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여자 농구 국가대표 고(故) 김영희가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흘렀다.
고인은 지난 2023년 1월 31일, 오랜 투병 끝에 향년 60세로 별세했다. 사인은 목뼈 골절로 인한 합병증이었다.
지인에 따르면 김영희는 평소 아침과 저녁마다 안부 전화를 주고받을 정도로 주변과 연락을 이어왔지만, 사고 당일에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이후 화장실을 다녀오다 넘어지며 목을 크게 다쳤고, 처음에는 의식을 유지했으나 상태가 급격히 악화돼 결국 심폐 정지로 생을 마감했다.

김영희는 한국 여자 농구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200cm가 넘는 키로 코트를 압도한 그는 1980년대를 대표하는 최장신 센터였다. 숭의여고를 거쳐 실업팀 한국화장품에서 활약했고, 1983년 농구대잔치에서는 득점과 리바운드 부문 1위, 인기상과 최우수선수상까지 석권하며 전성기를 누렸다.
국가대표로서의 활약도 눈부셨다. 19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과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고,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까지 태극마크를 달았다. 이 공로로 체육훈장 백마장과 맹호장을 수훈했다.
그러나 화려한 커리어는 오래가지 못했다. 1987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훈련 중 쓰러진 그는 말단비대증 판정을 받았다. 성장호르몬 과잉 분비로 신체와 장기가 비대해지는 희귀 질환이었다. 이후 농구 코트를 떠난 김영희는 뇌종양, 저혈당, 갑상선 질환, 장폐색 등 각종 합병증에 시달리며 긴 투병 생활을 이어갔다.
투병 속에서 그의 삶은 점점 팍팍해졌다. 한때 한국 여자 농구의 상징이었던 그는 은퇴 후 경제적 어려움까지 겪었다. 2021년 유튜브 채널 ‘근황올림픽’을 통해 공개된 근황 영상에서 김영희는 “한 달에 올림픽 연금 70만 원으로 생활하고 있다”며 현실을 담담히 전해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후 문화체육관광부가 특별 보조금을 지원했고, 농구 후배 서장훈을 비롯한 농구인들과 가수 임영웅의 팬클럽 ‘영웅시대’ 등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김영희는 방송과 인터뷰를 통해 “임영웅의 노래가 투병 생활에 큰 힘이 됐다”며 고마움을 전하기도 했다.
큰 키로 인해 평생 편견 어린 시선을 감당해야 했던 그는 우울증을 겪으면서도 장애 아동을 위한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등 사회와의 연결을 놓지 않으려 애썼다. 그러나 끝내 악화된 병세를 이기지 못했고, 빈소 없이 조용히 장례를 치르며 쓸쓸한 마지막을 맞았다.
그의 별세 이후 여자프로농구(WKBL) 경기에서는 추모 묵념이 이어졌고, 농구인들은 “한국 여자 농구의 상징”이라며 고인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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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스타다큐-마이웨이' 캡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