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시청 후 작성된 리뷰 기사입니다.>
“하고 싶은 건 작품밖에 더 있나”배우 故 이순재가 마지막 순간까지도 연기를 이야기했던 삶이 먹먹한 울림을 안겼다.
12일 방송된 KBS2TV ‘셀럽병사의 비밀’에서는 한국 드라마사의 산증인이자 ‘영원한 현역’으로 불렸던 故 이순재의 연기 인생이 조명됐다.

가장 먼저 공개된 건 2025년 1월 열린 ‘KBS 연기대상’ 수상 순간이었다. 당시 이순재는 데뷔 70년 만에 처음으로 연기대상을 품에 안았다. 수척해진 얼굴로 무대에 오른 그는 “오래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다”며 울컥한 모습으로 모두를 먹먹하게 했다.이어 “언젠가는 기회가 한번 오겠지 하고 늘 준비하고 있었다”며 “오늘 이 아름답고 귀한 상을 받았다. 나이가 들어도 잘하면 대상을 주는 것, 공로상이 아니다”라고 말해 깊은 울림을 남겼다.



2018년 ‘베스트스타상’, 문화예술훈장 등을 받았지만 정작 연기대상은 처음이었다. 이를 지켜본 박해미는 “생각보다 너무 늦었다. 정말 화가 날 정도였다”며 “상복이 없어도 수많은 작품을 했는데 대종상 한 번 못 받은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안타까워했다.
방송은 이순재의 긴 연기 인생도 함께 돌아봤다. 1961년 12월 서울역 광장. KBS 개국과 함께 데뷔했던 이순재는 사실상 한국 드라마 역사와 함께 걸어온 배우였다. 박해미는 “그 자체로 역사의 산증인”이라고 표현했다.신인 시절 그는 배우 역할뿐 아니라 촬영장 정리까지 도맡았다고.

특히 초창기엔 악역 전문 배우였다. 생전 이순재는 첫 배역이 여중생 성폭행범이었다고 털어놓은 바 있으며, ‘형사수첩’에서는 범행 장면만 33번 촬영했다고 회상하기도 했다.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학창 시절 6.25까지 겪었던 그는 서울대 철학과 54학번 출신의 엘리트였다.
가족들은 안정적인 길을 기대했지만, 이순재는 연기를 택했다.그 이유에 대해 그는 생전 “영화 감상이 유일한 취미였다”며 영화 ‘햄릿’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회상했다.이어 “연기는 예술이라고 느꼈다”며 배우라는 직업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전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연기 경력 20년이 넘도록 제대로 된 출연료조차 받지 못했고, 무려 10년 동안 아내에게 생활비를 주지 못했다고. 촉망받던 무용가였던 아내는 2평 남짓한 만둣가게와 분식집을 운영하며 생계를 책임졌다.아내는 “남편 수입이 없었다”며 “그래도 돈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은 존경했다. 부족하면 내가 벌어 살면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순재 역시 돈보다 작품을 먼저 생각했다.2018년 영화 ‘덕구’에 노개런티로 출연했던 그는 당시 “이 나이에 주인공인데 돈 안 받아도 된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아흔이 넘어서까지도 그는 연기를 놓지 않았다.무려 30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하면서도 “난 아직도 노력 중”이라고 말했던 배우였다.
‘전국노래자랑’을 34년간 이끈 故 송해와 함께 이순재의 공통점으로는 완벽한 대본 암기가 꼽혔다.끊임없는 자기 훈련 덕분이었다.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좀 손해 본 듯 살아도 괜찮다. 나중에 보면 큰 손해가 아니더라”며 “서로 이해하며 사는 게 결국 마음 편한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제작진을 먹먹하게 만든 건 배우로서의 책임감이었다.이순재는 과거 인터뷰에서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도 녹화를 했다”며 “공적인 일과 개인적인 일은 별개”라고 말했다. 이어 “배우란 직업은 관객과의 약속이다. 지킬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 책임감은 병상에서도 이어졌다. 방송에는 병실에 누워 있는 이순재의 모습도 공개됐다. “하고 싶은 거 없으세요?”라고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답했다. “하고 싶은 건 작품밖에 더 있나.”라고 말한 모습.삶의 마지막까지도 연기를 이야기했던 배우였다.
특히 2025년 연기대상 수상 당시 소감도 다시 공개됐다.이순재는 “가천대에서 13년간 지도교수로 있었다”며 “촬영 때문에 도저히 시간이 안 돼 학생들에게 미안하다고 했더니, 학생들이 ‘걱정 말고 드라마 촬영 잘하시라’고 하더라”며 눈물을 보였다.이어 “학생들을 믿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오늘날 결과가 나왔다”며 “시청자 여러분 평생 동안 신세 많이 지고 도움 많이 받았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하지만 그렇게 끝까지 버티던 몸은 결국 폐렴을 이겨내지 못했다.2025년 11월 25일.평생 무대를 사랑했던 배우 이순재는 건강 악화로 세상을 떠났다.마지막 순간까지도 연기를 놓지 않았던 그의 삶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작품이었고 생전 모습이 다시 재조명되며 시청자들을 먹먹하게 햇다. /ssu08185@osen.co.kr
[사진] ‘셀럽병사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