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2회 말이 끝났다. 플레이볼 50여 분이 지났다. 잠실은 여전히 훤한 초저녁이다. 하지만 게임은 물 건너갔다. 5-0으로 벌어졌다. (5월 31일, 두산-KIA전)
점수 차이만이 아니다. 내용이 더 문제다. 1회 홈런(허경민)은 그렇다 치자. 2회는 총체적 난국이다. 연속 볼넷으로 위기를 자초했다. 이어진 번트 처리도 미스였다. 무사 만루로 몰린다. 내야 안타와 희생플라이로 2점을 잃었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최악은 실책이다. 더블 스틸 때 3루 주자(정수빈)를 엮었다. 런다운으로 이닝을 마칠 상황이다. 그런데 홈 송구가 빗나갔다. 주자 올 세이프. 양현종이 주저앉는다. 설상가상, 호미페에게 적시타를 얻어맞았다. 돌이키기 어려운 5점차가 됐다. 어디 그 뿐인가. 상대 투수는 힘이 펄펄 난다. 최승용은 3회까지 난공불락이다.

일방적인 초반이었다. 한쪽은 무기력하다. 반대편은 기세등등이다. 그런 흐름에 미묘한 파장이 생긴다. 진원은 3루쪽 관중석이다. 평일답지 않다. 제법 많은 숫자다. (관중 집계 1만 8194명) 1루쪽 홈팀 응원석 못지 않다. 끊임없는 활기를 발산한다.
그 때문인가. 3~4회가 달라진다. 비틀거리던 투수가 살아난다. 3회 3자범퇴, 4회도 병살타+땅볼로 막아낸다. 공수 교대 때 돌아오는 그를 향해 환호와 갈채가 터진다. 노란 막대 풍선의 아우성이다. 그의 이름과 등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이 물결친다.

무사히 4회를 마쳤다. 5회 초를 준비 중이다. 그 때였다. 거대한 떼창이 울려퍼진다. 수천 개의 육성이다. ‘기아 없이는 못 살아~ / 기아 없이는 못살아~ / 기아 없이는 못살아~ / 정말정말 못살아~ (기아!)’.
그래봐야 달라질 건 없다. 0-5 아닌가. 일방적인 흐름이다. 희망은 가물거릴 뿐이다. 점점 멀어지고 있다. 어느 틈에 2개의 빨간 불(아웃)이 켜졌다. 운 좋은 안타(박찬호)로 1, 3루가 된다. 희미한 불씨다. 그럼에도 3루쪽이 다시 부글거린다. 조금씩, 서서히.

타석에는 무등메시다. 응원가 ‘바닷새’가 잠실벌에 넘실댄다. 틈틈이 ‘김선빈, 안타’가 연호된다. 그런 소리 듣고 대충할 타자는 없다. 잔뜩 도사린 채 앞으로 붙는다. 괜한 긴장감이 팽팽하다. 카운트 1-2에서 물고 늘어진다. 파울 5개를 걷어내며 생명을 연장한다. 그리고 10구째. 117㎞ 커브에 정확하게 반응한다. 중견수 앞 적시타다.
사실 단타 하나다. 5-0이나 5-1이나, 거기서 거기다. 아웃 1개면 다시 이닝이 바뀐다. 싸늘하게 식을 게 뻔하다. 그런데도 3루쪽 응원석에 불꽃이 튄다. 맹렬한 폭발에 대한 기대감이다.
아니나 다를까. 연쇄적 화학 반응이다. 나성범-황대인의 연속 득점타다. 상대 벤치가 바빠진다. 승리 목전의 투수를 내린다. 하지만 늦었다. 불길은 이미 거세졌다. 급기야. 테스형이 134㎞ 슬라이더를 힘껏 내리 찍었다. 우익수가 따라갈 필요도 없다. 137m짜리 대형 포물선이 하늘에 걸렸다. 커다란 환호와 탄식이 터진다.

승장 김종국 감독의 경기 후 감상이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많은 팬분들이 육성 응원을 해준 덕에 선수들이 정말로 큰 힘을 얻었다.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주저앉았던 양현종도 한 마디 보탠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도 야수들이 많이 도와줬다. 또 원정이지만 팬들이 정말 큰 함성으로 힘을 주셨다. 여러분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 오늘 잘 못 던졌는데도, 5회 마치고 마운드를 내려올 때 큰 박수로 격려해주시고, 이름을 연호해 주셔서 너무 고마웠다.” (이 순간 그는 모자를 벗고 관중석을 향해 정중하게 인사했다.)
칼럼니스트 前 일간스포츠 야구팀장 / goorad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