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원과 이혼' 김지연, 한양대 자퇴 이유=왕따 폭로.."공황·우울증 생겨" 충격(하루지연)
OSEN 김나연 기자
발행 2026.08.02 18: 27

'러브캐처' 김지연이 자신의 학교폭력 피해 경험을 폭로했다.
1일 '하루지연' 유튜브 채널에는 "학교폭력 & 한양대 자퇴한 이유?"라는 제목의 영상이 업로드 됐다.
이날 김지연은 "제가 기나긴 왕따의 역사, 학교폭력 당한 썰. 그냥 재밌었던 썰 기억나는걸 몇개 얘기해보겠다. 슬프고 힘들었던 이야기 이렇게 말하고싶다기보다는 살아남았더니 강해진 썰"이라고 운을 뗐다.

첫 왕따가 중학교 1학년때였다고 밝힌 그는 "저희 여중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둘 다 못됐다. 그중 한명이 1학년때 저랑 같은 반이었다. 걔가 무리를 짓는 행동을 한다. 그 무리에서 한명씩 왕따를 시킨다. 그렇게 3년을 보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른다. 재미로 하는거라서 이유도 없다. 왕따 됐다가 아니었다가 이렇게 살았다"고 털어놨다.
뿐만아니라 시내를 걸어다닐때 남자들을 쳐다본다는 이유로 또 왕따를 당했다고. 김지연은 "그냥 앞에 사람이 지나가니까 안 부딪히려고 쳐다본거지 그리고 눈이 있는데 앞을 보고 다녀야하지 않나. 그래서 쳐다본건데 아무튼 그게 이유라더라. 그게 억울하기도 하고 내가 아예 건덕지를 안 만들어야겠다 해서 그 다음부터 눈을 깔고 다녔다. 어딜 가든. 습관이 생겨서 성인 될때까지 안 고쳤다. 아직까지 남아있는 습관중 하나가 주로 땅을 보고 걷거나 요즘엔 나아져서 먼 발끝을 보고 걷거나 아무튼 되도록이면 사람의 얼굴을 보고 걷지 않는다"고 후유증을 전했다.
학교폭력은 고등학교때도 이어졌다. 문제의 쌍둥이 중 한 명과 같은 반이 됐다는 그는 "4~5월에 제가 안면마비가 와서 입원을 일주일 하고 학교에 왔더니 저랑 친했던 친구가 저를 투명인간 취급 했다. 그 친구 뿐 아니라 저희 반에 여자애들 15명 정도 있었는데 거의 다 저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나는 너무 익숙해서 또 왕따를 당했구나 하고 제 자리에 가서 이어폰 꽂고 휴대폰 했나 그랬다. 그때가 학기초지 않나. 2달 다녔는데 왕따 당한거다. 그전에는 아무일도 없었다. 그걸 우리반 남자애들이 다 알고 있었다. 남자애들이 착해서 '애들이 왜 너한테 아는척 안하냐' 하길래 '몰라 내가 뭘 잘못했나보지' 했는데 이걸 지나겨면서 어떤 여자애들이 본거다. 그 여자애가 쪼르르 가서 '김지연이 남자애들한테 불쌍한척 하고 있더라' 이렇게 한거다. 일이 커졌다.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저희반 남학생과 여학생이 싸우기 시작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그 사실을 알게 된 담임 선생님은 학교폭력 징계위원회를 열 것을 제안했지만, 김지연은 "당시에 처음으로 뉴스에 성균관대부터 시작해서 학폭 전과가 있으면 받지 않겠다는 기사들이 떴다. 제가 그걸 보고 '한두명이 주도한거고 나머지 애들은 그 무리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 한 친구들도 있을거다. 주도한 한두명만 징계하는게 아니면 나머지 애들이 왜 걔네를 따를수밖에 없는지 알고 있었기때문에 한번의 실수로 어쩔수 없었던 친구들의 앞길까지 막고싶지 않다'고 얘기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 이후에 며칠 더 있다가 어떤 단톡방에 초대됐다. 신종 괴롭힘인가 했는데 다행히 더 괴롭히진 않았고 사과는 딱히 없었다. '너 왜 요즘 우리랑 안 놀아' 이런 식으로 자기들 잘못 아니라 쟤가 자기들이랑 안 놀았다는 식으로 얘기했던 것 같다"며 "알고보니까 입원하고 나서 중학교때부터 저를 괴롭혔던 쌍둥이 여자중 한 명이 자기 말 안 들을것 같은 애들 빼고 단톡방 만들어서 '우리 싫어하는 애 얘기해보자' 했다더라. 나머지 애들은 너무 학기초고 싫어하는애 없다고 해서 걔가 '난 김지연 싫어. 남자애들 앞에서 내숭떨고 꼬리친다'고 한거다. 거기에 가담한 10명중에 5명 정도는 저한테 와서 사과했다. 그 이후로 몇명은 저한테 잘해줬다"고 무사히 상황이 종결됐음을 알렸다.
특히 김지연은 한양대 무용과 자퇴 이유에 대해 "저는 무용을 사랑해서 예술가가 되고싶었다. 제가 생각하는 예술은 정답이 없고 김지연 고유의 무언가가 딱 떠오르는게 제가 지향하는 예술가였다. 대학교 들어가니까 그런걸 다 빼고 시키는대로 똑같이 해야한다더라. 선생님들의 라인, 누구의 제자, 이런게 너무 심했고 저희 학년에 저 혼자 인문계고 나머지는 예고 선후배 관계여서 챙겨주는것도 많았다. 내가 생각하던 교육이 아니라 현타왔다. 이런걸 할려고 죽기살기로 무용해서 온게 아닌데. 대학교에 안갔어도 될것 같더라"라며 "그냥 강사쌤도 너무 갈구고 언니들도 너무 갈구고 동기들도 너무 갈궜다. 제 상식에서는 전혀 이해 안됐다"고 말했다.
대학생때도 CC라는 이유로 갈굼을 당하고 따돌림을 당했다는 김지연은 "점점 심해져서 제가 말을 걸어도 앞에서 '왜저래?'이런식으로 말나오니까 너무 힘들었다. 제가 사람으로서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대학교 와서도 이렇게 해야되나? 현타도 많이 오고 제가 서울에서 혼자 살고있어서 의지할데도 없었다. 엄마한테 말하기도 그래서.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서 다녀야하지? 다니고 싶은것도 아니니까 너무 속상하더라. 스무살 그 애기가 얼마나 힘들었겠냐. 그래서 수업 끝나고 엄마한테 울면서 전화해서 '못다니겠다. 최선 다했다. 자퇴할래' 했다"고 심경을 떠올렸다.
그는 "제가 이 학교생활이 얼마나 힘들었냐면 학교때문에 공황이 생기고 우울증이 심했다. 하루는 자다가 꿈을 꿨는데 제가 살던 그 집 현관에서 검은색 모자에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이 파워 워킹으로 내가 자고 있는 안방까지 들어왔다. 그래서 너무 놀라서 '악' 하면서 깼다"며 "그 꿈이 아직도 무섭다. 내가 죽을것 같았다. 위험한 느낌을 받았다. 학교만 생각하면 심장이 너무 빨리 뛰고 숨이 안 쉬어지고 그때부터 공황이 한번씩 나와서 지금도 나온다. 그러다 4학년 되자마자 3년을 휴학했다. 사회생활 3년 하다 보니 돈도 벌고 무용학과를 다시 들어가니 너무 우물안 개구리더라. 내가 교수님한테 왜 잘보였어야 했고 아무것도 아닌 선배들한테 벌벌 떨었는지, 부당한걸 왜 참고 다녔는지 이게 다 깨진거다"라고 끝내 자퇴를 결심하게 됐음을 밝혔다.
이어 "바뀐게 없구나 해서 자퇴하겠다고 했다. 안된다더라. 그런데 저는 졸업장을 갖고싶지 않고 내가 하는일에 졸업장 필요하지도 않았고 나는 이 학교에 입학할만큼 열심히 살았다는게 더 중요해서 잠수탔다. 교수님 연락 싹 씹고 자퇴했다. 엄청난 후유증과 가르침을 준 대학생활. 그런걸 다 살아남고 하다 보니 내가 제일 쉬웠던거 사회에서 돈벌고 사회생활이었다. 사회 나가니 저한테 그렇게 나쁘게 한 사람도 없고 저를 왕따시킨 사람도 없고 다 너무 저를 예뻐해주더라. 제일 어려웠던건 단체생활이었다. 20살 애기애기한 김지연도 버텨서 여기까지 왔는데 스무살도 아닌 내가 고작 이걸로 여기서 좌절하면 안 되지. 누가 이기나 해보자 이러면서 이 삶을 버텨왔던 것 같다. 강해진게 좋은 것만은 아니지 않나. 어쨌든 거칠게 살았던거니까. 그렇게 해서 지금의 김지연이 있게 됐다"고 전했다.
한편 김지연은 지난 2024년 야구선수 정철원과 혼전임신으로 아들을 출산하고 혼인신고를 한 뒤 작년 12월 결혼식을 올렸다. 하지만 그로부터 한 달만에 이혼소식을 전했으며, 현재 소송을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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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하루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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