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를 너무 안 좋게만 봐주시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의 간판 이강인이 남긴 이 한마디는 최근 한국 축구를 둘러싼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선수는 경기장에서 자신의 플레이로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국가대표 선수들은 공을 차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무너진 한국 축구의 신뢰까지 대신 붙잡기 위해 고개를 숙이고 있다.
이강인은 지난 9일 맨체스터 시티와의 친선경기를 마친 뒤 "요즘 한국 축구가 그렇게 좋은 상황은 아니다. 그래도 선수들은 팬들에게 기쁨을 드리고 싶어서 많이 생각하고 반성하고 있다"며 "나뿐 아니라 많은 선수들이 한국 축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너무 안 좋게만 봐주시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월드컵 실패를 겪은 뒤 선수로서 느끼는 책임감이 담긴 발언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씁쓸하기도 했다. 지금 한국 축구에서 가장 무거운 짐을 져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가장 가벼운 짐만 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는 최근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논란, 국회 청문회, 경찰의 사상 첫 압수수색, 외국인 심판 성접대 의혹까지 연이어 터진 사건들로 신뢰를 잃었다. 월드컵 부진 이후 불과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축구협회를 둘러싼 논란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졌다. 축구 이야기가 아니라 협회 이야기가 뉴스를 장식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결국 대한축구협회도 8일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협회는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이후 협회를 둘러싼 각종 잡음으로 큰 실망과 걱정을 안겨드린 점 매우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어 "최근 본연의 기능을 잃고 참담한 상황에 놓여 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정작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한 것은 사과문의 태도였다.
협회는 외국인 심판 성접대 의혹과 관련해 "다수의 내부 구성원조차 제대로 몰랐던 십수 년 전 일"이라고 표현했다. 현재는 그런 일이 없다는 점을 설명하고 싶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책임보다 해명에 무게가 실린 문장이 됐다.
팬들이 기다렸던 것은 '오래전 일'이라는 설명이 아니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누가 책임질 것인지,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무엇을 바꾸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동안 협회는 늘 비슷했다. 문제가 발생하면 유감을 표하고 개선을 약속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같은 논란이 다른 형태로 반복됐다. 그래서 이번 사과문도 진정성보다 익숙함이 먼저 느껴졌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더 안타까운 것은 이 과정에서 선수들까지 함께 상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표팀 선수들은 감독 선임 과정에 관여하지 않았다. 외국인 심판 성접대를 알 리도 없다. 청문회나 압수수색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국가대표라는 이유만으로 협회를 향한 비판과 실망을 함께 떠안고 있다.
그래서 이강인의 발언은 더욱 가슴을 무겁게 만든다.
선수가 팬들에게 "한국 축구를 너무 안 좋게만 보지 말아 달라"고 말해야 하는 현실 자체가 정상은 아니다. 원래라면 선수들이 이런 말을 할 이유가 없어야 한다. 협회가 신뢰를 지키고, 선수들이 오직 경기력으로만 평가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대한축구협회의 존재 이유는 분명하다. 선수들이 최고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뒤에서 받쳐주는 것이다. 외풍을 막아주고, 논란으로부터 보호하며, 축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협회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쉽게 말해 협회는 선수들의 '울타리'여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울타리가 흔들리고 있다. 아니, 흔들리는 수준을 넘어 선수들이 직접 울타리를 붙잡고 있는 형국이다. 협회가 보호해야 할 선수들이 오히려 한국 축구를 걱정하고, 팬들의 마음을 달래고 있다.
이제 대한축구협회는 냉정해져야 한다. 사과문 한 장으로 상황을 넘기려 해서는 안 된다. 오래된 일이라는 설명으로 책임을 희석해서도 안 된다. 무엇을 잘못했고, 어떤 사람이 책임질 것이며, 어떤 제도를 어떻게 바꾸겠다는 것인지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선수들도 다시 축구만 생각할 수 있다. 대한축구협회의 주인공은 협회가 아니다.
선수들이 한국 축구의 미래를 걱정하는 지금의 현실은 분명 비정상이다. 협회가 다시 선수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지 못한다면, 아무리 뛰어난 재능들이 등장해도 한국 축구의 미래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또 하나의 사과문이 아니다.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냉정한 변화와 책임이다. 그것이야말로 선수들이 더 이상 협회를 걱정하지 않고, 오직 그라운드에서만 국민들에게 희망을 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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