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 희망 안겨주나.
KIA 타이거즈 좌완특급 이의리(23)가 오키나와 마무리캠프에 참가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일단 내년시즌 풀타임 선발투수가 목표이다. 이제는 더 큰 과제가 있다. 국내 선발 에이스로 자리잡아야 한다. 189승을 따내며 10년 넘게 에이스로 군림한 양현종의 자리를 물려받아야 한다. 마무리캠프에 참가한 이유이기도 하다.
캠프 러닝 훈련에서 압도적인 스태미너를 과시했다. 왕복 200m짜리 러닝을 30회 소화해도 멀쩡한 얼굴이었다. 거리로 따지면 6km, 1시간짜리 극한 러닝이었다. 다른 선수들은 기진맥진해 그라운드에 쓰러졌다. "풋살을 해서 그런지..."라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느긋한 표정을 지었다.

광주일고 에이스로 2021 1차지명을 받은 유망주였다. 스프링캠프부터 남다른 구위를 과시하며 선발 한 자리를 꿰찼다. 신인으로 2020 도쿄올림픽 대표팀에 발탁받아 인상적인 투구를 했다. 4승5패 평균자책점 3.61을 성적을 올려 985년 이순철 이후 36년만에 신인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2022시즌과 2023시즌 연속 10승을 따냈다. 좌완투수 가운데 KBO리그 최고의 구위를 가졌다는 평가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부상으로 잠시 주춤했다. 2024시즌 개막 직후 팔꿈치 부상으로 이탈했고 인대접합수술을 받아 우승의 일원이 되지 못했다. 1년 넘게 재활의 시간을 보냈고 2025시즌 후반기에 복귀했다.
팔꿈치 수술 재활을 마치고 돌아온 투수에게 에이스 역할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사실상 선발투수로 2026시즌을 대비하는 예열기간이었다. 충분한 등판간격을 두고 마운드에 올랐다. 10경기 1승4패 평균자책점 7.94를 기록했다. 퀄리티스타트는 2회에 그쳤다. 5이닝 이상도 3경기에 불과했다.
팔꿈치 재활의 여파를 감안하더라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이었다. 39⅔이닝동안 41개의 삼진을 뽑아냈으나 31개의 볼넷을 내주었다. 9이닝당 볼넷이 7.03개나 된다. 최고 153km짜리 강속구를 뿌리면서도 여전히 제구가 되지 않았다. 피안타율도 2할6푼6리였다. 좌타자(.279)에게도 강하지 않았다.

5-0으로 넉넉한 점수를 지원받고도 7점을 내주며 역전패를 당했다. KBO리그 좌완투수 가운데 최고의 구위를 가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타자들에게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았다. 제구 때문에 과감하게 몸쪽 승부를 하지 못하고 바깥쪽 위주의 볼배합도 원인이었다. 변화구 구사력도 완벽하지 않았다.
팔꿈치 수술로 인해 지난 2년동안 ABS존의 수혜를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 턱없이 낮게 떨어지거나 최상단의 좌우 꼭지점 걸치는 등 타자들이 도저히 방망이를 내밀 수 없는 공들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고 있다. 커브의 무브먼트가 뛰어나기 때문에 내년 풀타임 선발을 소화한다면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내년까지는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제구 이슈를 털어내는 실마리를 반드시 찾아야 한다. 제구가 흔들리면 필연적으로 이닝 소화력이 낮을 수 밖에 없다. 데뷔 이후 선발 89경기에서 QS는 24개에 그쳤다. 대선배 양현종도 부던한 노력을 통해 제구 이슈를 극복하고 에이스로 등극했다. 이제는 이의리가 바통을 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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