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수 명가의 3회, 주전 포수가 교체됐다 <야구는 구라다>
OSEN 백종인 기자
발행 2022.06.11 10: 06

울먹인 곰 탈 여우
[OSEN=백종인 객원기자] 2016년 한국시리즈가 끝났다. 판타스틱4의 전성기다. 길게 갈 일 뭐 있겠나. 네 판이면 충분하다. 니퍼트, 장원준, 보우덴, 유희관. 한바퀴가 돌아가니 끝이다. 신생팀 다이노스는 힘 한번 못 쓴다. 아이언맨 마스크가 마운드에 우뚝 섰다.
우승 감독 인터뷰 때다. 승장이 소감을 밝힌다. “좋습니다. 너무 좋고, 사실 그렇게, 뭐… 실감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안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약간 마음도 착잡하면서, 기쁘면서, 뭐 그렇습니다. 예.”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좋으면 좋은 것 아닌가. 착잡은 또 뭔가. 만세를 불러도 시원치 않을 판에.

2016년 한국시리즈가 끝나고 김태형 감독을 축하하는 김경문 감독. OSEN DB

사회자 “아무래도 기쁜 마음이 더 클 것 같은데, 착잡하다는 건 또 어떤 마음의 표현일까요?”
곰 탈 여우 “글쎄, 왜 그런 건 지는 모르겠는데, 너무 기쁜데, 한편으로는 뭐…. 그건 말씀드리기는 그렇고. 하여튼 좀 그렇습니다.”
사회자 “혹시 NC 김경문 감독 때문에 그러시나요?”
이 때부터다. 5초 넘게 오디오가 뜬다. 방송이라면 사고다. 답변자는 잠깐 질문자를 응시한다. 그러더니 이내 고개를 돌린다. 한 손으로 죄 없는 입술을 마구 문댄다. 그리고 손바닥을 펴고 눈가를 훔친다. 모자를 벗었다, 썼다. 어쩔 줄 모른다. 이윽고 잔뜩 잠기고, 울먹이는 소리다.
“저기, 감독이란 직업이 이제 2년 했지만, 참 감독님 옆에서 친형 같이 많이 보고 배웠는데…. 항상 1등만 존재하는 거기 때문에, 하여튼 그렇습니다.” 횡설수설이다. 말을 못 잇는다. 하지만 알 것 같다. 아예 옷 소매 신세를 진다. 흐르는 눈물을 닦아낸다.
유튜브 채널 BEARS TV 캡처
양의지의 열중쉬어
2018년 4월의 일이다. 7회를 준비 중이다. 갑자기 연습 투구 하나가 뒤로 빠진다. 포수가 안 잡은 것이다 (그렇게 의심된다). 구심(정종수)이 깜짝 놀란다. 공에 맞을 뻔했다. 이건 뭐지? 눈치 100단이 등장한다. 원정 팀 감독이다.
즉각 반응이 나온다. 용의자 소환이다. 덕아웃 분위기가 싸~하다. 긴장감에 숨이 막힌다. 피의자는 열중쉬어 정자세다. 딱 봐도 눈빛은 레이저다. 교관은 비스듬히 섰다. 두 손은 점퍼 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그리고 짧고, 굵은 메시지가 전달된다. “너 지금 뭐하는 거냐?” TV 화면에도 생생하게 잡혔다. 이른바 양의지 볼패싱 사건이다.
베어스는 이날 8-1로 대승했다. 그런데 소용 없다. 감독이 미팅을 걸었다. 경기 후. 선수단 전체에 집합 명령이 떨어진다. 한동안 질타가 이어졌다. “타석에서 공 하나 하나, 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아라. 그런 개인 행동은 팀에 도움되지 않는다.” 그런 요지였다.
(양의지는 이 사건으로 KBO 징계를 받았다. 벌금 300만원에 유소년야구 봉사활동 80시간을 이행하라는 내용이었다.)
발에 걸린 헬멧
어제(10일) 잠실 LG-두산 전이다. 1-0이던 2회 말이다. 무사 1루에서 유강남 타석이다. 카운트 2-1에서 4구째다. 145㎞ 포심에 스윙이 나온다. 타이밍이 늦어 타구가 높이 뜬다. 포수 바로 위쪽이다.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다.
박세혁이 자세를 잡는다. 일단 뒤로 돈다. 맞다. 타구에는 백스핀이 걸렸다. 흔히 ‘알파벳 L자의 필기체 소문자’ 모양이라고 표현한다. 그래서 투수를 등져야 한다. 그래야 편한 각이 나온다. 그리고 주춤주춤. 뒷걸음질이다. 공은 멀리 가지 못한다. 반경 4~5미터 안쪽이다. 낙구 지점을 찾았다. 이제 잡으면 된다.
그런데 웬걸. 미트에 들어간 공이 튀어나간다. 아웃이 아니고, 파울이 됐다. 카운트만 2-1에서 2-2로 바뀐다. 기록원이 실책으로 판단한다. 덕아웃 김태형 감독은 무표정이다. 하지만 곧 벽에 걸린 선풍기로 손을 뻗는다. 스위치를 2단으로 올린다. 부글거림을 식혀야 한다.
여기서 부터다. 용궁 다녀온 유강남이 살아나간다(좌중간 안타). 몸에 맞는 볼(홍창기)까지 나와 상황은 만루로 번진다. 그리고 박해민 타석. 초구 145㎞ 포심에 용서가 없다. 공 깨지는 소리와 함께 까마득한 포물선이다. 120미터짜리 만루홈런. 이날 승부를 결정짓는 한 방이었다.
박세혁의 실책 순간. 발에 자신의 헬멧이 걸리는 장면이다. SPOTV 중계화면
실책 장면을 다시 보자. 충분한 공을 왜 놓쳤을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박세혁의 뒷걸음질 때다. 벗겨진 본인 헬멧이 스텝에 걸린다. 발에 맞고 저만치 굴러간다. 이어지는 포구 동작이다. 여기서 실수가 나온다.
물론 헬멧 때문에 발이 엉킬 정도는 아니다. 그러나 순간적인 집중력에는 방해가 될 수 있다. 양상문 해설위원과 SPOTV 중계팀도 비슷한 얘기다. “사실 포수가 저런 파울을 놓쳐서는 안되는데요. 아, 발에 헬멧이 걸렸군요.”
베어스 왕조 = 포수 명가
베어스에게는 왕조 칭호가 어울린다. 최근 몇 년간 그런 팀은 없었다.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3번이나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탄탄한 전력의 배경은 여럿이다. 그 중 하나가 포수들이다. 전통적으로 뛰어난 리더들이 홈 플레이트를 지켰다. 열거하자면 숨이 가쁘다. 김경문, 조범현, 김태형, 홍성흔, 진갑용, 양의지… 그야말로 포수의 명가(名家)다. 그 명맥을 박세혁이 이어야 한다.
명가의 시조가 있다. 바로 김경문 전 감독이다. 카리스마 김태형 감독도 눈물 짓게 만든 ‘큰 형’ 말이다. 그의 현역 시절이다. 특이한 동작이 야구인들 사이에 화제였다. 파울 타구 따라가는 모습이다. 다른 포수와 달랐다.
그 때만해도 속도에만 신경 썼다. 마스크 벗는 훈련을 따로 할 정도였다. 탁, 스냅 한번으로 재빨리 벗어버린다. 그리고 얼른 타구를 따라간다. 그게 모범 답안이던 시절이다.
달 감독은 아니었다. 그는 벗은 마스크를 한동안 손에 쥐고 놓지 않는다. 감독 코치에게 야단도 맞았다. 그럼 그의 대답은 이랬다. “일단 타구 방향을 보고, 그 반대쪽으로 마스크를 던져 놔야지요. 그래야 혹시라도 발에 걸려서 꼬이거나, 넘어지거나 일이 없을 거 아니예요.”
고개가 끄덕여지는 답이다. 이후 많은 후배들이 따라했다. 지금은 대부분 그렇게 한다. 다만 이날 박세혁은 이 부분을 잠시 놓친 것 같다. 김태형 감독은 다음 3회에 교체지시를 내렸다. 홈 플레이트 주인은 장승현이 됐다.
명가를 잇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세심한 디테일까지 챙기고, 신경 써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가까워진다.
칼럼니스트 일간스포츠 前 야구팀장 / goorada@osen.co.kr
2008년 두산에서 감독과 코치로 팀을 이끌던 시절의 김경문과 김태형 OSEN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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