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는 네가 맡아라” 故이순재가 마지막 부탁했던 후배 정체 [핫피플]
OSEN 김수형 기자
발행 2025.12.28 23: 37

'시력 대부분을 잃고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 상황에서도 끝까지 연기를 향한 열망을 내려놓지 않았던 고(故) 이순재의 생전 모습이 공개되며 깊은 울림을 주고 있다. 여기에 그가 믿고 연극계를 맡겼던 후배의 정체까지 알려지며 감동을 더한다.
지난 달 28일 방송된 MBC 다큐멘터리 추모 특집 ‘배우 이순재, 신세 많이 졌습니다’는 대중이 미처 알지 못했던 고인의 마지막 시간을 담아냈다. 이순재의 생전 마지막 작품은 KBS2 드라마 ‘개소리’. 그는 주연이라는 부담 속에서도 서울과 거제도를 오가는 강행군 촬영을 묵묵히 소화하며 단 한 번도 힘든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무도 몰랐던 사실이 있었다. 양쪽 눈이 100%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는 것. 소속사 대표 이승희는 “모르는 분들이 많다. 선생님은 왼쪽, 오른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전과 똑같이 연기 훈련을 하셨다”며 “안 보이니까 오히려 더 연습해야 한다고 하셨다. 대본을 읽어드리면 그걸 외우겠다고 하셨다”고 울먹이며 회상했다.

이순재 역시 병상에서 “작년 10월 촬영 끝나고 갑자기 안 보이길래 병원에 갔더니 왼쪽 눈이 안 보이더라”고 담담히 말하는 모습이 다큐에 담겼다.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던 그는 오히려 더 철저하게 준비하며 연기에 대한 책임을 다했다.
다큐는 그가 생전 연습하던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현장도 공개했다. 무려 560마디에 달하는 대사를 멈추지 않고 분석하고 연구하는 모습은 압도적이었다. 서울대 연극부 시절부터 꿈을 키워온 그는 국민배우가 된 뒤에도 끝까지 연극 무대를 떠나지 않았던 몇 안 되는 배우였다.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에서 함께했던 배우 카이는 “관객들에게서 에너지를 받으셨다. 피해 주기 싫다는 말만 하셨다. 1시간 반 공연을 마치고 바로 응급실로 가셨다”고 회상했고, 연출가 역시 “걷지도, 말도 제대로 못하셨다. 공연 취소하자고 울면서 말릴 정도였다”며 당시를 떠올려 먹먹함을 더했다. 그럼에도 이순재는 끝내 ‘포기’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고인이 생전에 연극계를 맡기고 싶다며 마지막 부탁을 전한 후배의 정체도 공개됐다. 바로 배우 박근형이다.
어제인 28일 방송된 SBS ‘미운 우리 새끼’에서 스페셜 MC로 출연한 박근형은 평생을 함께해 온 동료이자 큰 형님이었던 이순재를 떠올리며 깊은 그리움을 전했다. 그는 “수십 년 동안 동고동락하다시피 한 사이라 가슴이 너무 아프다. 모든 후배들이 선배님을 그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신구, 이순재와의 끈끈한 우정을 회상하며 “선배님 다음이 신구 선생님, 그다음이 나다. 우리 셋이 연극 이야기로 자주 모였다”고 전했다. 하지만 박근형은 “몸이 불편하다고 병원에 가신 뒤 얼굴도 뵙지 못하고 떠나보낸 게 너무 서운하다”며 마지막 인사를 전하지 못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특히 그는 고인이 자신의 연극 공연장을 찾아와 남긴 말을 공개했다. “앞으로 연극계는 네가 맡아야 해. 열심히 좀 해줘.” 박근형은 이 말을 “유언처럼 가슴에 남아 있다”고 전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두 눈이 보이지 않아도 대본을 놓지 않았고, 마지막 순간까지 후배에게 연극의 미래를 부탁했던 이순재. 그의 마지막 당부가 유독 먹먹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연기가 곧 삶이었던 ‘배우 이순재’의 진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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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방송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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