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C 그 이후](3)높은 FA 몸값이 '세계화'에 걸림돌
OSEN 기자
발행 2006.03.24 10: 13

"그렇게나 많이 받나요. 일본도 한국 특급 선수에게 잘해야 연봉 5000만 엔(약 4억 2000만 원)에서 1억 엔(약 8억 3000만 원)밖에 주지 못합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아시아라운드가 열렸던 3월 초 일본 도쿄에서 만난 한 한국인 에이전트가 던진 말이었다. 주로 일본에서 생활해 한국 실정을 잘 몰랐던 이 에이전트는 한국 프로야구에서 특급 선수가 프리 에이전트(FA)가 된 뒤 30억 원 이상을 받는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그는 "한국 구단들은 매년 적자라면서 어떻게 그렇게 많은 돈을 쓸 수 있나. 그 정도 선수를 데려올 경우 일본 구단에서는 그렇게 주지 못한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야 이유를 알 것 같다. 왜 한국 선수들이 일본 무대에 적극적으로 도전하지 않으려 하는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마디로 일본이나 한국이나 몸값에서 거의 차이를 보이지 않는 마당에 굳이 힘든 외국 무대에 나가 뛸 이유가 없다는 분석인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일본 구단들보다 더 많은 몸값을 주고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지난 시즌 한국 FA 시장에서 특급 선수였던 박재홍(SK)과 장성호(기아)의 예를 분석해 보면 간단하게 답이 나온다. 이들이 일본야구로 진출했을 경우 평균 연봉 8000만 엔(약 6억 6000만 원)에 4년 계약을 했다면 총연봉 3억 2000만 엔에 계약금을 5000만 엔 정도로 잡아 계산하면 합계 30억 원 정도의 몸값이 나온다. 총 30억 원은 박재홍이 SK와 4년 계약을 맺으면서 받은 몸값이다. 장성호는 이보다도 더 많은 4년 42억 원의 '대박 계약'을 이끌어냈다.
이 정도 금액이면 일본 무대에서 특급 용병들에게 주는 몸값 이상인 것이다. 2004시즌 현대에서 뛰며 타격 장타율 출루율 3관왕에 오르는 등 맹활약한 뒤 오릭스 바펄로스에 여러 가지 옵션을 포함한 연봉 8000만 엔에 계약했던 브룸바의 예를 볼 때도 한국 FA 시장의 몸값이 지나치게 높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 야구 선수들과 야구인들은 '프로에서 더 많은 몸값을 받는 것이 무엇이 나쁘냐'며 FA 시장의 몸값 상승을 반기고 있다. 맞는 말이다. 시장의 논리에 따라 많이 주는 구단이 있으므로 많이 받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높아도 너무 높아지고 있어 문제가 된다. '당근'을 많이 받다보니 선수들의 도전적 정신이 흐려지고 전체 발전에 도움이 별로 되지 않는다. 일본이나 미국은 아직 우리보다는 한 수 위의 무대다. 이곳에서 자신의 진가를 재발견하고 더 값진 경험을 쌓는 것이 필요하지만 안방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으니 나갈 이유가 없는 것이다.
'우리식 야구'로 단단하게 무장하면 세계 무대에서도 안 통할 것이 없다는 자세라면 몰라도 세계 속에서 한국 야구를 더 빛내기 위한다면 활발한 교류가 필요하다. 이번 첫 WBC에서 한국이 4강 진출의 위업을 이뤄낸 바탕에는 해외파들의 소중한 경험이 빛을 발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3년 후 2회 대회에서도 한국이 강호로서 면모를 유지하려면 세계 야구를 잘 알고 대처해야 한다. 그 때도 해외파의 힘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한국 프로야구 특급 선수가 '따뜻한 안방'에만 안주할 때가 아니다. 도전 정신을 갖고 해외무대로 진출해 부와 명예를 함께 얻기 위해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현재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고 있는 이승엽(요미우리)은 좋은 본보기다. 이승엽이 돈만 생각했다면 삼성의 100억 원 제의를 받아들이고 국내무대에 남아겠지만 좀 더 큰 무대에서 기량을 펼쳐 보이겠다는 도전정신이 있었기에 힘든 일본 땅으로 건너간 것이다.
이승엽은 이번 WBC에서 맹활약, 미국 메이저리그로부터도 실력을 인정받아 올 시즌 후 미국 무대 진출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선수들의 도전 정신을 꺾는 '무작정 퍼주기식' FA 계약은 이제 끝내야 한다. 일본이나 미국에서도 60억 원씩 퍼주기 힘든 계약을 한국에서는 쉽게 나오는 현실은 한국 야구의 세계화나 구단의 수지 타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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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의 요미우리 입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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