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운드에서는 천적이지만 그라운드 밖에서는 특별한 선물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삼성 라이온즈 외국인 투수 크리스 페덱과 KIA 타이거즈 포수 김태군의 이야기다.
페덱에게 KIA는 썩 반가운 상대가 아니다. 올 시즌 기록한 2패를 모두 KIA에 당했다.
첫 만남이었던 지난 7월 30일 대구 홈경기에서 홈런 2개를 허용하는 등 5이닝 6실점으로 무너졌다. 11일 광주 원정에서는 7이닝 3실점(1자책)으로 제 몫을 다했지만 타선의 도움을 받지 못해 패전의 멍에를 썼다.

특히 김태군에게 제대로 혼쭐이 났다. 페덱은 김태군과의 맞대결에서 3타수 2안타(1홈런) 6타점을 허용했다. 그런데 페덱은 자신을 가장 괴롭힌 타자에게 뜻밖의 선물을 건넸다. 자신의 친필 사인이 담긴 유니폼이었다.

사연은 이렇다. 평소 메이저리그를 즐겨봤던 김태군은 삼성 시절부터 친분이 두터웠던 페덱의 통역 이철희 씨에게 페덱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뛰던 시절부터 좋은 투수라고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철희 씨를 통해 이 이야기를 들은 페덱도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고 싶었다.
페덱은 “김태군이 통역을 통해 제가 빅리그에 있을 때부터 많이 지켜봤고 정말 팬이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정말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자신의 팬이라는 김태군은 페덱에게 가장 강한 타자였다. 페덱은 “또 저를 상대로 6타점을 올렸는데 팬이라고 하니까 김태군에게 소중한 추억이 될 만한 선물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제 사인이 담긴 유니폼을 건네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냥 넘어갈 페덱이 아니었다. 웃으며 김태군에게 특별한 부탁(?)도 남겼다. “농담 삼아 ‘내게 6타점을 빼앗았으니 이제 그만하라’고 이야기했다”.
페덱에게 유니폼을 선물받은 김태군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답례품을 준비했다. 그것도 페덱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 맞춤 정장이었다.
페덱은 홈경기에 선발 등판하는 날이면 카우보이 모자에 정장을 차려입고 야구장에 출근한다. 김태군도 이를 알고 페덱에게 맞춤 정장을 선물하기로 했다.
페덱은 “김태군이 ‘네게도 추억에 길이 남을 만한 선물을 주고 싶다’면서 맞춤 정장을 선물해줬다. 몇 주 뒤에 정장을 받게 될 예정이다. 한번 입어봤으면 좋겠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마운드에서는 양보 없는 승부를 펼치지만 그라운드 밖에서는 서로를 향한 존중이 유니폼과 정장이라는 선물로 이어진 셈이다.

페덱의 ‘정장 출근’에는 나름의 원칙도 있다. 홈경기 선발 등판 때는 카우보이 모자와 정장으로 멋을 내지만 원정에서는 다른 선발 투수들과 마찬가지로 훈련복을 입고 야구장으로 향한다. 자신만 돋보이기보다 팀 문화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에서다.
그렇다면 포스트시즌 원정 경기에서도 정장을 입은 페덱을 볼 수 있을까.
페덱은 “원정 경기에서는 다른 선수들과 똑같이 훈련복을 입을 계획이다. 팀 스포츠니까 그렇다”며 “제가 카메라 앞에 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팀과 잘 융화하는 게 중요하고 팀 문화를 어떻게 지키는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향후 주장 구자욱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볼 생각이다. 현재까지는 원정 경기에서 정장 차림으로 출근할 계획은 없다”고 덧붙였다.

빅리그에서 오랜 시간 뛰었던 선수지만 새로운 팀의 문화를 존중하고 동료들과 어울리는 것을 우선시하는 페덱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마운드에서도 에이스 역할을 제대로 해내고 있다. 페덱은 지난 29일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KT 위즈와의 홈경기에 선발 등판해 6이닝 무실점으로 상대 타선을 잠재우며 삼성의 4-2 승리를 이끌었다.
이날 경기 전까지 선두 KT에 0.5경기 차로 뒤져 있던 삼성은 페덱의 호투를 앞세워 선두 자리를 되찾았다.
자신에게 6타점을 빼앗은 타자에게 사인 유니폼을 선물하고, 그 타자는 맞춤 정장으로 화답했다. 승부에서는 한 치의 양보도 없지만 서로를 향한 존중만큼은 아끼지 않았다. 페덱과 김태군이 만들어낸 훈훈한 인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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