옷을 사야 했다. 패치 문제도 있다. 팀 리그가 생기면서 개인 후원사는 노출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런데 몇몇 특정 선수는 그게 허용되더라. 일종의 특혜가 주어지는 셈이다. 선수들이 모두 동등해야 하는 데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팀 리그에서 선수를 뽑는 과정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자 선수는 특히 그렇지만 성적 만 좋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 그렇다면 PBA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것인가
▲ PBA 시스템은 좋은 점도 많다. 뱅크샷은 2점을 허용하고 있고 세트제라 경기의 흐름을 언제나 바꿀 수 있다. 실력이 조금 딸려도 입상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경기나 대회 자체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다. 하지만 돈을 좇아서 간 게 아닌 내게는 대회 분위기가 마냥 즐겁진 않더라. 코로나19 영향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연맹 전국 대회처럼 함께 어울리는 낭만이란 게 있었는 데 그게 잘 느껴지지 않았다. 상금적인 부분도 있다. 프로는 실력이 우선이긴 하지만 장상진 부총재는 분명 PBA 출범 때 프로이기 이전에 모든 선수들이 무조건 밥 먹고 살게 해준다 약속했다. 그런데 한푼도 받지 못한 선수가 상당한 것으로 안다. 
정역근 인터뷰
- 이런 문제들은 혼자 만의 생각인가 
▲ 개인적인 생각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과 이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했던 것이 사실이고 실제 이런 불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나서서 이야기는 하지 못하더라. 더구나 성적이 좋은 선수들은 이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팀리그에도 들어가야 하니까.
- 그럼 지금까지 거론한 문제가 해결되면 PBA로 돌아간다는 건가
▲ 그건 아니다. 지난 2020년 소속팀인 김치빌리어드 김종율 대표를 만나 상의해서 2020-21시즌이 끝나면 PBA를 떠나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김 대표께 감사하다. 여하튼 드림투어 우승과 상관 없이 그만둘 생각이었다. 그런데 유종의미를 거둔 셈이다. 일부 언론을 통해 내가 PBA에 남아 계속 뛸 것처럼 나왔던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제 나이도 있고 광명시당구연맹에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는 1~2년 쉬고 복귀하려 했는 데 마침 연맹에서 복귀할 기회를 줘서 감사했다. 
- PBA 문제를 거론하는 것에 있어 부담은 없나
▲ 그저 PBA 생활을 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다. 정치적인 의도 같은 것은 전혀 없다. 실력도 안되는 사람이 비판한다고 욕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상금이나 유명세를 위해 PBA로 간 것이 아니다. 그냥 좋아하는 것을 계속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건전한 비판이라고 본다. 
- 앞으로 PBA로 가고 싶어하는 선수들에게는 뭐라 말할 생각인가
▲ 가고 싶다면 가는 것이다. 결국 자신이 책임질 문제다. 개인적으로는 가라고 추천하지도 가지 말라고 하지도 않을 생각이다. 개인적으로는 PBA가 더 잘됐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사람, 당구인으로서 더 발전했으면 한다. 그래서 당구 인구가 더 많이 늘었으면 한다. 
- 광명시당구연맹에서 팀을 조직하는 것인가
▲ 아니다. 아직 아무 것도 약속되거나 계획된 것은 없다. 단지 새롭게 회장님이 오셨는 데 당구에 대한 관심이 높으시다. 그래서 앞으로 실업팀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은 있다. 아무 것도 보장돼 있지 않기 때문에 나부터 노력해야 할 문제다. 광명시당구연맹은 2015년부터 내가 움직여서 기반을 닦았고 2017년 정회원 단체가 됐다. 개인적인 애정 때문에 돌아왔다. 아무런 직책도 없다. 나는 취미로 당구를 치다가 내 실력이 어느 정도일까 궁금해서 2017년에야 선수등록을 한 늦깎이다. 내가 늦어서 그런지 유소년 선수를 키우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 /letmeout@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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