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 여기로 공 날려줘.”
스케치북에 적은 이 한 문장이 잊지 못할 경험을 선사할 줄 누가 알았을까. 키움 히어로즈의 여성 팬 2명이 우연히 날아온 홈런공 하나 덕분에 간판타자 이정후의 특급 팬서비스를 받는 행운을 누렸다.
이정후는 지난 15일 고척 두산전에서 1-4로 뒤진 8회말 1사 1루에서 추격의 2점홈런을 때려냈다. 2B-1S의 유리한 카운트를 선점한 뒤 두산 셋업맨 정철원의 4구째 148km 직구를 받아쳐 가운데 담장을 넘겼다. 2020시즌(15홈런) 이후 2년 만에 통산 두 번째 10홈런을 완성한 순간이었다.

이날 중계화면에는 이정후가 홈런을 날리기 직전 ‘이정후 여기로 공 날려줘’라고 적은 스케치북을 들고 있는 한 팬이 포착됐다. 외야 관중석에 앉아 이정후의 시즌 10번째 홈런을 그 누구보다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정후의 홈런 타구는 그 팬이 앉은 자리로 향했다. 타구가 스케치북을 들고 있는 김진희(21)씨 바로 옆에 앉은 친구 김수연(20)씨의 발밑에 정확히 떨어진 것이다. 여기로 공을 날려달라고 부탁했더니 이정후가 진짜 거기로 홈런 타구를 보냈다.
김진희씨와 김수연씨는 경기 종료 후 고척스카이돔을 떠나지 않고 지하주차장에서 이정후의 퇴근을 기다렸다. 그리고 그의 시즌 10번째 공에 친필 사인을 받는 데 성공했다.
키움 구단과 이정후는 이에 그치지 않고 두 여성 팬을 경기장에 직접 초청하는 특별 이벤트를 기획했다. 이에 키움은 정확한 신원 파악을 위해 이들을 향해 “구단 공식 SNS를 통해 연락을 달라”고 요청했다.
김진희씨와 김수연씨는 전날에 이어 이날도 고척스카이돔을 방문해 똑같이 외야석에 자리를 잡았다. ‘이정후 여기로 공 날려줘’라는 문구가 적힌 스케치북도 그대로였다. 다만 이들이 구단 SNS의 초청 안내를 보고 경기장을 찾은 건 아니었다. 일주일 전부터 이날 경기를 예매하며 일찌감치 직관을 계획했다.

때마침 두 팬을 발견한 키움은 곧바로 특급 팬서비스를 실시했다. 팬과 상의해 다이아몬드 클럽(평일 인당 55,000원) 좌석 업그레이드 혜택을 제공했고, 선물로 이정후의 사인배트를 전달했다. 키움 관계자는 “좌석 업그레이드, 배트 선물 모두 이정후의 요청으로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그야말로 스케치북의 짧은 문구로 인생에서 잊지 못할 경험을 했다. 김진희씨와 김수연씨는 "공이 이쪽으로 넘어 올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공이 날아오는 순간에도 몰랐다. 공이 떨어진 순간 멍하고 얼떨떨했다"며 "본의 아니게 뉴스에 나오며 주변에서 연락을 많이 주셨다. 성공한 덕후가 된 느낌이다. 평생 해볼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돼 꿈만 같다. 앞으로도 키움 히어로즈를 열심히 응원하겠다"라고 기뻐했다.
홈런으로 팬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안긴 이정후 또한 신기하고 기쁜 건 마찬가지. 그는 “야구 역사에서 볼 수 없는 장면이다. 신기한 경험이었다”라며 “아마 나보다 팬들이 더 즐거워하셨을 것 같다”라고 환한 미소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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