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다하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 찰리 반즈(27)는 에이스의 역할을 충분히 다하고 있다. 그러나 패배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안 좋은 기운이 반즈를 뒤덮고 있다. 과거 롯데 유니폼을 입고 불운했고, 현재는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누군가가 떠오르고 있다.
반즈는 지난 3일 창원 NC파크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7이닝 3피안타(1피홈런) 2볼넷 2사구 9탈삼진 3실점을 기록했다.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7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의 피칭을 펼쳤지만 득점, 수비 등 야수들의 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패전의 멍에를 썼다. 롯데는 1-5로 패했다.
반즈는 4월을 엄청난 기세로 리그를 지배했다. 개막부터 5일 로테이션(4일 휴식)을 계속 소화하면서도 위력적인 구위와 제구를 뽐냈다. 4월 한 달 간 6경기 5승 평균자책점 0.65(41⅓이닝 3자책점), 45탈삼진, 8볼넷의 맹활약을 펼쳤다.김광현(SSG)과 함께 4월 한정 리그 최고의 투수였다.

4월의 페이스가 워낙 독보적이었다. 5월에는 잠시 주춤했다. 5월 3일 KT전 3이닝 4실점, 18일 KIA전 4⅓이닝 7실점(6자책점)으로 2차례 무너진 게 컸다. 6경기 1승2패 평균자책점 4.29였다. 그럼에도 5월 막바지로 향하면서 자신의 페이스를 되찾았다. 실점을 했지만 이닝을 최대한 소화하면서 에이스의 면모를 선보였다. 24일 SSG전 8⅓이닝 3실점, 29일 키움전 7이닝 3실점을 기록했다.
그리고 6월 첫 등판이었던 NC전 7이닝 3실점까지. 반즈는 3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 피칭을 펼쳤다. 더할나위 없는 투구 내용이었다. 이날 경기의 2회말 2사 1,2루에서 김수윤의 뜬공 때 우익수, 2루수, 1루수가 모두 잡지 못하면서 실점을 한 게 결국 결승점이 됐다.
최근 3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 피칭을 펼친 것을 비롯해 이 부문 리그 최다 8회를 기록 중이다. 4월의 기세와 승운이 5월부터는 따르지 않고 있다.
정훈, 전준우, 한동희 등 주축 타자들의 이탈로 타선의 화력이 떨어진 게 투수들의 승운에도 영향을 끼치는 모양새다.
같은 좌완 투수에 좌타자를 상대로는 극강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점. 누군가가 연상된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5년 간 롯데의 최장수 외국인 투수로 활약하고 유턴해서 현재는 메이저리그에서 1000만 달러(약 124억 원) 계약을 맺은 브룩스 레일리(탬파베이 레이스)의 모습이 떠오른다.

레일리는 2015년부터 152경기(151선발) 48승53패 평균자책점 4.17(910⅔이닝 418자책점)을 기록했다. 타고투저가 만연했던 시즌들을 관통해서 꾸준하게 리그 정상급 투수로 군림했다.
레일리는 불운의 대명사였다. 152경기 중 절반이 넘는 87경기에서 퀄리티 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점 이하)를 기록했고 이 중 46경기가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였다. 레일리보다 좋은 기록을 남긴 선수는 양현종 뿐이었다. 하지만 퀄리티 스타트 수치에 비해 승보다 패가 더 많은 KBO리그 커리어를 남겼다.
특히 한국에서의 마지막 시즌이던 2019년 30경기에서 19번의 퀄리티 스타트, 6번의 퀄리티 스타트 플러스 피칭을 기록했는데 5승14패 평균자책점 3.88에 그쳤다. 타선과 수비의 도움을 받지 못해 더 좋은 내용을 남길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한 경기들이 많았다.
반즈도 현재 비슷한 흐름의 경기들이 계속되고 있다. 타선의 부진이 길어지고 덩달아 수비진까지 흔들린다. 투수들의 부담이 가중되는 상황. 반즈 역시 최대한 실점을 하지 않아야 하는 부담감에 사로잡히면서 실투도 많아졌다. 반즈의 불운이 현재 롯데의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