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원 작가, 초등子 학폭 피해 고백 “일방적으로 폭행 당해…잘 못 걸을 정도”[전문]
OSEN 강서정 기자
발행 2026.09.21 07: 15

소설가 겸 작가 소재원이 초등학생 아들이 학교폭력 피해를 당했다고 고백했다. 
소재원은 지난 20일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명이가 학폭을 당해서 학폭 신고를 했다. 교육청에서 직접 조사관이 나와 빠른 조치가 이뤄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시 CCTV를 빠르게 확보하고 영상을 찍어 놓은 탓에 가해 학생과 부모는 어떤 변명도 없이 잘못을 인정했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다. 부모로서 혼란과 갈등이 시작되는 시점은…”라는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이어 “가해 학생이나 부모가 인정하지 않고 과격하게 나온다면 누가 이기든 해보자는 심정으로 온 힘을 다했을 테다. 쓸데없는 감정들은 찾아올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아이를 보호하는 일에만 매달리고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가해 학생과 부모는 빠른 인정과 사과 태도를 보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 엄마와 나는 서로의 공통된 생각이 가슴속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혹시 우리의 결정이 옳지 못한 것이라면?'이라는 불안이 동시에 떠올린 단어를 내뱉지 못하게 만들었다. 선생님을 통해서 사과를 전하고 싶다는 가해 학생 부모님의 행동 속에 우린 '용서'라는 단어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화가 많이 나고 심한 자책으로 하루하루가 힘들었었다”며 “내가 보는 앞에서 벌어진 폭력이었기 때문이다. 명이와 설이가 명이 또래 친구 두 명에게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하는 걸 보면서도 나는 바로 나서지 못했다. 그저 CCTV 위치를 확인하고 핸드폰으로 영상을 촬영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고 전했다. 
소재원은 폭행을 말리지 않은 이유에 대해 “나도 처음에는 아빠가 있는 가운데 너무 노골적으로 우리 아이들을 집어던지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눈앞에 보호자가 있는데 대놓고 때린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기에 '과격하게 놀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저 놀고 있는 것뿐인데 아이에게 훈계나 행동을 저지하게 된다면 아동학대 고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경험을 통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고 했다. 
또한 “예의 주시하며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명이와 설이가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음을 느꼈다. 명이와 설이의 표정은 공포에 질려 있었고, 더 작은 설이가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자 명이는 동생을 지키기 위해 두 명의 아이들을 막아서고 있었다”며 “나는 가해 아이들이 그런 적 없다고 말할 것을 대비해 핸드폰으로 영상을 촬영하며 주변 CCTV 위치를 확인했다. 증거를 확보하며 폭행을 막으려 했으나, 아이들은 명이의 완강한 저항에 더는 공격을 하지 않았다. 순간 엄청난 죄의식이 밀려왔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설이와 명이를 보며 내 판단이 과연 옳았는지 부끄럽고 미안했다”고 털어놓았다. 
더불어 “뿐만 아니라 ‘절대 사람을 때려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 나의 교육 방침이 아이들을 상처입게 만든 것 같았다. 명이가 4살 무렵 키즈카페에서 친구 장난감을 빼앗고 밀치는 모습을 본 나는 아이를 지구대에 데려가 엄격하게 교육을 시켰었다. 근무 중인 경찰관님과 함께 폭력이 얼마나 나쁜지에 대해 설명하고 가르치는데 결국 명이는 눈물을 터트렸다. 그 뒤로 명이는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밀치거나 장난감을 빼앗지 않았다”며 “이런 교육이 옳다고 믿었던 나의 믿음이 아이가 당하는 모습을 보자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정말 내가 옳았던 걸까?'라는 불신이 찾아오며 후회가 밀려왔다. 나의 잘못된 가르침에 명이는 반깁스를 해야 했고, 설이는 며칠 동안 잘 걷지 못할 정도의 상해를 당해야 했다”고 전했다. 
또한 “못난 나는 그저 아이들 엄마와 함께 변호사와 의논한 뒤 진단서를 가지고 학폭 신고를 하는 일만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다행스럽게도 마무리까지 답답하지는 않았다. 진단서가 들어간 이상 가해 학부모가 사과를 한다 해도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는다. 증거가 확실했기에 사건에 큰 이변은 없었다. 하지만 막상 가해 학생과 부모님이 머리를 숙이니 지독했던 독기가 사라져갔다”며 “'4학년인 아이에게 어른으로서 너무 가혹한 걸까?'라는 생각이 들자 '내가 4학년 때는 어땠지?'라며 기억을 떠올려 봤다. 실수와 시행착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었던 나이였다. 잘못된 행동들을 교정하며 하나하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양심과 규칙을 배워가던 나이였던 것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명이는 그 아이를 마주할 용기가 없다고 했다. 사과를 받고 싶지도 않다고 한다. 이럴 땐 다독이며 용서와 새로운 기회의 미덕을 가르쳐야 할까? 아니면 합당한 처벌이 반드시 따라온다는 교훈을 가르쳐야 할까? 감히 결정하지 못하겠습니다. 많은 선배 부모님들의 진심 어린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고 했다. 
이하 소재원 SNS 전문.
명이가 학폭을 당해서 학폭 신고를 했다. 교육청에서 직접 조사관이 나와 빠른 조치가 이뤄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시 CCTV를 빠르게 확보하고 영상을 찍어 놓은 탓에 가해 학생과 부모는 어떤 변명도 없이 잘못을 인정했다.
문제는 여기에서부터다. 부모로서 혼란과 갈등이 시작되는 시점은…
가해 학생이나 부모가 인정하지 않고 과격하게 나온다면 누가 이기든 해보자는 심정으로 온 힘을 다했을 테다. 쓸데없는 감정들은 찾아올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아이를 보호하는 일에만 매달리고 노력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가해 학생과 부모는 빠른 인정과 사과 태도를 보였다.
아이들 엄마와 나는 서로의 공통된 생각이 가슴속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혹시 우리의 결정이 옳지 못한 것이라면?'이라는 불안이 동시에 떠올린 단어를 내뱉지 못하게 만들었다. 선생님을 통해서 사과를 전하고 싶다는 가해 학생 부모님의 행동 속에 우린 '용서'라는 단어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화가 많이 나고 심한 자책으로 하루하루가 힘들었었다.
내가 보는 앞에서 벌어진 폭력이었기 때문이다. 명이와 설이가 명이 또래 친구 두 명에게 일방적으로 폭행을 당하는 걸 보면서도 나는 바로 나서지 못했다. 그저 CCTV 위치를 확인하고 핸드폰으로 영상을 촬영하는 일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왜 말리지 않았느냐고 묻고 싶을 것이다. 나도 처음에는 아빠가 있는 가운데 너무 노골적으로 우리 아이들을 집어던지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하지만 눈앞에 보호자가 있는데 대놓고 때린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었기에 '과격하게 놀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을 했다. 그저 놀고 있는 것뿐인데 아이에게 훈계나 행동을 저지하게 된다면 아동학대 고소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걸 경험을 통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예의 주시하며 아이들을 바라보는데 명이와 설이가 일방적으로 당하고 있음을 느꼈다. 명이와 설이의 표정은 공포에 질려 있었고, 더 작은 설이가 집중적으로 공격을 받자 명이는 동생을 지키기 위해 두 명의 아이들을 막아서고 있었다.
나는 가해 아이들이 그런 적 없다고 말할 것을 대비해 핸드폰으로 영상을 촬영하며 주변 CCTV 위치를 확인했다. 증거를 확보하며 폭행을 막으려 했으나, 아이들은 명이의 완강한 저항에 더는 공격을 하지 않았다.
순간 엄청난 죄의식이 밀려왔다. 부들부들 떨고 있는 설이와 명이를 보며 내 판단이 과연 옳았는지 부끄럽고 미안했다.
뿐만 아니라 ‘절대 사람을 때려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 나의 교육 방침이 아이들을 상처입게 만든 것 같았다.
명이가 4살 무렵 키즈카페에서 친구 장난감을 빼앗고 밀치는 모습을 본 나는 아이를 지구대에 데려가 엄격하게 교육을 시켰었다. 근무 중인 경찰관님과 함께 폭력이 얼마나 나쁜지에 대해 설명하고 가르치는데 결국 명이는 눈물을 터트렸다. 그 뒤로 명이는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밀치거나 장난감을 빼앗지 않았다.
이런 교육이 옳다고 믿었던 나의 믿음이 아이가 당하는 모습을 보자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정말 내가 옳았던 걸까?'라는 불신이 찾아오며 후회가 밀려왔다. 나의 잘못된 가르침에 명이는 반깁스를 해야 했고, 설이는 며칠 동안 잘 걷지 못할 정도의 상해를 당해야 했다.
못난 나는 그저 아이들 엄마와 함께 변호사와 의논한 뒤 진단서를 가지고 학폭 신고를 하는 일만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다행스럽게도 마무리까지 답답하지는 않았다. 진단서가 들어간 이상 가해 학부모가 사과를 한다 해도 사건이 마무리되지 않는다. 증거가 확실했기에 사건에 큰 이변은 없었다. 하지만 막상 가해 학생과 부모님이 머리를 숙이니 지독했던 독기가 사라져갔다.
'4학년인 아이에게 어른으로서 너무 가혹한 걸까?'라는 생각이 들자 '내가 4학년 때는 어땠지?'라며 기억을 떠올려 봤다.
실수와 시행착오,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었던 나이였다. 잘못된 행동들을 교정하며 하나하나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양심과 규칙을 배워가던 나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명이는 그 아이를 마주할 용기가 없다고 했다. 사과를 받고 싶지도 않다고 한다.
이럴 땐 다독이며 용서와 새로운 기회의 미덕을 가르쳐야 할까? 아니면 합당한 처벌이 반드시 따라온다는 교훈을 가르쳐야 할까?
감히 결정하지 못하겠습니다. 많은 선배 부모님들의 진심 어린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kangsj@osen.co.kr
[사진] 소재원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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