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락 감독에 온 '잡초' 감독. 이정효의 수원 삼성이 위르겐 클롭의 리버풀처럼 명가 재건을 위해 달리고 있다.
수원은 24일 이정효 감독의 부임을 공식 발표했다. 수원은 “명확한 축구 철학과 탁월한 지도 능력, 선수 육성 강점을 가진 이 감독이 구단의 재도약을 이끌 적임자라고 판단했다. 그동안 구단은 진정성과 존중의 마음을 담아 최선을 다해 이 감독 영입을 추진해 왔다”고 설명했다.
K무리뉴 이정효 감독은 비시즌 가장 뜨거운 구애를 받는 감독이었다. 사실상 감독이 필요한 모든 구단이 이정효를 원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을 넘어 J리그에서도 꾸준히 러브콜이 왔다.



이정효 감독의 선택은 2년 연속 승격에 실패한 쓰러진 명가 수원삼성이었다. 이정효 감독은 "조건이 아니라 구단이 보여준 진심과 간절함, 그리고 감독에 대한 깊은 존중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밝혔다.
이정효 감독은 현존하는 최고의 한국인 감독이다. ‘K무리뉴’라는 별명답게 광주의 최다승 K리그1 승격, 챔피언스리그 엘리트(ACLE) 8강, FA컵 준우승 등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 당연히 이정효 감독은 수원 삼성말고도 K리그1 우승 클럽과도 연결됐다. J리그의 러브콜도 있었다.

그럼에도 이정효 감독은 과거 아주대 시절을 떠올리면서 몰락한 명가 수원을 택했다. 이 장면은 자연스럽게 위르겐 클롭의 리버풀 부임 초기와 겹친다. 클롭이 리버풀에 온 2015년 팀은 리그 정상과 거리가 멀었다. 우승은 요원했고, 정체성도 흐릿했다.
그러나 클롭은 성적보다 ‘방향’을 먼저 세웠다. 강한 압박, 빠른 전환, 끝까지 뛰는 축구. 그는 이를 ‘헤비 메탈 풋볼’이라 불렀다. 초반 성과는 더뎠다. 첫 시즌 리그 8위, 유럽대항전 준우승. 하지만 철학은 흔들리지 않았다. 구단은 클롭에게 시간을 줬고, 클롭은 선수단을 바꾸기 시작했다. 결과는 분명했다.
클롭 감독 체제에서 2019년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2020년 프리미어리그 우승. 30년 기다림의 종지부였다. 리버풀은 ‘다시 믿을 수 있는 팀’이 됐다. 수원 삼성의 현재는 그 이전의 리버풀과 닮아 있다. 명가의 이름값은 남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2년 연속 승격 실패, 흔들린 정체성, 잃어버린 자존심. 그래서 이정효 감독의 선택은 상징적이다. 그는 결과로 말해온 지도자다. 광주에서 최다승 승격, ACLE 8강, FA컵 준우승. 그러나 그 성과의 뿌리는 ‘기본기’와 ‘훈련의 밀도’였다.
이정효 감독은 스스로를 ‘잡초’라 불러왔다. 화려하지 않지만, 뽑아도 다시 자라는 존재. 그의 축구도 그렇다. 압박, 빌드업, 라인 간격. 반복 훈련으로 체화시키는 방식이다. 현역 선수들 사이에서 “이정효에게 배워보고 싶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국가대표팀에서도 그의 지도법이 화제가 된 배경이다.
수원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화답했다. 부임 전 12명의 선수를 정리했다. 이정효 감독의 축구에 맞는 판을 깔겠다는 신호였다. 1호 영입으로 거론되는 홍정호는 그 상징이다. 국가대표 출신, K리그 MVP, 빌드업의 핵심. 이정효 감독이 직접 전화를 걸어 필요성을 설명했다는 후문이다. 클롭이 반 다이크로 리버풀의 수비를 세운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물론 길은 쉽지 않다. 클롭의 리버풀도 인내의 시간을 거쳤다. 수원 역시 단기간 반등을 장담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한 건 하나다. 방향이 생겼다는 점이다. 명가 부활은 선언이 아니라 과정이다. 이정효 감독은 그 과정을 설계할 준비가 돼 있다.

이정효 감독은 현역 시절 커리어로 인해서 감독으로 다소 오랜 기간 무시를 받기도 했다. 실제로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놈이 와서 감독 한다니까 팀을 무시한다"라는 이정효 감독의 표현처럼 여전히 그를 향한 시선이 무조건 긍정적이진 않다.
클롭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두 사람은 유사한 점이 많다. 그리고 이제 클롭 감독처럼 이정효 감독은 몰락 명가의 재건의 기치를 올리게 됐다. 리버풀에 클롭이 그랬듯, 수원에 이정효가 왔다. 잡초는 쉽게 지지 않는다. 그리고 때로, 가장 질긴 생명력이 가장 아름다운 숲을 만든다.
수원 삼성이 과연 이정효 감독과 함께 명가 재건을 노래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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