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 위너라고 불러"…윤여정, 오스카 수상 후 달라진 할리우드 위상 [인터뷰](종합)
OSEN 김보라 기자
발행 2024.01.26 19: 51

 “제가 연기 활동은 오래했지만 스타 대접을 받는 자리에 있지는 못했다.(웃음)”
배우 윤여정(76)은 26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OSEN과의 인터뷰에서 “제가 어릴 땐 커리어우먼이라는 단어가 없었다. 반세기 전의 일이다. 지금과는 너무 다른 세상에 제가 살았었다. 그래서 그때는 세상이 이끄는 대로 시집을 가야 하는 시기였다”라고 쉽지 않았던 배우로서의 삶을 짤막하게 되짚었다.
이어 윤여정은 “나는 어릴 때도 롤모델이 없었다. 내가 젊었을 때 동료들은 ‘김혜자 선생님처럼 되고 싶다’고 하더라. 그때도 나는 ‘김혜자 선생님은 단 한 명만 있어야지’라는 생각이었다. 나대로 나의 길을 가고자 했다. 그래서 나도 후배들에게 조언 같은 거 안 한다”면서 “후배들도 나를 롤모델로 꼽지 않았으면 좋겠다. 재주는 잠깐 빛날 수 있지만 열심히 해야만 유지할 수 있다”고 배우로서 자신의 가치관을 강조했다.

그녀가 출연한 새 한국영화 ‘도그데이즈’(감독 김덕민, 배급 CJ ENM, 제작 CJ ENM, 공동제작 CJ ENM STUDIOS·JK FILM·자이온 이엔티㈜)는 성공한 건축가와 MZ 라이더, 싱글 남녀와 초보 엄빠까지 혼자여도 함께여도 외로운 이들이 특별한 단짝을 만나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갓생 스토리를 그린다. ‘미나리’(감독 정이삭·2021) 이후 3년 만의 영화. 윤여정은 성공한 건축가 민서 역을 맡았다.
민서 캐릭터와 관련, “처음에 이 역할을 제안받았을 때 이름이 ‘윤여정’이었다. 시나리오를 읽지 않고 있었는데 윤제균 감독이 ‘다른 배우는 캐스팅을 할 수 없다. 다른 배우 생각을 안 했다’고 하더라. 처음부터 나를 염두해 썼다더라”고 전했다.
민서와 성격이 비슷해 보인다는 말에 “내가 싱크로율은 측정해보지 않아서 모른다.(웃음)”고 답해 웃음을 안겼다. 대사와 관련해서는 “인물의 말투를 보니 내가 할 만한 대사를 썼네 싶었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나를 놓고 썼으니 내 실제 성격을 넣지 않았을까 싶다”고 했다.
“이 작품은 시나리오가 좋았다기보다는 사람을 봤다. 출연을 결정할 때마다 고려하는 게 매번 다른데 보통 사람, 돈(출연료), 시나리오를 본다.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에서 김덕민을 조감독으로 만나 그때 전우애 같은 게 쌓였다. 당시에 ‘덕민이가 입봉을 하면 내가 출연하겠다’고 말했었다. 결국 19년 만에 데뷔를 하더라.”
자신의 캐릭터 연기에 대해 윤여정은 “역할이 왔을 때 어떻게 하면 남들과 다르게 표현할지 고민한다. 다른 인기 여배우가 맡은 역할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내 입장에선 이해가 안 간다.(웃음)”라며 “지름길은 없다. 내가 연습을 많이 해 온 이유는 타고난 게 없어서 생긴 버릇이었다. 물론 타고난 듯한 연기력에, 태어날 때부터 외모가 뛰어난 배우들은 있다. 근데 타고난 건 언젠가 없어진다.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밝혔다.
이날 윤여정은 자신만의 강점을 키운 과정에 대해서도 전했다. “다른 배우들은 연극영화과 출신이었는데 저는 조금 독특해서 뽑힌 거 같았다. 제가 연기를 정식으로 배우지 않아서 열등감 같은 게 있었다. 그래서 그땐 ‘시집 가서 잘 살아야지~’ 싶었는데 인생이 뜻대로 안 됐다. 그래서 돌아오게 됐을 때 굉장히 감사했다”며 “만약에 내가 어떤 기업에서 잘나가는 직원이었다면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좋은 자리를 내주진 않았을 거다. 하지만 (연예계로) 다시 돌아왔을 때 자리가 있었고 어떤 역할이든 불만 없이 열심히 했다”고 돌아봤다.
“오랜 시간 연습을 통해 연기 기반을 다져왔다”는 윤여정은 “내가 70살이 넘었다. 이제는 돌아볼 것 밖에 없는 나이다. 그래서 목표도 없다. 시나리오가 좋아서 하든지, 감독이 좋아서 하든지, 출연료를 보고 하든지 할 때마다 고려하는 사항은 다르다. 어떻게든 할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몸이 아프면 일을 못 하는데 아직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현장에서 짜증을 내지 않는 건 아니다. 성인군자는 못 되니까.(웃음) 나이 때문에 힘들기도 하고. 가장 어려운 역할은 감독님(의 성향)과 안 맞는 작품이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젊었을 때부터 자신만의 가치관이 확고했던 윤여정은 남들이 뭐라고 하든,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노력해왔다.
“제가 연기를 너무 오래했으니까 제 일상이 된 거 같다. 일상을 영위하지 못 하는 사람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데 ‘제일 행복한 죽음은 자신의 일상을 살다가 죽는 것’이라고 하더라. 나한테 연기가 일상이니까, 연기를 하다가 죽는 게 제일 행복하지 않을까 싶다.”
민서 역의 윤여정은 먹고 살기 힘든 라이더 진우를 연기한 배우 탕준상과 호흡이 가장 길었다. 이날 탕준상에 대해 그녀는 “탕준상의 아버지가 내 아들과 동갑이더라. 그래서 놀랐다”며 “(제작진에 들어보니) 탕준상이 ‘핫’한 배우라고 하더라. 난 핫한 것에 관심이 없다.(웃음) 내가 몰랐어도 제작진이 얼마나 신경 써서 캐스팅했겠나. 내가 그 친구에게 연기 조언을 해준 건 없다. 연기학원 선생님도 아니고”라고 말해 웃음을 안겼다. 두 사람의 케미스트리가 '도그데이즈'의 관전 포인트다.
한편 윤여정은 영화 ‘미나리’(감독 정이삭·2021)로 제93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대한민국 최초로 오스카 수상 배우라는 기록을 세웠다. ‘미나리’ 이후 어떻게 지냈느냐는 질문에 “그냥 잘 살고 있었다. 그동안 말하기 귀찮고 힘들어서 인터뷰를 안 했다. 또한 건강검진을 받으며 쉬어야만 했다. 수상을 했어도 나는 나대로 살리라 싶었다”고 답했다.
그러나 윤여정은 “한국에서는 모르겠고, 할리우드에서는 대우를 무지하게 많이 받는다. 개인 트레일러를 쓰고 식사 시간에도 ‘선생님은 주문해서 드셔야 한다. 아카데미 위너이기 때문에 주문해도 된다’고 하더라. 할리우드의 존중은 굉장한 거 같다. 나를 부를 때 늘 ‘아카데미 위너’라고 한다. 그렇다고 제가 할리우드에 가서 막 돌아다니진 않는다”고 덧붙였다.
윤여정은 또한 애플TV+ 시리즈 ‘파친코’(연출 코고나다 저스틴 전·2022)에서는 시대를 담아낸 흡인력 있는 연기로 다시 한 번 전세계를 사로잡았다.
“해외로 왔다갔다 하는 건 체력이 너무 달린다. 이 나이에 해외를 오가며 촬영하는 게 힘든 일이다. 근데 ‘파친코’는 내가 하고 싶었다. (캐스팅을 위해) '모든 배우가 오디션을 봐야 한다'고 해서 그렇다면 나는 못하겠다고 생각했고, 다른 작품을 보고 있었다. 근데 그쪽에서 다시 연락을 주셔서 출연하게 됐다”고 합류한 과정을 전했다.
특별히 선자 캐릭터를 맡고 싶었던 이유에 대해 “자존감이 있는 여자를 표현하고 싶었다. (선자는) 거기서 고생하고 산 여자라서 내가 잘 표현할 수 있을 거 같더라. 아무리 못 살아도 유식하고 무식한 것과 관계없이, 자신의 일을 정직하고 성실하게 해내는 게 자존감이 있는 삶으로 보인다. 내가 무뚝뚝하고 친절한 사람은 아니지만 비굴하게 살고 싶지 않다. 그래서 그 캐릭터에 나의 정신을 넣고 싶었다”고 밝혔다.
다만 윤여정은 “‘파친코’를 찍기 위해 (국내와 해외를) 왔다갔다 했는데 체력이 너무 달렸다. 이 나이에 해외를 오가며 촬영을 하는 게 참 힘들다”고 재차 강조했다.
윤여정은 앞으로 하게 될 차기작을 예고하기도 했다. “출연을 확정한 단계는 아니지만 보고 있는 작품들은 있다. 그동안 제가 시나리오를 많이 봤으니까 반무당이 됐다.(웃음)”며 “제안받은 것 중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얘기가 있는데, 우울하지 않고 밝고 건강하게 풀어냈더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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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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