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TS가 거절한 상"..'독이 든 성배' 된 그래미, K팝 보이콧 도미노 시작되나 [Oh!쎈 초점]
OSEN 최이정 기자
발행 2026.07.31 13: 21

 “우리는 우리만의 방식으로 기준을 만든다.”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그래미 어워즈(이하 그래미)의 ‘베스트 아시안 팝 음악 퍼포먼스’ 부문 출품을 거부하며 던진 묵직한 화두가 전 세계 대중음악계를 흔들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이 같은 소신 행보에 글로벌 K-팝 신은 물론, 문화계 전반의 공감대가 확산되면서 향후 K-팝 아티스트들의 ‘집단 보이콧’이라는 거대한 도미노 현상으로 이어질지 이목이 쏠린다.
앞서 방탄소년단 멤버 전원은 지난 29일 각자의 SNS를 통해 "저희는 올해 그래미에 출품하지 않기로 했다"는 글을 올렸다. 멤버들은 "음악이 지역이나 언어로 구분되기 보다 음악 그 자체로 들리고 사랑 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방탄소년단의 이번 발표는 앞서 그래미 측이 다음 시상식에서 아시안 팝 장르를 포함한 새로운 부문 신설하는 것에 대한 반발인 것으로 풀이됐다. 그래미는 2027년 2월 7일에 열리는 다음 시상식에서 '최우수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Best Asian Pop Music Performance)'를 비롯해 '최우수 라틴 송(Best Latin Song)', '최우수 전통 팝 보컬 퍼포먼스(Best Traditional Pop Vocal Performance)', '최우수 R&B 컬래버레이션 또는 듀오/그룹 퍼포먼스(Best R&B Collaboration or Duo/Group Performance)', '최우수 전통 포크 앨범(Best Traditional Folk Album)' 등을 신설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특히 최우수 아시안 팝 뮤직 퍼포먼스 부문은 하나 이상의 아시아 언어를 의미 있게 사용하며, K-팝, J-팝, C-팝을 포함하되 이에 국한되지 않는, 아시아 시장에서 기원하거나 널리 인정받는 아시아 팝 음악 퍼포먼스의 예술적 우수성을 인정하기 위해 신설됐다는 설명. 하지만 이를 두고 K팝을 주류 부문에서 사실상 배제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 중론이다.
이번 사태는 그래미가 신설한 ‘아시안 팝’ 부문이 K-팝의 글로벌 위상을 인정하는 척도가 아닌, 오히려 이들을 본상(제너럴 필드)에서 격리하려는 ‘독이 든 성배’이자 또 다른 형태의 차별이라는 본질을 꿰뚫어 보게 만들었다. 그래미를 주관하는 레코딩 아카데미의 CEO 하비 메이슨 주니어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인지하고 하루만에 "아시안 팝 부문은 아시아에서 탄생하는 팝 예술의 깊이와 다양성, 그리고 성장을 기념하기 위해 신설된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했지만 '뻔한 말장난'이란 반응이 지배적이다.
업계 전문가들과 영향력 있는 글로벌 유명인사들의 지지도 잇따르고 있다.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매기 강 감독은 SNS에 해당 소식을 공유하며 박수 이모티콘으로 연대를 표했고, 방탄소년단의 ‘에일리언스’와 ‘2.0’을 함께 작업한 미국 유명 힙합 프로듀서 마이크 윌 메이드잇은 SNS에 “BTS 에일리언스(ALIENS)”라는 문구와 함께 이번 보이콧을 공개 지지했다. 
더불어 에픽하이의 타블로는 “ARIRANG>GRAMMYS(아리랑이 그래미보다 위대하다)”라는 강렬한 메시지로 이들의 결정을 응원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역시 그래미의 아시안 팝 부문 신설을 두고 “아시아 뮤지션을 별도로 격리하는 듯한 분류”라며 날 선 비판을 가했다.
방탄소년단의 든든한 지원군인 아미(ARMY)는 행동으로 힘을 보탰다. 소셜 미디어상에서 #WeStandWithBTS, #Proud_of_BTS 해시태그 운동을 펼치는 동시에, 이들의 정규 5집 ‘아리랑(ARIRANG)’ 수록곡 ‘Aliens’를 미국, 영국 등 전 세계 78개 국가/지역의 ‘아이튠즈 톱 송’ 1위(30일 기준)에 올려놓는 저력을 과시했다. ‘Aliens’는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방탄소년단의 정체성과 포부를 담은 곡으로 다른 모습과 생각, "우리만의 기준을 만들며 나아가겠다"라는 가사처럼 행동이 곧 우리의 특별함이라는 메시지를 전하며 현 상황과 완벽히 맞물리는 울림을 주고 있다.
제69회 그래미의 공식 온라인 출품 접수 마감일은 2026년 8월 21일. 방탄소년단이 쏘아 올린 공이 K-팝 아티스트들의 연쇄 출품 거부로 이어진다면, 타격을 입는 쪽은 K-팝이 아닌 그래미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K-팝 팬덤의 폭발적인 결집력을 잃은 그래미는 소셜 미디어 트래픽과 시청률 등 흥행 면에서 막대한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K-팝을 시청률 흥행 카드로 이용하려다 오히려 K-팝에게 버림받는 ‘자충수’를 둔 꼴이다.
물론 J-팝이나 C-팝 가수들이 그 자리를 채울 수도 있겠지만, 현재 글로벌 음악 시장의 주류이자 핵심 플레이어인 K-팝 아티스트들이 빠진 ‘베스트 아시안 팝 음악’ 부문은 결국 속 빈 강정, 초라한 빈껍데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또한 방탄소년단의 이번 결정은 과거 팝 역사를 바꿨던 글로벌 톱 클래스 아티스트들의 ‘불합리한 권력에 대한 저항 정신’과 궤를 같이한다.
역사적으로 그래미의 유색인종 차별은 고질병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1979년 마이클 잭슨이 정규 1집으로 2000만 장이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리고도 주요 부문에서 외면받은 사건이 대표적이다. 2010년대에 들어서도 카녜이 웨스트, 켄드릭 라마, 드레이크 등 대중성과 평단을 모두 사로잡은 흑인 아티스트들의 명반이 백인 아티스트들에게 번번이 본상을 내어주며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2017년 흑인 인권을 다룬 비욘세의 역사적 명반 '레모네이드(Lemonade)'가 백인 가수 아델에게 밀려 올해의 앨범상 수상에 실패하자, 전 세계적으로 '#GrammysSoWhite(그래미는 너무 하얗다)' 해시태그 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수상자였던 아델조차 무대 위에서 트로피를 쪼개며 "내가 이 상을 받을 순 없다. 올해의 앨범은 비욘세의 것"이라고 말했고 이를 객석에서 지켜보던 비욘세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시대가 흘러 이제 그 차별의 프레임이 힙합에서 ‘아시안 팝’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방탄소년단은 이 불합리한 ‘게토화(Ghettoization, 소수 인종 격리)의 굴레’에 순응하는 대신, 글로벌 팝스타로서 마땅히 던져야 할 저항의 계보를 당당히 잇고 있다.
방탄소년단의 미출품 선언이 그래미의 아시안 팝 부문 신설 자체를 무효화 할 순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장 유력한 수상 후보가 스스로 트로피를 거부함으로써, 이들은 K-팝이 지향해야 할 진짜 목표가 ‘아시아 전용 리그’라는 가두리 양식장이 아닌 ‘본상’이라는 뜻깊은 이정표를 전 세계에 제시했다. 이들의 거침없는 행보가 K-팝을 넘어 글로벌 음악계의 미래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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