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신인이 걸핏하면 ‘지각’…그래도 홈런으로 용서받은 최고의 슬러거
OSEN 백종인 기자
발행 2025.12.25 06: 22

요미우리, 양키스의 4번 타자 마쓰이 히데키 이야기
[OSEN=백종인 객원기자] ‘자이언츠 타임’이라는 게 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쓰는 말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집합 시간 30분 전에는 도착해야 하는 팀의 전통에서 생겼다.
훈련 시작이 오전 9시라고 치자. 그럼 늦어도 8시 30분까지는 출근해야 한다는 뜻이다. 신입 혹은 저연차 선수는 더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1시간 정도 일찍 나오는 건 기본이다.

[사진]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그런데 걸핏하면 이를 어기는 멤버가 있었다. 그것도 19살짜리 고졸 루키였다. 바로 마쓰이 히데키(51)의 신인 때 얘기다.
고교 시절 이미 전국구 스타였다. ‘반칙이다. 고시엔 대회에 프로가 한 명 뛰고 있다.’ 그런 소리를 들을 만큼 걸출했다. 오죽하면 5타석 연속 고의4구를 얻을 정도다. 무려 프로 팀 4곳이 1순위로 지명했다.
당연히 스프링 캠프부터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첫날부터 지각이다. 본인은 10분 전에 도착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자이언츠 타임’으로는 20분이나 늦은 셈이다.
이튿날 스포츠신문들이 일제히 이를 1면 톱기사로 다뤘다. ‘마쓰이 지각’이라는 제목이 달렸다.
다음 날도 반복됐다. 어찌어찌하다가 또 늦었다. 이틀 연속 1면 머리기사의 주인공이 됐다. 그때부터 그에게는 또 하나의 별명이 생겼다. 지각마(遅刻魔)라는 닉네임이다. 우리 식으로 하면 ‘지각왕’이다.
당사자의 기억은 여전히 또렷하다. 올해 8월이다. ‘슈칸 베이스볼’이라는 매거진의 4000호 기념식 때다.
“자이언츠 타임을 잘 몰라서 생긴 일이었다. 그렇다고 지각이 이틀 연속 1면 톱기사로 나온 것은 너무한 것 아닌가. 지금도 불만을 제기하고 싶다.” 그렇게 억울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사진]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그러나 억울함은 당치 않다. 에피소드가 하나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역시 신인 시절의 얘기다. 한 매체가 대담을 마련했다. 같은 요미우리 계열의 신문 ‘스포츠호치’가 의욕적으로 기획한 이벤트다.
이른바 ‘4번 타자 마쓰이 육성 1000일 계획’이라는 거창한 명칭의 프로젝트다. 기대주 마쓰이가 타격의 달인 오치아이 히로미쓰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는 콘셉트다.
40세가 넘은 오치아이는 당시 요미우리의 붙박이 4번 타자였다. 이미 최고의 반열에 올랐다. 자타가 공인하는 지존이다. 타격 3관왕도 몇 차례나 달성했다.
그 자리에도 19살 신참은 30분이나 늦었다. 대선배를 비롯한 취재진과 구단 스태프들을 기다리게 만든 것이다. “새로 뽑은 차를 몰고 나왔는데, 운전이 서툴고 길도 많이 막혀서 그랬다.” 군색한 변명이 분위기를 더 어색하게 만들었다.
또 있다. 입단 3년째(1995년) 시즌이다. 팬 투표에서 1위로 뽑혔다. 올스타전에 출전하게 됐다. 경기장인 히로시마까지 개별 이동해야 하는 스케줄이다.
아니나 다를까. 비행기를 놓쳤다. 부랴부랴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경기 전 연습이 모두 끝난 다음이다. 제대로 몸 풀 시간도 없이 타석에 들어서야 했다.
그래도 재능은 어디 가지 않는다. 맹타상(3안타 이상)을 휘두르며, MVP에 뽑혔다.
그런 일이 반복된 것 같다. 지각하는 날 유난히 타격 성적이 좋았던 경우 말이다. 그래서 인과관계로 연결 짓기도 한다. ‘마쓰이가 지각하는 날 조심해라. 홈런을 벼르고 타석에 들어선다’는 말도 생겼다.
OSEN DB
미국에 가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월드시리즈 때 일화가 유명하다.
2009년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일전이었다. 1차전을 패하고 다음 날이다. 가뜩이나 침울한 양키스의 팀 분위기다. 경기 전에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긴다. 몸풀기에 이어 프리 배팅 때까지 지명타자(마쓰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기자들이 술렁인다. ‘무릎에 물을 빼고 하더니, 통증이 심해진 것 아니냐?’ ‘아예 출전이 어려운 정도냐?’ 질문이 마구 쏟아진다. 구단 홍보 파트도 적당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
그러나 이내 지각 때문이라는 사실이 알려졌다. 다행스럽게 플레이볼 직전에 스타디움에 도착했다.
그리고 또 한 번 고질라의 마성을 드러낸다. 1-1로 팽팽한 6회 세 번째 타석이다. 상대 선발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낮은 커브를 우측 담장 너머로 넘겨버린다. 2차전을 가져온 결승 홈런이다.
이 게임이 전환점이다. 양키스 타선에 불이 붙었다. 시리즈를 리드하기 시작한다.
결정적으로 6차전에 한번 더 폭발한다. 상대는 역시 외계인 페드로였다. 홈런을 포함해 무려 6타점을 쏟아낸다. 우승의 1등 공신이 됐다. 시리즈 타율이 무려 0.615(13타수 8안타), OPS 2.000을 기록했다(홈런 3개). MVP는 ‘지각마’의 차지가 됐다.
물론 지각은 일부의 단면일 뿐이다. 전반적인 성실함과 꾸준함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NPB 시절 1250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세웠다. 양키스 데뷔 이후에도 518게임을 빠지지 않고 뛰었다.
TBS TV 중계화면
/ goorada@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