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오늘 얘기는 이 질문으로 시작해야 한다. “류지현 감독은 왜. 박해민에게 번트를 시키지 않았나.”
17일 고척 경기다. 1-1이던 연장 10회 초, 원정 팀의 공격이다. 유강남, 홍창기의 연속 안타로 무사 1, 2루가 됐다. 양쪽 벤치가 바빠진다. 수비 쪽은 마운드를 찾는다. 숨 좀 돌리라는 뜻이다. 상대편도 움직인다. 류 감독이 타자를 부른다. 뭔가 구두 지시가 내려졌다. 들어오는 길에 3루 코치(김민호)와도 눈빛을 교환한다.
경기 재개, 큐 사인이다. 초구가 온다. 순간. 타자는 번트 동작이다. 그러다가 급히 거둬들인다. 그 사이 공은 존을 통과했다. 카운트 0-1이 된다. 만약 보내기였다면 댔을 것이다. 박해민의 번트 능력은 리그 최고치 아닌가.

그런데 시늉만이다. 보낼 의사가 없다는 뜻이다. 아니나 다를까. 2구부터는 번트 (예비) 동작도 사라졌다. 노골적인 강공 모드다. 결국 1루수 땅볼로 홍창기만 아웃이다. 1사 1, 3루가 됐다.
이상하다. 평소라면 납득이 어렵다. 연장 아닌가. 1점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 상황이나, 타자를 감안하면 보내기가 맞다. 하지만 류 감독의 선택은 달랐다. 비단 박해민만이 아니다. 직전 무사 1루 때도 마찬가지다. 홍창기에게도 강공이었다. 왜 그랬을까(유강남의 주력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박해민의 번트 능력치로 충분히 커버된다).
만약 보내기 작전이 성공했다 치자. 그럼 1사 2, 3루가 된다. 다음 타석은 김현수다. 상대가 승부할 리 만무하다. 비어 있는 1루를 채울 게 뻔하다. 1사 만루에서 후속 타자와 대결을 택할 것이다. 그럴 확률 200%다. (강공의 경우) 최악은 병살타다. 그것만 아니라면 해볼 만하다. 타자가 박해민이다. 그의 발이라면 더블 아웃의 위험성은 낮다. 그런 계산도 충분히 깔렸다.

결국 류 감독의 의도는 명백하다. 초점은 김현수다. 반드시 그와 승부하게 만들겠다. 그런 구상이다. 왜 아니겠나. 해결할 확률이 가장 높은 타자다. 피해갈 빌미를 없애야 한다. 또는 최소화시켜야 한다. 그게 이 작전의 포인트다.
중요한 것은 반대의 논리다. 즉, 홍원기 감독의 실패다. 가장 피해야 할 상대와 승부를 한 것이다. 그 순간, 고의4구를 감안해야 했다. 물론 플랜B라고 여겼으리라. 유인구, 또는 어렵게 가면 괜찮다고 봤으리라. 잘 하면 병살도 가능하다. 카운트가 불리해지면. 그 때 베이스를 채우면 되겠지. 그런 계산이 엿보인다.
하지만 낭만적이다. 너무 세련되고 아름답다. 차라리 우직한 게 낫다. 손가락 4개가 필요했다. 그걸 활짝 펴고 1루를 주는 게 맞았다. 1사 만루에서 채은성, 오지환과 만나는 게 확률적이다.
고급 모드를 쓰기는 너무 절박했다. 무엇보다 상대가 넘사벽이다. KBO리그의 최고 레벨이다. 그야말로 '만루에서도 거를' 타자다. 냉정하고, 단호한 선택이 옳았다. ‘혹시나’ 하는 기대, ‘공 하나만’ 하는 멈칫거림. 위험은 바로 그 뒤에 숨어있다.
칼럼니스트 일간스포츠 前 야구팀장 / goorada@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