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축구협회가 고개를 숙였다.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논란부터 국회 청문회, 사상 첫 압수수색, 외국인 심판 성접대 의혹까지 최근 한국 축구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에 대해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사과는 필요했다. 오히려 늦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사과는 시기의 문제가 아니라 내용의 문제다. 무엇을 잘못했고, 왜 그런 일이 벌어졌으며, 앞으로 어떻게 바꾸겠다는 의지가 담겨야 비로소 사과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대한축구협회의 사과문은 분명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읽을수록 아쉬움이 남았다.

협회는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이후 협회를 둘러싼 각종 잡음으로 큰 실망과 걱정을 안겨드린 점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 "본연의 기능을 잃고 참담한 상황에 놓여 있다"며 현재 상황을 인정했다.
그러나 정작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다른 문장이었다.
협회는 "국회 청문회에 이어 사상 초유의 압수수색과 다수의 내부 구성원조차 제대로 몰랐던 십수 년 전 일에 대한 보도에 이르기까지 협회와 관련된 각종 사안으로 심려를 끼친 점 깊이 사과드린다"고 설명했다.
사과문에서 굳이 '다수의 내부 구성원도 몰랐던 십수 년 전 일'이라는 표현을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일 수도 있다. 현재 협회 직원 상당수는 당시 상황을 알지 못했을 수도 있고, 지금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설명이 사과문에 들어가는 순간 분위기는 달라진다. 책임을 인정하는 문장보다 상황을 설명하는 문장처럼 읽힌다. 진심 어린 반성보다 "그 일은 오래전 일"이라는 해명이 먼저 전달된다.
대한축구협회를 향한 국민들의 분노는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클린스만 감독 선임 논란, 홍명보 감독 선임 과정, 월드컵 실패, 국회 청문회, 경찰의 압수수색, 외국인 심판 성접대 의혹까지 신뢰를 무너뜨린 사건들이 계속 이어졌다.
결국 팬들이 등을 돌린 이유는 단순히 경기 결과 때문만이 아니다. 협회가 문제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실망이 쌓이고 또 쌓인 결과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사과문에서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누가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조직을 바꾸겠는지"가 더욱 분명하게 담겼어야 했다.
협회는 "현재는 이 같은 부적절한 행위가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또 국가대표 선수들의 땀과 성과가 이번 일로 평가절하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선수들에게 이번 논란의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팬들이 궁금한 것도, 듣고 싶은 것도 그것은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현재는 아니다'라는 설명보다 '과거의 잘못을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에 대한 답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오해하지 말아 달라'는 당부보다 '다시는 반복되지 않겠다'는 약속을 증명할 구체적인 행동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성명 말미에서 "분노가 아닌 환호를, 야유와 비난이 아닌 응원과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조직으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그 말에 공감하지 않을 축구팬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환호는 선언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신뢰는 사과문 한 장으로 회복되지도 않는다. 책임을 끝까지 밝히고, 잘못된 문화를 바꾸고, 팬들이 납득할 수 있는 변화를 보여줄 때 비로소 응원도 돌아온다.
이번 사과문은 분명 늦게나마 나온 첫걸음이다.
다만 그 첫걸음이 책임을 인정하는 발걸음이었는지, 책임을 설명하는 발걸음이었는지는 축구팬들 각자가 판단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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