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경기 전까지는 후회를 안 했었는데…”.
괴물의 멘탈이 무너졌다. 좋으나 안 좋으나 늘 돌부처처럼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오던 류현진(35·토론토 블루제이스)의 표정이 일순간 일그러졌다. 경기 후에는 그답지 않게 ‘후회’라는 표현까지 썼다.
류현진은 지난 2일(이하 한국시간) 시카고 화이트삭스와의 홈경기에서 4이닝 4피안타(2피홈런) 무사사구 4탈삼진 3실점(2자책)으로 막은 뒤 투구수 58개에서 교체됐다. 팀이 5-3으로 앞서 선발승 요건까지 5회 한 이닝이 남아있었지만 4회 이닝을 마친 뒤 덕아웃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마운드를 내려올 때부터 표정이 어두워진 류현진은 덕아웃에서 피트 워커 토론토 투수코치와 이야기를 나눴다. 이때 표정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평소 류현진에게서 볼 수 없는 당혹감이 팽배한 얼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멘탈이 무너진 모습이었다. 5회 시작부터 로스 스트리플링으로 교체됐고, 7회 경기 중 류현진이 왼쪽 팔뚝 긴장 증세로 교체됐다는 구단의 발표가 뒤늦게 나왔다.
이날 토론토는 7-3으로 승리하며 시즌 최다 7연승을 질주했지만 경기 후 최대 화제는 류현진의 부상이었다. 찰리 몬토요 토론토 감독은 “내가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추측도 하지 않겠다”면서도 “류현진이 시즌 초에 느꼈던 증상과 같다. 추가 검사 결과를 보겠다”고 말했다. 3일 MRI(자기공명영상) 검진을 통해 류현진은 팔뚝 염증으로 15일짜리 부상자 명단에 올랐다. 다만 아직 부상 강도와 원인이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고, 구체적인 복귀 시점도 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추가적으로 검사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류현진은 지난 4월17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전을 마친 뒤 같은 부위, 같은 증세를 보여 부상자 명단(IL)에 오른 바 있다. 그로부터 한 달간 재활을 거쳐 지난달 15일 탬파베이 레이스전에 복귀했다. 부상 이후 순조롭게 페이스를 끌어올렸지만 지난달 27일 LA 에인절스전에서 5이닝 2실점 호투 중 65구에 조기 교체됐다.
당시 류현진은 “전혀 문제가 될 일이 아니다. 오늘만 일시적으로 그런 것이지 다음 경기 나가는 데 문제없다”며 “모든 선수들이 말하지만 100% 몸 상태로 경기하는 사람은 없다. 오늘은 정말 작은 부분이고, 부상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되질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상태를) 말했다”고 밝혔다.
그로부터 5일을 쉬고 류현진은 2일 화이트삭스전을 정상 로테이션대로 출격했다. 경기 전 몬토요 감독은 “류현진의 상태를 주의 깊게 보겠다”고 말했는데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고 말았다. 경기 후 류현진도 “경기 초반에는 좋은 투구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며 “(4회) 마지막에 이제 더 이상 무리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커) 투수코치님에게 이야기를 해서 교체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통증 강도에 대해 “지난 경기(에인절스)와 비슷하진 않았고, 처음(4월) 아팠을 때 정도의 느낌이 마지막에 있었다. 일단 검사를 해본 다음에 (다음 일정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검사 결과를 기다려보겠다”며 이날 등판을 강행한 것을 두고 “오늘 경기 전까지는 후회를 안 했었는데 경기 후에는 조금 후회한다”며 그답지 않게 강한 아쉬움을 표했다.
전조 증상은 있었다. 누구보다 영리하고 판단력이 뛰어난 류현진이 자신의 몸 상태를 몰랐을 리 없다. 후회할 등판을 강행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부상 복귀 후 점차 호투를 거듭 중인 상황에서 스스로 다시 멈추는 것이 쉽지 않았다. 고액 연봉자로서 책임감도 크다. 류현진답지 않게 참고 던지는 무리를 했지만 팔이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공교롭게도 이날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통산 1000이닝(1003⅓이닝) 달성에 성공했다. 의미 있는 이정표를 세웠지만 부상 재발에 기쁨을 만끽할 여유도 없었다. KBO리그 시절 1269이닝을 포함하면 류현진은 한미 통산 2272⅓이닝을 던졌다. 팔이 지칠 만도 한 숫자. 류현진은 “계속해서 더 많은 이닝을 던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waw@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