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화, 현모양처→이혼 결심 “100억 빚더미, 20년 걸쳐 노래로 갚아” (‘마이웨이’)[종합]
OSEN 박하영 기자
발행 2023.07.03 08: 30

‘마이웨이’ 장미화가 이혼을 언급하며 당시 심경을 전했다. 
2일에 방송된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서는 1973년 ‘안녕하세요’라는 곡으로 연예계 데뷔하며 그 시절 미8군부터 대중들까지 파워풀 보이스로 사로잡은 ‘원조 국민 디바’ 가수 장미화의 모습이 전파를 탔다.
이날 장미화의 거실에는 수많은 상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에 대해 “이런 것들은 상 받은 건데 웬만한 상들은 다 치우고 근례에 받은 것 놔뒀다”라고 자랑했다. 특히 50만 원 상당의 트로피를 꺼낸 장미화는 “이거 받을 때 천만 원 상금을 받았다”라며 “불자대상은 받기가 힘들다. 불교를 믿는 사람들 중에 뛰어난 사람,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한테 주는 상이라 굉장히 귀한 상이다. ‘돈도 없는데 정말 잘됐다. 이런 거 여러 개 받았으면 좋겠다’ 했었다. 저한테는 이 상이 가장 귀한 상이다”라고 말해 놀라움을 자아냈다.

제작진이 ‘가수로서 받은 상’에 대해 묻자 장미화는 “가수로서 받은 상들은 별별 상을 다 주니까 나도 잘 모른다. 주면 받고 말면 말고 그렇다”라며 재치있는 입담을 뽐냈다.
그런가 하면, 장미화는 KBS 연말 톱 싱어 대회를 통해 가수 데뷔를 했다고. 그는 “첫 무대는 KBS 연말 톱 싱어 대회였다. 가수를 발굴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요즘 오디션 보듯이 했다. 1년을 거쳐서 연말에 대상 받는 사람이 가수가 되는 거였다. 거기서 제가 대상을 받았다”라며 당시 19살이었던 장미화는 오디션에서 박재란의 ‘태양은 늙지 않는다’를 불렀다고 회상했다. 이후 장미화는 ‘안녕하세요’를 시작으로 ‘내 마음은 풍선’, ‘웃으면서 말해요’, ‘어떻게 말할까’, ‘애상’, ‘내 인생 바람에 실어’ 등 당대 최고의 히트곡 메이커가 됐다.
무엇보다 장미화는 화려한 의상이 가득한 안방을 비롯, 엄청난 양을 자랑하는 옷방까지 공개해 시선을 모았다. 장미화는 “신발만 해도 200켤레 될 거다. 다 정리해서 100켤레를 장애인 협회에 기부했다. 1년에 바자회 할 때 내 의상만 300벌 이상 나간다. 근데 1년쯤 되면 미국에서 오지, 태국에서 오지. 동생들이 보내준다. 내가 사는 건 10% 정도밖에 안 된다”라고 설명했다.
실제 장미화는 오랜 시간 나눔을 실천하고 있었다. 이유를 묻자 장미화는 “‘왜 살아야 하나. 너무 힘들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내 돈은 다 어디 가고 내가 이렇게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할때 정말 죽고 싶고 살기 싫었다.그냥 목숨 하나 없어지면 된다는 생각에 8층 창문을 수없이 열었다 닫았다 했다”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그 순간 내가 ‘우리 동네에 힘들고 어렵고 사는 사람은 없을까? 나보다 더 힘든 사람은 없을까?’ 나는 노래 할 수 있고 팔다리 멀쩡하니까 할 수 있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내가 그 사람들을 도와주는 게 아니라 배려를 하다 보면 내가 살 수 있는 희망이 생기려나”라고 나눔 실천을 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한편, 한국 최초 여성 록 밴드 ‘레이디 버그’ 리드 싱어로 미8군의 명물이었던 장미화는 당시 ‘생사’를 함께했던 전우들을 만나 점심 식사를 즐겼다. 그곳엔 영화 ‘고고70’의 실제 주인공 데블스(홍필주)부터 김혜정, 조갑출, 김광정, 윤향기가 함께했고, 이들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미8군 쇼 기록관을 찾아 추억 여행에 나섰다.
한바탕 추억 여행을 마친 이들은 당시 아찔한 순간을 경험했던 일화를 전하기도 했다. 장미화가 ’1969년도에 사이공을 갔는데 구정 공세였다. 총 맞아 죽을 뻔했다”라고 말하자 윤향기 역시 “나도 사이공에 있었다”며 공감했다.
특히 장미화는 “나는 현모양처로 살았다. 이혼하고 뭘 느꼈냐면 ‘현모양처처럼 해도 소용이 없구나’ 했다. 아내는 동등해야 하는데 아래로 본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대우가 없다. 나로선 존경하는 의미에서 해줬는데 깔보면 되겠나”라며 친정엄마 만류에도 이혼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이혼을 한 장미화는 공백기를 가진 뒤 다시 무대에 섰다. 하지만 장미화는 가수 이전에 엄마였다. 그는 아들 양육권을 지키기 위해 전 남편 빚 무려 100억을 떠 안기로 결심했다. 장미화는 “그때 방송에선 내가 100억 정도 된다고 했다. 20년에 걸쳐서 갚았다. 오죽하면 12군데를 뛰었을까”라며 오직 노래로 갚았다고 전했다.
이후 장미화는 100억을 갚기 위해 밤무대까지 서가며 밤낮없이 달렸다. 심지어 밤무대를 뛰었던 장미화는 관객들에게 이혼과 관련해 막말과 무시까지 당하기도 했었다고. 이에 대해 “그때는 연예인이 이혼한다고 하면 엄청난 핸디캡이었다. 그때는 창피했고, 낯뜨거웠다. 내가 이걸 참지 못하면 내가 아들과 어머니를 모실 수가 없다. 이 자존심을 참아야 한다. 정말 혼자서 울 때도 많았다”라고 그간의 마음고생을 떠올렸다.
반면 사진작가로 활동 중인 아들 김형준은 과거 부모님의 이혼에 대해 속내를 밝혔다. 그는 “이해라기보다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겠구나 싶다. 가장으로서 일을 해야 하니까. 제가 돈을 버는 나이가 되고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지그미은 이해를 하지만 어렸을 때는 이해가 안 됐다. 그래서 유학을 갔던 것 같다. 왜냐면 부딪히니까 사춘기가 와서. 지금은 많이 이해하고 엄마를 좀 더 이해하려고 노력을 하죠”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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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마이웨이’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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