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지난 달 21일. 키움과 한화의 고척 경기 때다. 초반에 이미 스코어가 기운다. 막강한 홈 팀의 화력 덕분이다. 잠잠하던 쿠바산 야생마가 각성한 날이다. 푸이그는 2회 2루타, 3회 2점 홈런으로 신바람 낸다.
반면 원정 팀은 지리멸렬이다. 선발 장민재가 3회를 못 버틴다. 2.1이닝 8피안타 6실점으로 무너졌다. 4회에 벌써 세번째 투수가 올라온다. 김기중이다. 하지만 달라진 건 없다. 마찬가지로 무기력하다. 볼넷, 볼넷, 볼넷. 3연속 4구로 밀어내기를 허용한다. 스코어가 11-0으로 벌어진다.
덕아웃 분위기가 참담하다. 특히 사령탑이 심상치 않다. 아예 뒷전으로 물러나 앉는다. 생소한 모습이다. 일반적으로 감독은 경기 중에 앉지 않는다. 벤치 맨 앞까지 나와서 게임에 몰입한다. 흔한 아메리칸 스타일이다.

하지만 이날 카를로스 수베로는 달랐다. 열정적인 평소 모습이 아니다. 덕아웃 맨 뒷편으로 물러난다. 그리고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않는다. 낙담한 표정이다. 때로 뒷머리를 벽에 기댄 채 수심에 잠기기도 한다. 망연자실한 얼굴이다.

KBO리그 출범 40년이다. 그동안 괜찮은 처방전이었다. 외국인 감독의 기용이 그랬다. 침체기에 빠진 팀을 살리는 묘약이었다. 제리 로이스터(2008~2010), 트레이 힐만(2017~2018). 둘의 성과가 괜찮았다. 로이스터는 3년 내리 가을야구를 실현시켰다. 7년간 비밀번호(8888577)를 찍던 거인을 일으켰다.
특히 힐만의 성공은 획기적이었다. 2년차 KS 우승은 괄목할 일이다. 공격력이 극대화된 팀 컬러를 입혔다. 섬세함에도 능했다. 놀라운 디테일까지 갖췄다. 재계약 포기도 인상적이다. 왠지 그럴 듯한 환상까지 더해진다.
외인 감독의 가장 긍정적 사례였다. 연이어 초빙이 이어진다. 타이거즈가 맷 윌리엄스를 모셨다. 쟁쟁한 이력의 소유자다. 부임 초부터 화제였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치에 미달이다. 최종 6위. 로이스터에서 힐만으로 이어지던 흐름이 중단됐다. 외국인 감독 5시즌 연속 PS 진출 기록 말이다. 아울러 ‘외인 감독=성공’이라는 등식도 깨졌다.
그래도 영입은 계속됐다. 이번엔 가장 절실해 보이는 두 팀이다. 이글스와 자이언츠다. 카를로스 수베로와 래리 서튼이 초대됐다. 그리고 각각의 두번째 시즌이다. 안타깝게도 반전의 기미는 없다. 개막 10주차를 넘겼다. 팀당 60게임 이상 치렀다. 하지만 여전하다. 나란히 하위권에 처졌다.

서튼은 아름다운 4월을 보냈다. 그런데 오래가지 못했다. 5월 들어 급전직하다. 홈 구장에서만 스윕패를 3번 당했다. 한달 성적이 9승 17패다. 수비 불안에 투타의 조화가 흔들린다. 무엇보다 컨디션 관리에 문제가 크다. 부상자가 속출한다. 주력 한동희, 전준우, 정훈이 차례로 쓰러졌다. 이학주, 고승민, 김재유 등도 줄줄이 안 좋다. 라인업 짜기도 쉽지 않다. 특유의 파괴력이 실종됐다.
수베로의 이글스 역시 무기력하다. 초반부터 내내 허덕인다. 걸핏하면 연패다. 어느 틈에 또 4연패다. 이제 9위마저 내줬다. 다시 최하위로 돌아갔다. 오래 전부터 외치던 리빌딩, 세대 교체는 요원하다. 전력의 헛점만 눈에 띌 뿐이다. 그나마 주포 노시환마저 빠졌다. 부상 탓이다. 결국 승부수가 나왔다. 킹험과 카펜터의 교체다. 대체 투수 2명도 확정됐다. 이들의 새 바람에 기대를 걸 뿐이다.
롯데와 한화, 모두 전통의 팀이다. 유구한 역사와 강한 팬덤을 보유한 구단이다. 이들의 침체는 결코 반갑지 않다. 회생이 절실하다. 리그 활성화의 관점에서 볼 때 그렇다.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크다. 외국인 감독이라는 처방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칼럼니스트 일간스포츠 前 야구팀장 / goorad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