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차기 실축 후 눈물의 은퇴 선언→6주 만에 복귀...메시의 선택이 바꾼 아르헨티나 축구 10년
OSEN 정승우 기자
발행 2026.09.01 15: 20

리오넬 메시(39, 인터 마이애미)의 아르헨티나 대표팀 마지막 10년은 월드컵 우승을 비롯한 4개의 트로피로 채워졌다. 그러나 축구 역사에 남을 이 황금기는 승부차기 실축 뒤 내뱉은 은퇴 선언으로 시작조차 하지 못할 뻔했다.
영국 'BBC'는 1일(한국시간) "리오넬 메시의 지배적인 10년은 거의 일어나지 않을 뻔했다"라는 제목으로 메시가 첫 번째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던 2016년부터 최종 은퇴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조명했다.
메시는 지난달 31일 아르헨티나 대표팀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그는 "모든 것을 쏟아부었다. 이제 더는 줄 것이 없다"라고 밝혔다. 메시는 A매치 207경기에서 125골을 기록한 아르헨티나 역대 최다 출전자이자 최다 득점자로 대표팀 생활을 마쳤다. 2022 카타르 월드컵과 2021·2024 코파 아메리카 우승도 이끌었다.

[사진] ⓒGettyimages(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메시가 아르헨티나 유니폼을 입고 가장 빛났던 마지막 10년은 아예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2016년 6월 26일 미국 뉴저지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칠레와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다.
당시 29번째 생일을 이틀 지난 메시는 승부차기에서 실축했고, 아르헨티나는 칠레에 패해 또다시 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A매치 113번째 경기를 마친 메시는 더는 대표팀 유니폼을 입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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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는 "나에게 대표팀은 끝났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 챔피언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눈물을 참던 그는 "우승은 내가 가장 원했던 일이었지만 이루지 못했다. 이제 끝난 것 같다. 이것이 모두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그가 느낀 절망은 깊었다. 아르헨티나는 2014 브라질 월드컵 결승에서 독일에 패했고, 2007년과 2015년에 이어 2016년 코파 아메리카 결승에서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다. 세계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던 메시는 정작 조국이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에는 우승을 안기지 못했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특히 아르헨티나의 또 다른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와의 비교가 메시를 짓눌렀다. 마라도나는 메시의 첫 번째 은퇴 선언을 불과 몇 주 앞두고 "그는 정말 좋은 사람이지만 개성이 없다. 리더가 될 성격이 부족하다"라고 비판했다.
당시 메시는 이미 FC 바르셀로나에서 라리가 우승 8회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 4회를 달성했고 발롱도르도 5차례 받았다. 아직 30세도 되지 않았지만, 대표팀에서 거둔 주요 성과는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뿐이었다. 마라도나가 1986 멕시코 월드컵 우승을 사실상 혼자 이끌었다는 기억은 메시를 끊임없이 따라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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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 전기를 집필한 스페인 축구 전문가 기옘 발라게는 "메시는 패배하면 깊이 가라앉는다. 아르헨티나 주장이라는 압박과 마라도나와의 비교를 견뎌야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메시를 '페초 프리오(Pecho Frio)'라고 불렀다. 가슴이 차갑다는 뜻으로, 피 대신 우유가 흐른다는 모욕이었다. 2016년 코파 아메리카에서 실패했을 때 메시가 대표팀을 떠나기로 결심한 것은 세 번째였다. 공개적으로 선언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라고 전했다.
메시의 은퇴 선언은 아르헨티나 전체를 움직였다. 동료들은 발표 직후부터 복귀를 요청했다. 골키퍼 세르히오 로메로는 "메시가 없는 대표팀은 상상할 수 없다"라고 호소했다. '메시, 떠나지 마세요'라는 의미의 해시태그 '#NoTeVayasMessi'는 24시간 만에 2만 회 이상 사용됐다.
마우리시오 마크리 당시 아르헨티나 대통령도 메시에게 직접 전화해 마음을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마크리 대통령은 "사람들이 하는 말에 신경 쓰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우리는 메시가 해낸 일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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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라시오 로드리게스 라레타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은 은퇴 선언 하루도 지나지 않아 메시의 동상을 공개했다. 그는 "한 명의 축구 팬으로서 부탁한다. 레오, 결정을 다시 생각해달라"라고 말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중심부에는 수천 명의 팬이 모였고, 도시 곳곳의 전광판과 표지판에도 메시의 복귀를 바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마라도나 역시 메시가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 대표팀에 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6년 8월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에드가르도 바우사 감독은 부임 직후 바르셀로나로 날아가 메시를 설득했다. 결국 메시는 은퇴 선언 6주 만인 8월 12일 결정을 번복했다.
메시는 "나는 이 나라와 이 유니폼을 너무나 사랑한다. 내가 아르헨티나 대표팀에서 계속 뛰기를 원했던 모든 사람에게 감사하다. 우리가 곧 팬들에게 기뻐할 일을 안길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복귀를 선언했다.
우승은 곧바로 찾아오지 않았다. 아르헨티나는 2018 러시아 월드컵 16강에서 프랑스에 패했고, 메시가 끝내 월드컵 트로피를 들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다시 쏟아졌다. 메시는 34세가 돼서야 처음으로 성인 대표팀 메이저 대회 정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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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우승의 벽을 허문 뒤 역사는 달라졌다. 메시는 2021 코파 아메리카를 시작으로 2022 피날리시마와 카타르 월드컵, 2024 코파 아메리카까지 약 3년 동안 4개의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016년 은퇴 선언을 번복한 뒤에만 A매치 94경기에 출전해 70골을 넣었다.
메시는 2026 북중미 월드컵에도 출전해 자신의 여섯 번째 월드컵을 치렀다. 예전과 같은 속도는 없었지만 8골과 4도움을 기록하며 아르헨티나를 결승까지 이끌었다. 아르헨티나는 스페인에 0-1로 패해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39세 메시는 여전히 가장 영향력 있는 선수였다.
공교롭게도 결승전 장소는 메시가 10년 전 처음으로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던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이었다. 2016년 코파 아메리카 결승전을 현장에서 지켜봤던 아르헨티나 팬 벤하민은 "메시가 은퇴했을 때 우리는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다시 깨달았다. 소식을 듣고 나도 울었고 나라 전체가 울었다"라고 돌아봤다.
그는 "메시가 비판받았던 것은 모두가 그만큼 간절했기 때문이다. 메시가 없었다면 아르헨티나는 여전히 1986년 이후 다음 월드컵 우승을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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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는 월드컵 결승전이 끝난 지 3주 만에 아버지 호르헤 메시를 떠나보냈다. 이후 다시 대표팀 은퇴를 고민했고, 결국 "더는 줄 것이 없다"라는 말과 함께 긴 여정을 끝냈다. 39세라는 나이를 고려하면 이번 결정은 2016년과 달리 최종적인 선택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만 아르헨티나에서 공식 고별전이 열릴 가능성은 남아 있다. 남미 축구 전문가 팀 비커리는 "아르헨티나는 월드컵 당시의 행위로 다음 홈 경기를 관중석 50%만 개방한 채 치러야 한다. 징계가 끝나면 아르헨티나축구협회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고별전을 생각할 수 있다"라고 전망했다.
이어 "리버 플레이트의 경기장은 남미에서 가장 많은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 협회가 메시에게 '공식적인 작별 경기를 치르는 것은 어떤가.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뛰어줄 수 있겠나'라고 물을 가능성이 충분하다"라고 덧붙였다. /reccos23@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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