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WBC 야구월드컵 1라운드에서 프로선수까지 총 망라된 일본을 꺾고 조1위로 예선을 통과하던 그 순간, 도쿄돔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과 한국응원단이 필자는 너무도 부러웠다. 한국야구사에 길이 남게 될 그 감격의 순간을 현장에서 직접 눈으로 목격할 수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처럼 우리 국민들을 너무나도 행복한 경험에 흠뻑 젖을 수 있게 해 준 이승엽의 한방은 절실히 원할 때 내려준 단비와 같았다.
단비는 영어로 ‘타임리 레인(timely rain)’이다. 일본식 야구용어 중에는 ‘타임리 히트(timely hit)’라는 말도 있다. 점수와 곧바로 연결될 수 있는 결정적 순간에 나오는 안타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말로 일명 적시타다.
이러한 표현들을 빌리자면, 팬들이 진정 원할 때 설령 몇 번의 실패를 앞세웠다 하더라도 가장 극적인 순간에 반드시 터져나오고야 마는 이승엽의 한방은 ‘타임리 홈런’이라 불러도 좋을 듯 하다.
사실 이승엽은 가까이에서 보면 카리스마 넘치는 사나이로서의 기개라던가, 죽기보다도 지는 것을 더 싫어하는 처절한 승부욕을 가진 사나이로는 보이진 않는다. 마냥 착해보이는 얼굴에 웃음까지 띌 때면 욕심없는 마음씨 좋은 사람, 그 자체다. 그러나 그는 야구, 특히 홈런에 있어서는 승부사다.
이승엽이 때려낸 홈런 중, 역사적인 홈런으로 기억될 만한 것들을 돌이켜보면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다.
2002년 LG와의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6-9로 뒤져 모두가 7차전을 생각하던 9회말, 1사 1, 2루 상황에서 터져나온 동점 쓰리런홈런. 이승엽의 이 한방은 곧 마해영의 끝내기 홈런으로 이어졌고, 21년간 절절히 맺힌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 우승’이라는 한을 풀어주었다.
2003년 10월 2일 오후 7시. 대구에서 열린 롯데와의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이승엽은 국민들이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던 56호 홈런을 기어코 쳐내며 보란듯이 새로운 아시아 홈런 신기록을 수립해냈다.
2005년 이승엽이 속한 롯데 마린스와 한신 타이거스의 일본 재팬시리즈 4차전. 1승만 더 거두면 우승할 수 있게 되는 이 경기에서 이승엽은 첫 타석에서 선제 투런홈런을 때려내며 우승컵의 물꼬를 완전히 롯데 쪽으로 돌려놓았다. 이미 3연패로 궁지에 몰려있던 한신으로서는 경기 초반에 얻어맞은 한 방이었지만, 사실상 카운터 펀치와 같았다.
그리고 2006 WBC 1라운드 일본과의 맞대결에서 1-2로 뒤지던 8회에 터진 그의 역전 투런홈런….
1995년 프로에 데뷔한 첫 해 13개의 홈런을 시작으로, 일본에 건너가기 전인 2003년까지 이승엽은 9시즌 동안 개인통산 324개의 홈런을 기록한 바 있다.
2004년 도일(渡日) 첫 해엔 14개의 홈런에 그쳤지만, 이듬해엔 자신이 목표로 세웠던 30홈런에 도달했다. 한ㆍ일 양국 정규시즌에서 기록한 홈런을 모두 합쳐보면 368개다.
왕정치의 아시아홈런 신기록(55개)을 뛰어넘고, WBC 일본대표팀 감독으로 출정한 왕정치의 눈앞에서 일본열도를 울리는 결승홈런을 작렬시킨 그가, 세계 개인통산 최다홈런(868개) 기록 보유자이기도 한 왕정치의 홈런기록마저 깨뜨리는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있었으면 하는 엄청난 욕심마저 슬그머니 생긴다.
서른을 갓 넘긴 그의 나이로 볼 때 메이저리그 행크 아론의 755개나 일본 왕정치의 기록에까지도 도전해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충분히 열려 있다.
아직 이승엽은 가고 싶은 길을 갈 수 있는 체력적,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 특히나 젊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커다란 재산이다.
2006시즌을 앞두고 일본 최고의 명문인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한 그가 왕정치, 장훈, 마쓰이 등 일본프로야구 거인팀의 역사에 찬란히 빛났던 좌타자의 명성을 이어받아 또 하나의 별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런지….
우리가 원할 때 또 하나의 단비같은 홈런을 언젠가는 선물해 줄 이승엽이다. 그 날이 어디에서 기다리고 있을 지, 그의 남은 야구선수로서의 홈런에 관한 역정(歷程)에 가만히 주목해보자.
어쩌면 이승엽은 이제부터가 시작일는지 모른다.
KBO 기록위원회 1군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