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형사2’ 김효진, 부활한 ‘살로메’?..송영창이 ‘결코’ 용서 못할 이유 [김재동의 나무와 숲]
OSEN 김재동 기자
발행 2022.08.22 09: 35

[OSEN=김재동 객원기자] “나는 나나를 원치 않아. 그걸 그 아이도 알고 있지. 그게 걔를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이유야.” 교도소 면회실에서 천상우(최대훈 분)를 만난 천성대(송영창 분)가 한 말이다.
이 세 문장은 맥락잡기가 모호했다. ‘아버지가 딸을 원치 않는다?’ 그럴 수 있다. ‘딸이 그 사실을 안다?’ 그럴 수 있다. 근데 그게 아버지가 딸을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이유라고?
JTBC 토일드라마 ‘모범형사2’의 악역 TJ패밀리속 갈등관계의 핵심인물 천나나(김효진 분)에 대한 궁금증이 21일 방영된 8회에서 풀리기 시작했다.

천성대는 왜 천나나를 그렇게까지 증오할까? 천나나의 회상씬이나 우태호와의 대화를 통해 구축된 천나나의 지난 삶을 보자. 재벌가 세컨드의 딸로 태어나 배다른 오라비 천상우(최대훈 분)의 학대와 아버지 천성대의 무관심 속에 자랐다. 천상우의 살의를 피해 미국으로 도피하고 그마저 불안해 밤마다 호텔까지 바꿔야 했다. 그리고 하나뿐인 그녀의 편 어머니조차 극단적 선택으로 잃어야했다. 가련한 희생자다.
천나나가 구성한 그녀의 삶 어디에도 천성대로부터 증오를 끌어낼 요인은 찾아지지 않는다. 차라리 아픈 손가락이라면 몰라도. 그런데 왜 천성대는 그토록 천나나를 경원하는 걸까?
천나나는 자신의 신경을 집요하게 거슬리는 오지혁(장승조 분)을 불러냈다. 그리고 와인을 마시며 한없이 처연한 표정으로 자기 어머니의 죽음을 이야기했다. 의도된 시도였다. 천나나는 교도소를 찾아 오지혁이 잡아 처넣은 지혁의 사촌 오종태(오종세 분)로부터 오지혁의 아킬레스건이 그 어머니임을 전해들었기 때문이었다. 효과는 만점이었다. 천나나 어머니 얘기가 나오자마자 오지혁은 뛰쳐나갔고 그 밤을 차안에서 괴로워했다.
천나나는? 그렇게 뛰쳐나가는 오지혁의 뒷모습을 향해 와인잔을 들어올리며 건배한다. “환영해, 오지혁.” 어머니의 극단적 선택마저 필요에 의해 스스럼없이 써먹는 천나나의 모습 어디에도 애도의 자취는 찾아볼 길 없다.
천나나가 각색한 그녀의 일생이 모두 거짓였다면? 그리고 그 사실을 천성대가 알고있다면? 천성대의 딸을 향한 적의가 설명된다.
천나나 어머니의 죽음부터가 그렇다. 드라마는 앞서 그 모습을 보여줬다. 거칠게 두들겨지는 방문. 마침내 무언가로 찍어내어져 구멍 뚫린 방문으로 천상우의 얼굴이 들이밀어지고 그런 천상우 눈엔 쓰러진 계모와 흐트러진 약병이 보인다. 천상우는 계모의 극단적 선택을 만류하기 위해 방문을 부쉈을 수 있다.
천나나 앞의 천상우 행동은 여상하다.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는 배다른 여동생에 대한 거부감 정도가 전부다. 폭력적 기질이 강해 자라면서 남몰래 천나나를 폭행했을 수는 있다. 엄마 자리를 대신한 계모에 대해서도 유순했을 리는 만무하다. 딱 거기까지였을 것이다. 흔하게 볼 수 있는 본처 자식과의 계모, 그 배다른 소생 간 갈등. 계모를 죽음으로 내몰만큼 극악을 떨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 때문에 천나나를 미워할 지언정 죄책감없이 마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죽음의 발단은 천나나의 가스라이팅 때문일지 모른다. 엄마에게조차 천상우의 위협을 과장하고 자신이 당하는 위협의 이유가 엄마 때문임을 은연중 강조했을 수 있다. “미국으로 가면 다시는 이 집에 돌아오지 마. 그래야 살어”란 엄마의 마지막 전화. 아마 천나나의 엄마는 천나나가 돌아올 이유를 없애기 위해 극단적 선택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눈과 귀를 거느리고 있는 천성대는 천나나의 행적을 꿰뚫었고 천나나가 제 앞길의 걸림돌을 치워나가는 방법을 통찰했으며 청와대를 움직여 자신에게 7년 형의 족쇄를 채운 것도 천나나임을 눈치챘을 것이다.
그리고 우태호(정문성 분). 우태호는 수감된 강남 동파 조폭 출신 기동재(이석 분)로부터 “나는 정희주를 죽이지 않았다. 누군가 머릿속에 그려질텐데?”란 비아냥을 들었다. 천나나의 차에서는 정희주(하영 분)가 죽던 날 천나나가 양평 별장에 있었음을 확인했다. 결국 천나나를 양평으로 불러 추궁한 후 답을 얻었고 본인이 천나나의 모든 죄를 뒤집어쓰기로 하고 인천 서부서로 출석할 것을 통보한다.
가는 길. 마주오는 덤프트럭을 본 천나나는 “미안해요. 난 당신을 믿을 수 없어”라며 핸들을 잡아채 중앙선을 넘어 우태호만 치명상을 입도록 핸들을 돌린다.
솔라리오, 〈살로메와 세례자 요한의 목〉, 1506년 무렵,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그런 드라마 속 천나나를 보며 성경 속 세례자 요한의 목을 요구했던 살로메가 떠오른다. 오스카 와일드가 세상에 내놓은 희곡 속 살로메는 세례자 요한과 키스하길 원한다. 요한이 거부하자 새아버지이자 삼촌인 헤롯 안티파스의 생일날 그를 관능적 춤으로 매혹하고 그 보상으로 요한의 머리를 요구한다. 그리고 잘려진 쟁반 위 요한의 머리를 들어 그 입술에 키스한 후 말한다. "요카난. 난 네 입술에 키스했어. 네 입술에 키스했어. 쓴 맛이었어. 피의 맛이던가? 아니, 그것은 사랑의 맛이야.“
원하는 것은 파괴해서라도 갖고야 마는 팜므파탈. 천나나가 원하는 쟁반 위 물건은 TJ그룹이다. 기독교 외경은 그녀가 유배된 갈리아에서 얼음판 위를 걷다 얼음이 깨져 물에 빠질 때 얼음 조각에 목이 잘린 것으로 기술돼 있다고 한다.
천나나의 마지막도 그와 같은 응보를 받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나비처럼 파국을 향해 몸을 던지는 천나나의 행보가 위태롭고 스릴있다.
또 이 음습한 인물들 틈바구니에서 기동재를 잡으려다 칼 맞고 뇌수술 받은 인천 서부서 지만구(정순원)와 변지웅(김지훈) 형사의 유아적인 브로맨스는 웃음과 청량감을 안겨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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