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의 황제' 고(故) 마이클 잭슨이 세상을 떠난 지 17년이 흘렀다.
고 마이클 잭슨은 2009년 6월 25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심정지 상태로 발견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향년 50세. 갑작스러운 비보에 전 세계 음악 팬들이 큰 충격을 받았다.
고 마이클 잭슨은 1964년 형제들과 함께 그룹 잭슨 파이브(The Jackson 5)의 막내로 데뷔해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재능을 인정받았다. 1971년 솔로 활동을 시작한 그는 1980년대 세계 음악 시장을 뒤흔들며 '팝의 황제'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빗잇’, ‘빌리진’, ‘스릴러’, ‘아이 저스트 캔스탑 러빙유’, ‘배드’, ‘맨인더미러’, ‘더티다이아나’, ‘더 웨이 유 메이크미 필’, ‘블랙 오어 화이트’, ‘스크림’, ‘힐더월드’, ‘유아낫 얼론’, ‘아윌비 데어’, ‘댄져러스’, ‘러브 네버 펠트 소 굿’ 등 수많은 히트곡을 발표했다. 혁신적인 퍼포먼스와 문워크, 독보적인 무대 연출로 시대를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화려한 음악 인생과 달리 사생활은 늘 세간의 관심과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딸인 리사 마리 프레슬리와 1994년 결혼했지만 2년 만에 이혼했고, 이후 간호사였던 데비 로우와 재혼해 장남 프린스와 장녀 패리스를 얻었다. 이후 대리모를 통해 셋째 아들 프린스 마이클 2세(블랭킷)를 품에 안았지만, 자녀들의 친부를 둘러싼 각종 루머가 끊이지 않았다.

큰 아들 프린스가 마이클 잭슨과 전혀 닮지 않았고 그가 피부과 전문의 아놀드 클라인과 데비 로우 사이에서 나온 혼외자라는 루머가 계속 돌았다.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 이후에는 주치의였던 콘래드 머레이를 둘러싼 법적 공방이 이어졌다. 검찰은 콘래드 머레이가 수면을 돕기 위해 마취제인 프로포폴을 과다 투여해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판단했고, 결국 그는 2011년 과실치사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반면 머레이는 마이클 잭슨이 스스로 약물을 투여했다고 주장하며 책임을 부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유죄 판결을 받은 콘래드 머레이는 이후 자신이 출간한 책에서 마이클 잭슨의 성폭행 의혹을 제기했다. 또한 “마이클 잭슨은 광대 의상을 입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는 스트리퍼를 고용했다. 호텔 방으로 콜걸을 자주 불렀다”고 주장했다.
고 마이클 잭슨은 세상을 떠났지만 여전히 전 세계 음악팬들의 관심은 식지 않았다. 최근에는 고인의 전성기 시절을 다룬 영화 ‘마이클’이 개봉되기도 했다. /kangsj@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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