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암살자(들)'이 작품 밖의 이슈로 몸살을 앓고 있다. 주연 배우 이민호의 '액터스 하우스'에 이은 부산국제영화제의 모든 행사가 안전상의 이유로 취소되면서 팬들이 아쉬워하고 있다.
개봉 전 경쟁 영화들을 모두 제치고 압도적 예매율 1위를 기록한 '암살자(들)'은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하면서 4일 만에 100만 명을 돌파했다. 이는 천만 영화 '오디세이' '서울의 봄'과 같은 흥행 속도 초반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개봉 시기도 추석 연휴 시즌에 선보여 이목이 집중됐다.
'암살자(들)'은 1974년 8월 15일, 대한민국을 충격에 빠뜨린 영부인 저격 사건의 의혹과 배후를 추적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가 사건의 배후를 특정하지 않았지만, 개봉 후 일부에서는 역사 왜곡이라고 비판 및 주장했고, 한 단체 등에서는 상영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사실 작품에 대한 비판과 지적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모든 평론가가 입을 모아 극찬한 제 아무리 뛰어난 별 5개 영화라도 개인의 평가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는 법이다. 그러나 확인되지 않은 루머를 확산하고, 영화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창작자를 향한 협박과 신변을 위협하는 일이 발생하는 문제는 달라진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중국 자본 유입설'이 퍼지자, 제작사 측은 "당사 및 영화 ‘암살자(들)’의 제작과 투자 과정에 중국 자본이 유입된 사실은 전혀 없다"며 "‘암살자(들)’은 국내 제작진과 창작자들의 주도 아래 국내 자본으로 독립적으로 기획·제작된 작품이다. 비판과 다양한 의견은 존중하지만, 투자 및 제작 자본에 관한 사항은 객관적으로 확인 가능한 사실인 만큼 근거 없는 정보가 더 이상 확대·재생산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 상에는 울산 소재의 한 고등학교에서 영화 '암살자(들)'을 관람한다는 내용을 올리며, "교육청에 민원 넣어 달라"는 게시글이 확산됐다. 게시글 작성자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의혹을 언급하며 "이 학교에 애들 보내는 학부모님 역사 왜곡으로 아이들 세뇌되는 것 보고 싶은 거 아니시죠? 행동이 답이다"라며 민원을 제기할 것을 촉구했다.
결국 실제 재학생이라고 밝힌 네티즌이 직접 등판해 해명했고, 알고 보니 학생들의 자발적인 투표로 '암살자(들)'을 보기로 했다는 것. 재학생은 "학교 선생님들께서 저희에게 보고싶은 영화를 직접 고를수 있게 해주셨고, 어떠한 강요도 하지 않았다"며 "저희 학교 학생들이 직접 투표해서 나온 결과로 영화 '암살자(들)'을 보는 것이기에 민원은 멈춰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이라고 호소한 바 있다.
역사 강사로 유명한 유튜버 황현필은 자신의 채널을 통해 '암살자(들)'에 대해 "1974년 문세광 사건은 당대부터 기록된 여러 의혹과 미스터리가 존재했다. 영화는 그 의혹들을 설정 인물과 각색을 동원해 관객에게 전달하는 극영화"라며 "역사 영화로만 놓고 보면 정말 잘 만들었고 교육적 측면에서도 훌륭한 작품"이라고 평했다.
동시에 일각에서 주장하는 '북한의 사과' 발언 등의 오류를 역사적 사료로 바로잡으며 팩트에 기반한 시각을 주문했다. 황현필 강사는 과거 일본 언론을 통해 '육영수 여사 피격 사건에 대한 사과'로 해석된 보도가 있었지만 실제 대화 내용과 이후 박 전 대통령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를 그대로 사실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어 '북한이 사과한 사건'이라고 단정한 것에 대해 "역사적 근거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지적했고, 만약 자신이 잘못 알고 있는 내용이 확인된다면 공개적으로 인정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시사평을 작성한 유명 평론가와 리뷰 유튜버에게 악플 테러가 심해졌고, 영화를 만든 사람들과 출연 배우한테도 도를 넘은 악플과 신변 위협이 뒤따르고 있다. 이들의 의도와 전혀 상관없이 '암살자(들)' 관련 이슈는 정치권까지 번진 상태다.
현재 작품에 대한 비판을 넘어서 모 국회의원이 주연 배우를 인신 공격하고, 일부 단체에서는 배우의 자택 앞 시위를 예고하는 등 "선을 많이 넘었다", "절대 올바른 행동이 아니다"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제3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측은 '암살자(들)'의 개막식 참석과 야외무대 인사 등 모든 행사를 취소했고, 제작사는 "영화와 관련한 현 상황을 신중히 검토한 끝에 모두의 안전과 원활한 행사 진행을 위해 이와 같이 결정하게 됐다"며 공식 입장을 내놨다.
이와 함께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은 "영화인에 대한 공격을 멈추고 영화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는 성명서를 발표하면서, "창작과 표현의 자유는 우리 모두가 오랫동안 싸워서 얻은 소중한 가치이며 비판 역시 표현의 자유의 한 부분으로 존중받아야 한다"며 "다만, 작품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개인의 신상과 가족 관계를 공개하거나, 관련 개인과 기업·단체의 정상적인 활동을 압박하는 행위는 정당한 비판의 범위를 벗어나며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영화 참여자의 개인에 대한 비방과 협박, 사생활 거론, 신변의 안전, 생업을 위협하는 일들을 멈춰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암살자(들)'이 200만을 앞둔 가운데, 한 작품을 둘러싸고 건강하고 성숙한 토론, 논쟁 등이 사라지고 악플과 비방만이 오가는 상황이다. 안타깝고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 hsjssu@osen.co.kr
[사진] 영화 포스터 및 스틸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