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당과 지옥, 그리고 다시 지옥.'
화려한 포효와 함께 우승컵을 들어 올렸던 '파괴전차'의 2026시즌은 결국 가장 씁쓸하고 처참한 마침표로 끝났다. LCK 컵 10위라는 최악의 출발 속에서 정규시즌 반등과 MSI 우승이라는 찬란한 천당을 맛봤던 한화생명. 하지만 그 영광의 탑은 견고하지 못했고, 월즈 무대에서 만난 현실은 너무나 냉혹했다.
한화생명은 1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에서 열린 '2026 LoL 월드 챔피언십' 스위스 스테이지 5라운드에서 BLG에 0-2로 완패하며 녹아웃 스테이지 진출이 좌절됐다. 사전 파워랭킹 1위이자 MSI 챔피언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출발한 팀이 LCK 출전 팀 중 가장 먼저, 그리고 유일하게 8강 진출에 실패했다는 사실은 e스포츠 팬들에게 거대한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번 탈락이 더욱 뼈아픈 이유는 대회 개막 전 팀 내부에서 감돌았던 뜨거운 열망과 자신감 때문이다.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유니폼을 함께 입었거나 인연이 깊은 '제우스' 최우제, '제카' 김건부, '구마유시' 이민형 등 정예 멤버들이 한 팀에 포진한 한화생명은 이번 월즈를 앞두고 "우리들의 시대를 열겠다"며 우승을 향한 강렬한 포부와 자신감을 숨기지 않았다. 실제로 '제카'는 이번 스위스 스테이지 내내 고군분투하며 팀의 중심을 잡으려 애썼고, 선수단 전체가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으로 무장해 있었다.
그러나 화려한 면면과 자신감이 곧장 승리를 담보해주지는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번 탈락의 원인으로 TES, 젠지, IG, G2, BLG로 이어진 '역대급 가시밭길 대진운'을 꼽기도 한다. 하지만 가혹했던 대진만으로 한화생명의 추락을 모두 설명하기엔, 그들이 1년 내내 노출해온 구조적 모순이 너무나 뚜렷했다.
한화생명의 게임 철학은 명확했다. '카나비'의 강한 공격성과 '제우스'-'제카'로 이어지는 압도적인 무력을 바탕으로 한 '체급 밀어붙이기'였다. 이 스타일은 체급이 낮은 팀들을 상대로는 상대를 무참히 짓밟는 절대적인 위력을 발휘했으나, 체급에서 밀리지 않으면서도 정교한 운영과 단단한 합을 갖춘 최상위권 강팀들을 만나자 다방면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정교함이 부족한 채 공격성만 앞세우다 보니 스스로 '창조 손해'를 유발하는 경향이 잦았고, 이는 EWC를 거쳐 LCK 플레이오프에서 젠지에게 연패를 당할 때부터 이미 예고된 경고등이었다. 월즈라는 고도의 압박감이 지배하는 단기전 무대에서는 단순한 무력만으로는 승리를 지켜낼 수 없다는 진리가 다시 한번 증명된 셈이다.

선수진 개개인의 면면을 뜯어봐도 아쉬움은 진하게 남는다. '카나비'의 과감한 동선은 때로는 팀에 독이 되어 돌아왔고, 이를 억제하려다 팀 고유의 색깔을 잃어버리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서포터 '딜라이트' 역시 시즌 내내 지적받았던 챔피언 숙련도 및 스킬샷 이슈가 월즈 토너먼트 문턱에서 발목을 잡았고, '구마유시' 역시 분전했으나 고비마다 터진 불안 요소를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
결국 팀의 저점을 메우고 승리를 견인해야 했던 것은 '제우스'의 하이퍼캐리 플랜뿐이었고, 상대 팀들이 '제우스를 고립시키고 흔들면 자멸한다'는 파해법을 들고 나왔을 때 한화생명은 이를 돌파할 유기적인 팀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이번 탈락으로 한화생명은 '역사상 최초 MSI 챔피언의 당해 월즈 8강 진출 실패', '리그제 도입 이후 LCK 2시드 이상의 첫 8강 좌절'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모두 떠안게 되었다. 모기업의 전폭적인 투자와 슈퍼스타 로스터를 구축하고도 해외 원정 국제대회나 월즈 무대에서 번번이 고비를 넘지 못하는 모습은 한화생명이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도약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거대한 벽임을 보여준다.
천당의 환희와 지옥의 추락, 그리고 스스로 공언했던 자신감의 무게까지 모두 맛본 2026년. 파괴전차의 엔진이 차갑게 식어버린 지금, 한화생명에게 남은 것은 화려한 수식어가 아닌 뼈를 깎는 진단과 근본적인 체질 개선이다. / scrapper@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