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그 이후](2)해외진출 자격 획득 기간 줄여야 한다
OSEN 기자
발행 2006.03.22 09: 24

▲왜 자질이 뛰어난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오지 않는가?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결승전이 끝난 후 열린 한국팀 공식 인터뷰서 맨마지막에 나온 질문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중남미 출신의 한 기자가 김인식 한국대표팀 감독에게 "한국은 세계적인 수준의 자질을 가진 선수들이 많다. 그런데 왜 더 많은 한국 선수들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지 않는가. 아니면 그냥 한국에 남아 있는 것인가"라고 물었다.
이에 김 감독은 "한국서 프리에이전트(FA)가 되려면 9년이 걸리고 일본은 8년인 것으로 안다. 한국 선수는 9년을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어야 해외에 나갈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김 감독은 공식 인터뷰를 마친 후 엘리베이터로 가면서 한국기자들만 있을 때 "사실 실력이 있어야 가는 거지"라며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다.
김 감독의 마지막 말은 어떻게 보면 맞는 말이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9년간 열심히 뛴 뒤 프리에이전트(FA)가 되려면 대졸 선수는 30대에 접어든다. 이 때면 선수들의 기량이 전성기를 지나는 시기라 해외 구단에서 눈독을 들일 만한 실력에는 못미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고교 졸업 후 곧바로 프로에 입문한 다음 군대에 가지 않고 열심히 뛰어도 20대 말에나 FA 자격을 얻는 것이 우리네 현실이다. 중간에 군대라도 갔다오면 30대가 된다.
하지만 김 감독이 밝힌 또 다른 이유인 '프리에이전트 자격 획득기간 9년'을 되짚어보면 문제가 된다. 현재 한국 프로야구에선 7년을 채우면 일단 해외진출 자격을 얻는다. 단 이 때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신분이 되기까지 2년간은 조건이 붙는다. 구단에서 임대 내지 트레이드로 해외 구단에 내보낼 수 있는 시기로 해외 구단에서 마음에 드는 한국 선수를 데려가려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예전에 선동렬 삼성 감독을 비롯해 이종범 정민철 정민태 구대성 등이 한국 프로야구에서 일본 프로야구로 진출할 때 모두 이런 케이스였다. 'FA 제도'가 도입되기 전에 선동렬 감독과 이종범이 일본에 진출한 후 '7년차 해외진출 조항'이 도입됐고 정민철 정민태 구대성 등은 이 혜택을 받았다. 이승엽은 프리에이전트로서 임대료나 이적료 없이 일본에 진출한 첫 케이스였다.
▲해외파들이 없었다면 4강진출이 가능했을까?
지금까지도 이와 같은 특급 선수의 해외진출 자격 취득 조항은 문제가 없어보였다. 하지만 월드베이스볼클래식은 한국야구 특급 선수의 해외진출 문제에 화두를 던질 만한 사건이었다.
한국은 당초 목표 이상인 4강 진출을 이뤄내면서 세계 속에 한국야구의 우수함을 확실하게 심어줬다. 태극전사 30명이 똘똘 뭉쳐 이뤄낸 업적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을 들여다볼 때 '순수하게 한국 프로야구의 성과'라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많다.
미국과 일본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른바 '해외파'들이 없었다면 한국의 '4강신화'가 가능했을 지에 대해선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박찬호 서재응 김선우 김병현 최희섭 봉중근 그리고 대회 직전 뉴욕 메츠에서 친정팀 한화로 복귀한 구대성과 일본야구에서 활동 중인 이승엽 등이 없었다면 한국의 4강 진출은 힘들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특히 한국 마운드의 핵을 이룬 해외파 투수들의 활약은 눈부셨다. 이들이 있었기에 숙적 일본과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을 꺾는 기염을 토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계가 인정한 오승환은 32세에 ML진출(?)
그럼 앞으로 3년 후인 2009년 열리는 차기 대회에서는 어떤 해외파들이 있을까. 물론 현재의 해외파들이 30대에 접어들었지만 다시 한 번 대표팀 유니폼을 입을 수도 있고 이번에는 선발되지 못한 추신수 유제국 등 기대주들이 성장, 차기 대회에 나설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이들 말고 또 누가 있을 것인가. 이번 WBC에서 한국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한 '돌부처' 오승환(24.삼성)은 미국팀 벅 마르티네스 감독으로부터 "지금 당장 메이저리그에서 뛰어도 통할 수 있는 투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오승환이 '꿈의 무대'라는 메이저리그에서 박찬호 서재응 김병현 등 선배들처럼 마운드에 서기 위해서는 앞으로 8년을 더 한국에서 뛰어야 한다. 이번 대회 4강진출로 병역특례 혜택을 받게 된 오승환은 2년의 군복무를 하지 않게 된 덕분에 중단없이 프로선수 생활을 계속할 수 있지만 8년 후에는 32세의 만만치 않은 나이가 된다.
그때까지도 오승환이 현재의 '싱싱한 구위'를 유지하고 있다면 분명 스카우트하기 위해 뛰어들 해외 구단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8년이라는 세월은 너무나 길고 그 중간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오승환으로선 세계 최고 무대로부터 인정을 받고 있으면서도 한국 프로야구 제도 아래 8년간은 꼼짝달싹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일본은 8년을 채워 프리에이전트로 미국 메이저리그 진출의 길을 얻을 수 있다. 일본은 그러나 우리와는 차이가 있다. 중간에 군복무가 없고 대부분이 고교 졸업 ㅈ후 프로에 직행, 스타 플레이어들은 20대 후반에 들어설 즈음이면 메이저리그 진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해외진출의 길을 활짝 열어야 한다
한국 프로야구 관계자들은 "무작정 선수들의 해외진출 길을 열어줄 수는 없다. 스타들이 모두 해외로 나가면 한국 프로야구는 어떻게 되겠는가"라며 국내 선수들의 '해외진출 길'을 봉쇄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고교생 유망주들의 해외진출 시에는 2년간 국내 복귀를 금지하고 있고 프리에이전트가 되기전인 8, 9년차에는 만만치 않은 임대료나 이적료를 받아내려고 든다.
하지만 더 이상 한국야구도 '우물 안 개구리'로 머물러 있을 수만은 없게 됐다. 야구의 세계화라는 기치아래 WBC라는 대회가 생겨났고 여기서 각국의 야구 수준을 평가받는 일이 생긴 것이다. 우리보다 수준이 높은 미국이나 일본 야구를 경험한 선수들 없이 순수 한국 프로야구 출신들로만 구성된 대표팀이 WBC에 나섰다가 망신을 당한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만의 야구'를 고집했던 한국 프로야구는 팬들로부터도 외면을 살 것이다. 우리가 메이저리그 초특급 스타들로 구성된 홈팀 미국을 꺾었고 결국 미국이 4강에도 못올라가 '메이저리그도 별것 아니네'라는 의견이 나올 수도 있지만 메이저리그의 전체적인 수준이 일본 도미니카공화국 쿠바 등보다 떨어진다고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양식있는 야구인들은 앞으로도 한국야구가 세계 속에서 강호의 지위를 유지하려면 특급 선수들의 '세계화'에 힘을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기 위해선 프로선수들의 해외진출 자격 획득기간을 5년 안팎으로 더 줄여 해외진출 길을 좀 더 쉽게 만들어 줘야 하고 언제든 복귀할 수 있는 길도 열어 줘야 하는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축구처럼 국내와 해외 무대를 수시로 오갈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것이 국제대회에서 한국야구가 지속적으로 강자의 위치를 지킬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자국 프로선수들이 주축이 돼 우승했다고 하지만 메이저리그 초특급 스타인 이치로의 힘도 컸다는 것은 무시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 프로야구도 국내리그와 해외리그가 공생공존하며 발전할 수 있는 제도적 정비가 필요한 시점이다.
수준높은 무대에서 뛰고 있는 한국 프로야구 출신의 더 많은 스타 플레이어가 나와서 팬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이들이 국제대회에서 한국야구를 빛내는 데 앞장서기를 기대해 본다.
박선양 기자 sun@osen.co.kr
WBC 대표팀 해외파 투수들의 연습 장면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