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토 모레노(49) 감독의 부임은 이강인(25,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모레노 감독이 공격진에 요구하는 움직임과 이강인의 장점이 상당 부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두 사람은 스페인 축구와 루이스 엔리케라는 공통된 전술 언어까지 공유한다.
대한축구협회는 1일 모레노 감독을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 임시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계약 기간은 오는 11월 27일까지다. 모레노 감독은 9월부터 11월까지 열리는 A매치 6경기를 지휘하며 평가 결과에 따라 아시안컵까지 대표팀을 맡을 수 있다.
모레노 감독은 프로 선수 경력이 사실상 없는 분석가 출신 지도자다. 영상 및 전술 분석에서 출발해 AS 로마와 셀타 비고, FC 바르셀로나, 스페인 대표팀에서 엔리케 감독을 보좌했다. 바르셀로나가 2014-2015시즌 트레블을 달성할 당시에도 상대 분석과 전술 설계에 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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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대표팀에서는 엔리케 감독이 가족 문제로 자리를 비우자 감독대행에 이어 정식 감독을 맡았다. 총 9경기에서 7승 2무, 29득점을 기록하며 유로 2020 본선 진출을 이끌었다.
모레노 감독의 기본적인 틀은 세 명의 미드필더와 세 명의 공격수를 이용하는 전술이다. 그러나 공을 소유하면 양쪽 풀백과 미드필더가 전진하면서 공격 대형을 2-3-5에 가깝게 바꾼다. 풀백이 측면의 폭을 확보하고 윙어는 안쪽으로 이동해 하프 스페이스에서 공을 받는다. 여기에 중앙 미드필더가 가세해 짧은 패스를 주고받을 수 있는 삼각형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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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공을 오래 소유하는 축구와는 차이가 있다. 짧은 패스로 상대 수비를 한쪽에 끌어들인 뒤 반대편에 생긴 공간을 빠르게 공략하는 것이 핵심이다. 윙어와 미드필더, 풀백의 위치도 고정되지 않는다. 선수들이 상황에 따라 자리를 바꾸면서 새로운 패스 길을 만들어야 한다.
이강인이 가장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이 바로 오른쪽 하프 스페이스다. 대표팀에서는 주로 오른쪽 측면에서 출발하지만 터치라인에 머무르는 전형적인 윙어는 아니다. 안쪽으로 들어와 왼발로 침투 패스를 넣거나 반대편으로 공격 방향을 바꾸고 직접 슈팅까지 시도한다.
이강인은 공을 받기 전 주변을 확인하는 습관과 낮은 무게중심을 활용한 탈압박에 강점이 있다. 상대가 가까이 붙어도 공을 쉽게 빼앗기지 않으며 수비수를 자신에게 끌어들인 뒤 빈 공간의 동료를 찾아낼 수 있다. 좁은 지역에서 공을 지키고 패스 각도를 만드는 능력은 모레노 감독의 공격 전개에서 중요한 무기가 될 수 있다.
활용할 수 있는 위치도 다양하다. 이강인은 공격형 미드필더로 성장했지만 오른쪽과 왼쪽 측면, 중앙 미드필더와 세컨드 스트라이커까지 소화했다. 파리 생제르맹에서는 폴스 나인과 수비형 미드필더 역할도 경험했다. 윙어와 미드필더의 경계를 허무는 모레노 감독에게는 여러 전술적 선택지를 제공할 수 있는 선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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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케 감독 아래에서 익힌 경험도 무시할 수 없다. 모레노 감독은 오랫동안 엔리케 감독과 함께 포지셔널 플레이를 설계했다. 이강인은 PSG에서 엔리케 감독이 요구한 빠른 패스 순환과 위치 교환, 강한 압박을 경험했다. 두 사람이 직접 함께한 적은 없지만 축구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언어는 낯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강인은 발렌시아 유소년팀에서 성장했고 RCD 마요르카를 거쳐 현재 아틀레티코에서 뛰고 있다. 스페인어 소통에 문제가 없는 데다 라리가의 전술 문화에도 익숙하다. 대표팀을 파악하고 자신의 축구를 전달할 시간이 부족한 모레노 감독에게 이러한 요소는 분명한 장점이다.
최근 흐름도 좋다. 이강인은 올 시즌 아틀레티코에서 리그 3경기 동안 171분을 소화하며 1골 1도움을 기록했다. 세비야전에서는 선발로 출전해 경기 시작 4분 만에 선제골의 출발점이 되는 패스를 연결하며 3-1 승리에 힘을 보탰다. PSG에서 제한적인 출전 기회에 시달렸던 시간을 지나 새로운 팀에서 빠르게 입지를 넓히고 있다.
물론 모레노 감독의 '황태자' 자리가 자동으로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모레노 감독은 공을 소유했을 때의 기술만큼 공을 잃은 직후의 움직임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알려져 있다. 상대가 후방에서 풀백에게 공을 보내는 순간을 압박 신호로 삼고 주변 선수들이 한꺼번에 달라붙는다. 공격이 끊기면 즉시 재압박해 상대 역습이 시작되는 것부터 차단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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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인의 활동량과 수비 가담은 마요르카 시절부터 크게 좋아졌다. PSG에서도 여러 위치를 오가며 전술 수행 범위를 넓혔다. 그러나 빠른 전진과 강한 압박을 반복해야 하는 경기에서는 여전히 자신이 가진 기술을 얼마나 간결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공을 오래 소유하기보다 한두 번의 터치로 공격 속도를 살려야 한다.
모레노 감독의 전술도 검증이 필요하다. 세밀한 위치 설정과 공격 구조는 분명하지만 선수단의 특성에 맞춰 복잡한 요구를 줄이는 능력에는 의문이 따라왔다. 양쪽 풀백과 미드필더까지 높이 전진하는 만큼 공을 잃었을 때 넓은 뒷공간이 노출될 위험도 있다. 준비 시간이 짧은 대표팀에서 자신의 구상을 어느 정도까지 구현할지가 관건이다.
그럼에도 이강인은 모레노 감독 체제에서 가장 흥미로운 카드다. 오른쪽 측면과 중앙을 오갈 수 있고 좁은 공간에서 압박을 풀어내며 정확한 왼발로 공격 방향을 바꿀 수 있다. 감독이 요구하는 전술을 별도의 통역 없이 이해할 수 있다는 점까지 갖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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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황태자'가 되려면 한 가지를 증명해야 한다. 공을 잡았을 때 돋보이는 선수를 넘어 모레노 감독이 요구하는 위치 이동과 압박까지 쉬지 않고 수행해야 한다. 이강인이 아틀레티코에서 보여주기 시작한 간결함과 활동량을 대표팀에서도 이어간다면 모레노 감독의 첫 번째 공격 구상은 그를 중심으로 짜일 가능성이 충분하다. /reccos23@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