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 피겨스케이팅이 마침내 세계 무대의 벽을 넘었다. 서민규(17, 경신고)가 한국 남자 싱글 선수 최초로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정상에 섰다. 20년 전 김연아가 열어젖힌 계보 위에, 한국 피겨의 새로운 이름이 올라섰다.
서민규는 5일(한국시간) 일본 나고야 IG 아레나에서 열린 2025-2026 ISU 주니어 GP 파이널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TES) 91.64점, 예술점수(PCS) 79.45점, 총 171.09점을 기록했다. 전날 쇼트프로그램 84.82점을 더해 총점 255.91점. 일본의 나카타 리오(249.70점)를 꺾고 역전 우승을 완성했다.
전날 쇼트프로그램 2위. 그러나 프리스케이팅은 완벽 그 자체였다. 뮤즈의 'Exogenesis: Symphony'가 울리는 순간, 첫 점프 쿼드러플 살코를 깔끔히 성공시키며 기본점 9.70점에 GOE 1.80점을 더했다. 이어진 트리플 악셀-트리플 토루프, 트리플 플립-트리플 토루프, 트리플 루프를 모두 '클린'으로 연결했다. 플라잉 카멜 스핀은 레벨4. 흐트러짐 없는 흐름이었다.

후반부 10% 가산점 구간에서도 집중력은 단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다. 트리플 악셀, 러츠-더블 악셀-더블 악셀 시퀀스, 마지막 트리플 살코까지 완벽 처리. 체인지 풋 콤비네이션 스핀·싯스핀 역시 레벨4. 연기를 마친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스스로의 연기를 확인하듯 조용히 웃었다.

이번 점수는 모두 ISU 공인 개인 최고기록이다. 종전 최고점 243.27점을 10점 이상 끌어올렸다. 지난해 준우승의 아쉬움을 완전히 털어내고 2년 연속 포디움, 첫 정상 등극. 한국 남자 선수의 주니어 파이널 최고 성적이었던 2위를 넘어섰다(2023 김현겸, 2024 서민규).
여자 싱글까지 확대해도 김연아 이후 20년 만의 금메달이다.
주니어 GP 파이널은 시즌 7개 그랑프리 시리즈 상위 6명만 서는 '왕중왕전'. 이름은 주니어지만 실력은 시니어와 차이가 크지 않다.
한편 함께 출전한 최하빈(16, 한광고)은 총점 200.70점으로 6위에 머물렀다. 쇼트 70.94점으로 5위에 올랐지만 프리스케이팅 중 쿼드 살코 실패가 치명적이었다(TES 68.09·PCS 62.67·감점 1).
이번 시즌 서민규는 이미 주니어 그랑프리 두 대회 금메달, 세계주니어선수권 금(2024)·은(2025)을 모두 경험했다. 나고야 우승은 그 흐름의 정점이자, 한국 남자 피겨의 '첫 번째 금메달'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reccos23@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