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아시아 조예선 1라운드에서 한국이 전력에서 열세라는 일반적인 예상을 깨고 일본에 3-2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3전 전승으로 2라운드에 진출했다.
일본은 이날 패배를 충격적인 사건으로 표현하며 자성과 함께 패인을 분석하는데 바쁘고, 승리를 거둔 한국은 이번 야구월드컵이 한국야구의 르네상스로 연결될 수 있다는 핑크빛 전망을 내놓느라 분주하다.
그러면 이러한 두 나라의 상반된 반응들은 그간 대표팀간의 경기에서 서로 맞붙게 될 때마다 실력이 달리는 어느 한쪽이 매번 지다가 간만에 한번 이겼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따져보면 우리는 그 동안 일본과의 국제경기에서 중요한 순간마다 승리를 거두곤 했다.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세계야구선수권대회 결승에서 일본을 누르고 우승했으며, 98년 방콕 아시안게임 결승에서도 일본을 13-1로 대파하고 금메달을 거머 쥐었다.
또한 2000년, 동메달을 앞에 두고 맞붙은 시드니 올림픽 3, 4위전에서도 한국은 구대성의 역투와 이승엽의 결승타로 일본에 3-1 신승을 거두며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굳이 기억나는 패배를 고르라면 88년 서울올림픽에서의 일본전 패배(준결승전)와 일명 ‘삿포로의 비극’으로 불리는 2004 아테네올림픽 예선전에서 일본과 대만에 연속으로 패해 아테네에 입성조차 해보지 못했던 일 정도다.
그런데도 이날 이승엽의 역전투런 결승홈런과 우익수 이진영의 파인플레이를 밑거름 삼아 거둔 대 일본전 승리에 우리가 열광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양팀이 프로와 아마가 총망라된 명실상부한 최강의 전력을 구축하고 맞붙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은 메이저리그 통산 100승 이상을 거둔 박찬호를 필두로 미국과 일본에서 활약중인 해외파를 대거 전면에 내세웠고, 일본은 메이저리그 MVP에까지 오른 그들의 희망인 스즈키 이치로를 대표팀에 합류시켜 전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상태에서 만났던 것이다.
그간 한국 때문에 번번이 고비마다 패배의 쓴잔을 들이켜야 했던 일본으로서는 늘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변명이 필요했고, 그 대안은 아마 선수 위주의 대표팀이었기 때문에 한국에 졌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도 마쓰이 등이 빠짐으로써 최선의 전력이 아니었다라고 패인을 분석할 지도 모르겠다)
그런 그들의 뒤에는 늘 최후의 보루로 자국의 프로선수들이 있었다. 제대로 전력을 갖추어 붙으면 한국은 상대가 안 된다는 식의 얕잡아 보는 감정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이치로의 30년 발언’ (한국이나 대만은 30년 내에 일본을 이기지 못한다)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이제 미국으로 자리를 옮겨 한국은 8강전 마지막 경기로 일본과 재대결을 벌인다. 1라운드처럼 또다시 한국이 일본을 이기리라는 보장은 없다.
혹자는 일본에 1승1패를 한다면 처음보다 미국으로 건너가서 이기는 것이 더 영양가 있는 승리라고 말한다.
일본에서의 승리는 8강을 보장하지만, 미국에서의 대 일본전 승리는 4강으로 가는 징검다리가 되기 때문에 이해득실에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한국이 미국에서 일본에 패한다고 해도, 3월 5일 도쿄돔에서 거둔 승리의 값어치는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한국은 야구 저변에서는 일본에 상대가 안되지만, 엘리트 멤버를 주축으로 하는 야구에서는 이제 일본을 이길 수도 있는 위치까지 올라온 것을 증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91년 한ㆍ일 슈퍼게임을 시작으로 프로야구를 중심으로 한 본격적 교류를 시작한 이래, 한ㆍ일간의 전력차는 알게 모르게 점점 좁혀졌고, 이제는 친선경기가 아닌 정식경기에서도 그들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이제 일본은 한국을 만만하게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일본의 턱밑까지 치고 올라온 한국야구로 인한 그들의 스트레스는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30년이 아니라 영원히….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